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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포 Feb 02. 2023

학교 앞에서

나는, 이동희

-학교에서

 휴가 나오기 며칠 전 밤을 기억합니다. 네이버 지도를 켜놓고 이리저리 주워들은 곳 하나씩 표시해가며 가고 싶은 곳을 기록했었습니다. 나름의 버킷리스트였던 것 같습니다. 하나, 둘 기록할 때는 재밌었는데 막상 나와서 간 곳은 딱히 없습니다. 학교를 다녀서라고 핑계를 대기에는 학교 주변도 많이 돌아다니지 않았습니다. 매일 아침 대흥역에서 나와 K 관으로, 종일 학교 내에 있다가 다시 대흥역으로 이것이 제 생활 반경의 모두였습니다.

 만약 신촌역에 가야 하는 일이 있다면, 전날부터 큰 결심을 해야 했습니다. 신촌이란, 가끔 일어나는 이벤트였기에, 소풍 가는 아이처럼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몇 시에 출발할지부터 무엇을 먹을지 또 얼마나 걸릴지 생각을 합니다. 막상 신촌에 가서 크게 할 일은 없지만, 신촌이라는 단어가 주는 압박감 때문일까요? 무언가 즐겨야 한다는 강박이 있습니다. 때문에 개강하고 며칠간은 자주 갔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 식사도 학식을 애용하며, 차츰 발길이 뜸해졌습니다.


-신촌역에서

 12월의 어느 날 나는 무인양품에 무언가 살게 있었습니다. 공책이 집 안 어딘가에 있을 줄 알았는데, 한참 뒤져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신촌에 가야 하는구나 하고 마음을 먹고, 점심을 해결할 음식점을 찾아봤습니다. 학교에 오는 지하철에서도, 수업 중에도 고민을 해봤지만 딱히 꽂히는 메뉴가 없었습니다. 결국 학교에서 간단히 학식을 먹고, 시간을 보내다가 무인양품이 여는 12시에 맞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한 달 만의 신촌이지만 바뀐 건 기온뿐,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늘 보이는 신촌역의 어르신, 높은 백화점, 많은 차. 늘 그렇듯 6번 출구로 내려가 2번 출구로 나왔습니다. 역 앞의 모퉁이를 돌면 무인양품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마침 직원이 문을 열고, 무언가를 꺼내 놓습니다. 조금 이를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딱 맞춰 왔나 봅니다. 들어가서 이것저것 둘러봅니다. 필기구, 테이프, 작은 수첩 등 신기한 물건들을 하나씩 건드려 봅니다.

 내가 찾던 공책이 보입니다. 집어서 가격표를 확인하니 3,900원입니다. 오늘 먹은 학식이 4,000원인데... 하필 말일이라 통장이 조금 빠듯합니다. 잠시 서서 고민하다가 결국 내려놓았습니다. 아마 잘 찾아보면 어딘가 숨겨져 있을 거야 하며 돌아섰습니다. 다른 볼일은 없었기에 바로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걸어걸어 타지인 신촌을 떠나 나의 공간인 학교로 정문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 나는 가로수 밑 무언가를 직시하고 말았습니다.


-학교에서

 당시 나는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한 레포트의 마지막을 죽음에 관해 쓰리라 다짐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평소 쓰는 헤드폰도 쓰지 않고,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머리만 굴렸습니다. '죽음은 정말 끝인지.' '다음은 있는 건지.'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죽음이 너무 가벼워지고 간편화되어있지 않은지.' 따위의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결국 답을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다짐할 때쯤 가로수 밑에서 죽음을 마주하고 말았습니다.

