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규헌
시골쥐
시골쥐가 물었다
“그래도 서울이 살기 좋겠쥐?”
300/28
학교 근처 골목
들어가면 늘 해장하는 곳과 덮밥집 횟집있고
그대로 쭉가면 술집과 술집
그 맞은 편에도 술, 술, 술 온통
술, 을 지나쳐 골목 어귀 오르막길 오르면
다닥다닥붙어살고있는한칸짜리방들
위태로운 아스팔트를 만원짜리 신발로
한참을, 아직도 한참을
헉,헉,헉,헉,헉,헉,헉,헉,헉
헉,헉,헉,헉,헉,헉,헉,헉,헉
헉,헉,헉………
운세
사주를 본다는 철학관이 보일때까지
헉,헉,헉,휴.
한번 더
구비를 오르면 삼백에
이십팔
싸고,높고,넓고,좋은 방
살아보기는
참, 살기에는
힘겨운 곳이
2호선 수필
나는 맞은 편에 앉은 사람들을 바다 동물에 대입해 봤다.
그건 꽤 재미있는 사색이었다.
이번 역은 을지로 3가, 을지로 3가 역입니다.
유러피안 문어 커플과 망둥어 아주머니가 내리고
나간 자리에는
소금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나는 둥그런, 네모난 모양의 까만 창을
바라보며,
지하철은 사람이 가득 찬 수조일지도 몰라.
어디론가 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갇혀서 돌고 있는 걸지도.
이번 역은 신촌, 신촌역입니다.
사람 떼에 휘말려서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그제서야
한숨을 쉬어 보려
하지만
꾹 닫혀서 열리지 않는 아가미.
300/38
아침
엘리베이터가 고장났다
고장나서 움직이지 않으면 그게 차라리 다행인데 고장난 채로 움직이고 있다.
저 위에 15층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 내가 사는 7층에 멈춰야 하는데 멈추지 않고 내려간다
그럼 또 다시 올라오는 이번에는 문을 열어주느냐
어김없이 7층을 지나쳐 저 위에 18층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다시 내려올 때는 고대하던 문이 열리긴 해도
엘리베이터가 인문학부건물 1층까지 가는 게 아니라서
나는 거기서 발을 구르고 있다
마치 좁은 곳에 갇혀있었다가 금방 풀려난 사람처럼 좁은 곳에서 발을 구르고 있어야만 한다
밤
엘리베이터가 고장났다
고장나서 내려오지 않으면 차라리 그만인데 내려와서 문을 열어놓고 가만히 서 있다.
지치고 성난 손가락으로 를 갈기면 굼뜨게 닫혔다가
층계를 눌러놓고 잠깐 숨 참는 그 사이에 문이 늘어지게 열린다.
몇번씩이나 1층에서 타서 1층에서 내리다가 갑갑해서
발을 구르며 나와 생각을 한다.
아침에는 갑갑했던 7층에서 내려가려고 했는데 이제는 그 갑갑한 7층으로 갑갑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려니 갑갑해 뒤지겠구나. 대체 뭐가 갑갑한거지. 엘리베이터가 갑갑한건지 그보다 엘리베이터가 고장난 것이 갑갑한건지, 나와 내 생활이 문제라서 갑갑한건지 저기 위에 7층이 갑갑한건지 그중에서도 내가 사는 좁고 음습한 방이 갑갑한건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을 다 종합해놓고 보니 갑갑갑갑갑갑갑갑갑갑한것인가보다다.
집에는 들어가 자야겠으니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가 7층으로 올라가 있었다. 갑갑하다.
지압
인터넷 지도에 학교명을 검색해 둘러본다
자주 가던 술집을 검색해보고
영영 없어져서 안타까워한다
또 한 곳은 이름도 위치도 달라졌지만 같은 곳이라고 한다.
익숙해질 리 없는 이름을 곱씹어본다.
매일같이 지나갔던 길목은 다 지워져있었다
재개발이 한창 진행중이라고 한다
익숙한 이름을 떠올리면서 손가락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발 밑으로 욱신하게 느껴지는 생소한 길의 지압은
지압인지 아니면 지압인지.
안전제일
일층 차고에는 안전제일이 있다
자동차 꽁무니와 콘크리트
뒤에 핀 여름풀 사이에서
둘 중에 어느 안전이 제일인지를 고민하고 서 있다
500/50,여름,제습기
에어컨을 틀면 비행기 엔진 소리가 났다
숨이 막혀서 틀 수가 있어야지
7~8월의 장마전선이 여기 방 안에까지 걸쳤다
창문은 닫혔어도 환기는 되는 것이 온난화가 진행되는 세상의 원리인가보다
고온다습하기도 해라
습기와 땀방울이 형성한 여섯평 방 안의 기후는 정말 열대같았다
처음엔 온몸이 녹초가 된 느낌
그 다음은 세상이 변한 것 같은 공포
그리곤 차라리 겨울이 낫다거나 전에 살던 곳이 좋았다는
손바닥 뒤집기나 다름없는 생각들
제습기를 구매했다
방을 차지하던 열대같던 기후와 장마전선이 안녕히- 가셨다
그제서야 세상이 제자리를 찾은 듯 싶었다
장마는 일주일 뒤에 끝이 났다
서울쥐
그래서 서울쥐가 대답했다.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