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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우 Jan 15. 2023

고마운 후배

얼마 전 우연히 우리나라 초대 문체부 장관 故이어령 교수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이어령 교수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동반자들이 없었기 때문에 실패한 인생이었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했기에 본인 역시 사랑받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유독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던 건, 그 말끝에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상처받지 않으려다 사람들에게 마음을 쉬이 열지 못했던 시간들을 돌이켜봤을 때 내 삶도 지금까지는 성공과 거리가 있는 듯하다.


그래도 지나온 시기마다 나의 사람이라 여기며 마음을 열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들에겐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무엇보다 솔직하며,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이 있고,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면모를 지닌 사람이 많았다. 내가 닮고 싶은 사람들이자, 나도 모르게 존중하게 되는 종류의 사람들이었다.


대학생 시절, 같은 과 후배였던 현주가 그랬다. 새내기 때부터 붙임성 있게 다가오던 후배와 본격적으로 가까워진 건 학생회를 함께 하면서부터였다. 당시 동고동락했던 후배들이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난 집행부원 중 유독 그 친구를 아꼈다. 함께 일을 하다 보면 사람들을 자연스레 비교하게 되다 보니 그랬었던 것 같다(그러지 않았어야 하지만 그땐 나도 너무 어렸다). 일을 받는 사람은 모르지만, 일을 주는 사람은 누가 일을 성의있게 하는지 알수있지 않나.


아무튼, 현주는 맡은 일을 ‘스스로 찾아’ ‘골몰하여’ ‘높은 수준’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잘했기 때문에 칭찬을 부러 참은 적도 있었다. 게다가 일보다 사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면모도 갖춘 후배였다. 그래서인지 언제나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매일 일 생각만 하다 사람들과의 추억을 뒤로 미루던 나와는 무척 다른 친구였다. 나 역시 그런 자연스러운 현명함을 배우고 싶었다.


우리는 신입생 OT, 대학 축제, 학술제, 농활 등 모든 행사를 함께 준비했다. 사람들이 세밀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할 때도, 현주는 내가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이해해주었다. 서로 성격도, 성향도 완전히 달랐지만 일에 대한 책임감이나 가치가 비슷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이런 모습을 보며 어떤 후배는 “저에게 오빠와 언니는 <노다메 칸타빌레>의 치아키와 노다메 같은 사람들이에요.”라고 편지를 써줬는데 아마 꽤 호흡이 좋아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다(극 중 치아키와 노다메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지만, 서로에게 배우며 응원하는 사이다).


몇 년 전, 구직면접을 보러 갔을 때 학창 시절에 고마웠던 사람에 대해 말해보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비록 면접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그 순간에 현주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잘하고 싶은 마음과 달리 사람들이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아서 고민할 때, 제 생각을 온전히 이해해줬던 후배가 있어서 잘 해낼 수 있었습니다.” 나 역시 동료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겠다며 마무리했던 그 대답이 참 진심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한 후배에게 굳이 고마운 마음을 전하지 않고 이렇게 글로만 남깁니다. 

제 마음이야 본인이 어련히 알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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