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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포 Feb 02. 2023

집으로 가는 길

나는, 정다은

아침부터 저녁, 그리고 자정이 넘어 새벽까지. 오늘의 할 일을 끝낸 나는 터벅- 터벅- 우리 집이 있는 골목 어귀로들어서기 시작합니다. 내가 살고 있는 빌라까지 그 길은 사실 너무나도 짧고 곧은 길이지만, 왠지 느슨해진 긴장감에 별의별 짓을 다 하곤 합니다.


  남의 빌라에 있는 주차장에 칠해진 하얀색 선을 따라서 곧게 걷습니다. 처음엔 균형을 잡으면서 느릿- 느릿- 하게 걸어보다가, 양손을 벌려 날갯짓을 치며 조금 빠르게 걸어보다가, 중심을 잃을 것 같을 때 아쉬움 없는 마음으로높이 뛰어 하얀 선 아래로 내려옵니다.


  가끔은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아무도 없는 새벽이면, 설령 내 뒤에 혹은 앞에 내가 모르는 사람이 있어도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이건, 내가 절대 밤 길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쉬지 않고 조금 헐떡이면서 빠르게 오르면 도착할수 있는 우리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래를 흥얼 거리다가, 내가 살고 있는 우리 집으로 들어섭니다. 


  현관 앞에 서서 비밀번호를 누릅니다. 가끔은, 우리 집 비밀번호를 누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만큼 기운 빠지는 게없습니다.. 힘겨운 하루를 살아온 내가 집에서 누릴 달콤한 휴식을 상상하면서 저만치 먼 곳부터 열심히 달려왔는데, 몇 초를 더 지연시켰습니다. 그리고 또 가끔은, 우리 집 비밀번호를 눌러 다시 현관 비밀번호를 눌러야 할 때, 다시 우리 집 비밀번호를 누르기도 합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우리 빌라는 오로지 계단을 올라야만 집으로 갈 수 있습니다. 계단을 오를 때는 절대 쉬지 않고 한숨에 올라야 덜 고통스럽습니다. 몸이 지친 나머지 계단을 조금 오르다 쉬었다 오른다거나, 잠시 창밖의 하늘을 구경한다거나 했다가는, 그 순간에 짧게 누린 쉼의 황홀함을 계단을 오름으로써 잊어버리거나 후회하게 됩니다. 계단을 오를 때는 한숨에 오릅니다.


  우리 집 문 앞에 도착하면, 빨간색 도어록을 열어 번호를 누릅니다. 덮개를 닫으면, 띠리리릭- 하는 소리와 함께문이 열립니다.


  신발을 벗고, 거실을 지나쳐 나의 방으로 들어갑니다.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으면서 생각합니다. 


  ‘와, 이제 다 끝났다!’




*****




  버스 안에서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한 나는, 내려야 할 곳에 다다라도 똑같이 졸고 있었다. 잠시 눈 감았다 뜨면 두정거장이 지나있고, 또다시 창문 밖을 바라보면서 멍을 때리다가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해 잠에 든다. 그리고마치 엄청난 시간이 흐른 듯한 느낌에 놀라 눈을 번쩍 뜨면, 아까 그 정류장에 서 있던 버스가 뒷문을 닫고 있다. 다시 안도감에 눈을 감으면, 그새 또 잠이 들고, 갑자기 들린 하차 벨 소리가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천천히 눈을 떠창 밖을 내다보며, 여기가 어디쯤인지 확인하다가 보인 익숙한 건물에 다시금 안도감을 느낀다.


  ‘지금 다시 눈을 감으면, 내가 이 정류장을 지나치겠지? 이 정류장을 지나치면 얼마나 지나치게 될까? 그래서 그렇게 되면 나는 다시 어떻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택시를 타게 될까? 아니면, 미련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내가내린 정류장의 반대편으로 가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횡단보도를 찾아 발걸음을 무겁게 옮기고. 신호는 또 기가막히게 내가 건널 수 없을 타이밍에 초록불이 켜지고, 횡단 보고에 다다라서야 다시 빨간불이 되었다가, 이걸 내가버틸 수 있을까 하는 피곤함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다가 지칠 때쯤 파란불이 되어서 건너고, 그렇게 건넌 횡단보도의 정류장에서 내가 타고 왔던 버스가 출발하는 것을 보겠지. 그리고 다음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보이는 전광판의 빨간 글씨 ‘운행 종료’는 내가 간신히 겨누던 내 몸도 가눌 수 없게끔 무너지겠지.’