 길가의 가로수를 떠올려 보세요. 보도 중간에 흙이, 흙의 중간에는 나무가 있습니다. 흙과 보도의 높이차 때문에, 철로 판을 만들어 흙을 덮곤 합니다. 수목 보호대라는 이름이 있는 그 철 말입니다. 보통 수목 보호대와 보도블록 사이에 조금의 유격이 있습니다. 그 틈새에 참새 한 마리가 끼어 있었습니다. 세 손가락을 뭉친 정도의 작은 참새였습니다. 그런 새끼 참새가 차갑게 자고 있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못 보고 지나갔을 텐데, 하필 핸드폰도, 헤드폰도 없이 걸어서, 죽음에 대한 생각 때문에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참새는 죽었지만, 죽지 못했습니다. 길가의 사람들은 참새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할 겁니다. 불결하다고 느끼는 이도, 안타깝게 받아들이는 이도 있겠지요. 나는 죽은 채로 전시된 참새가 불쌍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밟기라도 한다면, 그도 하루를 죄책감으로 보내야겠지요. 잠깐의 고민을 한 후 참새를 어딘가 옮겨두기 위해 편의점에서 휴지를 샀습니다. 한 장, 두 장, 세 장. 무게도 안 느껴질 정도로 어린 참새. 휴지 너머로 느껴지는 참새의 촉감만이 아이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빌딩의 실외기가 있는 작은 흙 밭아 참새를 고이 두었습니다. 낙엽으로 이불도 덮어 주었습니다. 그때 한 어르신을 보았습니다.


-학교와 신촌에서

 앞서 말했듯 가끔 목적이 있을 때, 불규칙적인 날, 불규칙적인 시간에 신촌에 갑니다. 그러나 그 무질서에도 속에도 하나의 질서가 있습니다. 그날도 신촌역에서 뵌 어르신. 그 어르신만이 유일한 규칙입니다. 내가 6번 출구로 내려가려 할 때 그분은 늘 양손에 무언가를 가득히 들고 올라오려 하십니다. 어르신이라 표현을 하였지만, 그분을 처음 뵌 9월부터 내심 노숙자라고 정의를 했습니다. 언제나 같은 옷, 물건으로 가득 찬 비닐봉지, 언제 감으신지 모르겠는 머리카락은 노숙자 또는 광인이라는 인상을 주시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살아있다. 또는 죽어있다고 무언가를 서술할 때 비단, 심장 박동의 유무로만 표현하지 않습니다. 활기차고 진취적인 이들에게는 보통 살아있다는 표현을, 무기력하고 발전이 없는 이들에게는 죽어있다고 은유적으로 말하죠. 주제넘은 얘기지만, 나는 그 어르신을 죽어있는 사람이라고 인식했나 봅니다. 어딘가 목적을 가지고 계단을 올라오는 것이 아닌. 일종의 작용같이. 한참을 신촌역에서 고정되어 계시다가. 내가 도착하면 비로소 올라옴을 시작하는, 내가 사라지고 나면 다시 내가 내려갈 날만을 기다리는 기계적 장치라고만 받아들였던 겁니다. 그런 어르신을 타인의 장소에 고정된 어르신을, 나의 공간인 학교 앞에서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한 생명의 죽음을 목도했을 때. 다 큰 참새도 아니고, 생명의 피어 오름을 강렬하게 느낄 유년기의 참새의 죽음을 내 손으로 이해한 직후에. 죽어있다고 알았던 이가 살아있음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신촌역이 아닌 학교 앞까지 엄연히 당신의 발걸음으로 침범하신 어르신은 이동성이 있는 하나의 유기체였습니다. 이런 아이러니함. 생명을 느껴야 하는 이는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고. 죽었다고 여겼던 이가 살아있는 부조화는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무거운 짐들을 들고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는지. 어찌하여 저 빌딩으로 들어가시는지. 나는 어르신의 다음을 묻고 말았습니다.

 죽음과 그 후에 대해 한참 고민했지만, 죽음에 대해 잘못 정의조차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여태껏 왜 나의 공간에서만 타인을 인식하며 살아왔는지. '살아있음'은 무엇으로 규정되는지. 새로운 의문과 후회만이 남았습니다. 또 한 가지 깨달음. 나의 공간이 나'만'의 공간이 아녔음을 공유된 공간임을 배우며 점심시간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런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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