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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우 Jan 27. 2023

아버지와 축구

2022 카타르월드컵이 열렸던 최근에는 어딜 가나 축구 이야기였다. 나와 내 친구들 역시 늘 그랬듯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훈수를 두며 함께했다. 사실, 온 국민이 축구전문가인 대한민국에서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남자는 드물다. 나 역시 축구를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게 축구는 그보다 더 특별하다. 아버지와 축구에 관한 추억이 많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대학 때까지 축구선수였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그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보통사람 다리의 두 배 정도 되는 굵은 다리를 신기하게만 생각했었다. 그 통나무 같은 다리가 무섭기도 해서 말도 더 잘 들었던 것 같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버지가 이른 나이에 은퇴하셨던 이유는 무릎 부상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아버지는 늘 내게 공부가 제일 쉽다며 운동은 취미로 하라고 말씀하셨다. 가보지 않은 길은 모르는 거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나는 운동에 재능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하루종일 축구만 해도 즐거웠고, 아빠가 축구선수였으니 나도 당연히 축구를 잘할 거라고 믿으며 지냈다.

  

주말에 친구들과 집 앞 공원에서 축구를 할 때면 가끔 아빠가 구경하러 나오셨다. 당시 축구를 좋아하는 초딩들의 로망은 공을 감아서 차는 기술, 소위 바나나킥이었다. 아직 다리 힘이 부족해서인지 아무도 바나나킥을 하지 못할 때 아버지가 그 기술을 보여주셨다. 공이 어떻게 저렇게 휘어서 가는지, 우리 모두 “우와~우와~”를 남발하며 또 보여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체육교과 실기평가로 축구 드리블 시험을 준비할 때도 아버지가 도와주셨다. 밤마다 같이 공원에 나가 돌멩이를 놓고 드리블 연습을 수없이 했다. 직접 시범도 보여주시고, 스톱워치까지 챙겨가며 가르쳐주셨던 장면이 기억난다. 본인이 가장 잘하는 일을 자식에게 알려주는 아버지의 마음이 꽤 흡족하셨을 거라 짐작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처럼 축구를 과외로 배운 사람도 흔하지 않을 일이다. 아버지와의 시간이 많지 않았던 중학생 시절, 내게 남아있는 소중한 추억이다.


중3 때는 2002월드컵이 열렸다. 당시에는 케이블TV를 봐도 지금처럼 채널이 많지 않았다. 투니버스, OCN, MBC ESPN 등 대표 채널 몇 가지만 있었다. 당시 아버지는 MBC ESPN에서 이탈리아 세리에A 리그를 중계하는 축구 해설위원이었다. 2002년 월드컵도 중계하셨는데 우리집이 케이블TV를 보지 않아서 비디오 녹화본으로 중계하는 모습을 봤다. 그때 TV에 가족이 나오면 뭔가 괜히 어색하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아무튼 축구관계자를 아버지로 둔 덕에 대표팀 유니폼, 공인구, 경기 티켓도 쉬이 가질 수 있었다. 그 나이대 학생이 흔히 누릴 수 없는 호사였다.


2002년 당시 가장 유명했던 해설위원은 신문선이었다. 월드컵 성적과 맞물려 연예인보다 더 인기가 많은 분이었다. 마침 집에서 축구를 보는데 아버지가 신문선이 친구라고 하셔서 속으로 ‘에이~설마’ 했었다. 평소 TV에 유명한 운동선수만 나오면 잘 아는 사이라고 하셔서 그냥 그러려니 했던 것이었다. 분명 아버지께서는 믿음직한 사람이었지만 TV에 나오는 사람이 워낙 대단하게 보일 나이였다. 나중에 형 결혼식에서도 뵀던 그 분은 내 친구들의 주요 관심 대상이었다. 본인 뒤편으로 지나가는 것도 모르고, 친구가 신문선 아저씨의 성대모사를 하던 모습도 기억이 난다.


사실, 아버지의 본업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정년을 6개월 앞두고 암으로 돌아가셨지만,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까지 학교에 나가 학생들을 가르치셨다. 그 마지막 수업이 ‘축구실기’였다. 나를 가르쳐주셨듯이 제자들을 가르치셨을 거 같다는 생각에, 중학생 때 드리블 수행평가를 도와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이렇게 그리운 사람과의 추억을 늘어놓을 수 있게 만들어준 축구가 내겐 그래서 더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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