  라고 생각하는 사이에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기 일보 직전이다. 나는 이때에도, ’내가 지금 내리지 않으면?‘ 이라는 생각으로 이미 피곤에 절어있는 나를 더욱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좁은 골목을 지나면 나오는 큰 길을 가로질러 우리 집이 있는, 빌라가 오밀조밀 모여있는 골목으로 꺾어 들어간다. 걷는 내내, 마치 꿈을꾸는 듯 몽롱하다. 내가 제대로 걷고 있는 건지, 내 신발 밑창에 깔린 바닥이 저절로 움직이는 건지 모르겠다. 눈앞이 뿌옇다. 약간의 미열도 있는 것 같다. 신발을 질질 끌면서 도착한 집 앞에서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는 계단에오른다. 계단에 오를 때는 다리가 느리게 움직여서 고통이 배가 되더라도, 멈추지 않고 한숨에 올라가야 한다.


  ‘띠리리릭-.’


  “야, 넌 뭐하다가 이제 들어오냐? 좀 일찍 일찍 좀 들어와라. 집이 무슨 잠자는 곳이냐? 표정은 왜 또 그렇게 썩어있냐. 그럴거면 아침에 좀 일찍 나가서 저녁에 일찍 들어오든가. 아, 넌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도 못하지? 에휴 넌평생 그렇게 살아라, 에휴, 에휴~”




*****




  사랑은, 사랑은 나에게만 너무 무심하다. 사랑은 나에게만 기회를 주지 않는다. 억울하다. 너무 비참하다. 왜 항상나는 좋아하기만 해야 할까? 왜 나는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걸까? 왜 나는 그 사람을 가지면 안 되는 거야, 왜? 나는 25년의 인생 동안 좋아하는 사람 뒤꽁무니만 쫓아다니겠구나. 내 인생 너무 불쌍하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사람은, 내가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한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야. 그리고 그게 나야. 너무 억울해. 사랑은, 사랑은 나에게만 너무해. 나에게만 기회를 주지 않아.


  내가 살면서 정말 수많은 사람들을 짝사랑 해왔지만, 이만큼이나 좋아했던 적은 없었다. 그 사람만 보면 심장이마구 떨리고,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몰라서 어버- 대다가 결국 나는 그 사람에게 말도 못 하는 바보처럼 여겨졌다. 그러다가도,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 핏- 하고 웃어주며 귀엽게 바라봐 주고는, 나의 마음을 당신이 알기라도한다는 듯 여러 가지 좋은 말을 들 해줬다. 당신의 입에서 나온 내 이름이 너무 달았다. 그래서 가만히 있어도 당신의 얼굴이 머릿속에 그려지곤, 이내 그 얼굴의 입술이 내 이름을 불렀다. 상상력을 자극한다.


  처음엔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에서 그쳤던 상상들이, 다음은 한 문장이 되고, 갑자기 나와 사랑의 대화를 속삭이다, 마지막에는 그 사람과의 백년해로를 그리게 된다. 이런 상상들이 현실의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고, 내가사랑하는 그 사람이 현재 사랑하고 있는 그 여자와의 시간들이, 내가 했던 그와의 상상에서 내가 지워지고, 혹은 내가 그리고 꿈꾸었던 것들보다 훨씬 더 많은 일들을 하고 있을 생각에 울분이 터졌다. 그 여자보다 내가 못한 게 뭐지? 내 눈엔 그 여자가 못난 것 밖에 보이질 않아. 솔직히 말해서, 내가 더 나아. 내가 더 좋은 여자야. 제발 날 알아줘, 제발 날 알아봐 줘. 좁디좁은 당신의 영역 안에 이제 나를 넣어줘. 그리고 나를 다시 봐줘.


  처음에는 공부를 하면서 애써 지워보려고 했다. 잊어보려고 했다. 다시는 없을 입시 그리고 가질 수 없는 개사랑. 무엇이 나에게 더 유익한지 저울질하려고 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마음이 그렇지 못했다. 감정은 항상 이성을이겼다. 학원이 끝나고, 스터디 카페에서 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새벽 3시의 밤 길은 내 감정을 더욱 자극했다. 마구마구 자극했다. 엄청나게 자극했다. 아무도 없는 큰 길가에서 내가 아무리 눈물을 쏟고, 꺽꺽 소리를 내며 울다가, 울음을 참느라 헛구역질이 올라와도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거나 동정할 눈빛이 없다.


  큰 길을 따라 쭈욱- 울며 걷다가, 집에 다다라 울음이 좀 그친다. 집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고, 대충 끼니를 때울것을 찾아 입에 넣는다. 그리고 다시 침대에 누웠을 때, 다시 또 시작한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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