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승리
신차를 뽑았다. 차를 몰고 오르막을 가는데 힘이 달린다. RPM이 너무 급상승하길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운전경력이 오래되셨고 다방면에 아시는 게 많으시다. 그래서 자동차에 문제가 있을 때는 가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묻는다. 얼마 전에는 신호등 앞에서 정차 중 브레이크를 놓쳐 앞차를 박았다. 그날도 보험사와 통화 후 좀 꺼림칙한 게 있어 아버지에게 물었다. 원래도 걱정이 많으신 분이신데 너무 스트레스를 드리는 것은 아닌가 싶어 아차 싶을 때도 있다. 그래도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다. 사실 이런 문제상황이 없으면 우리 부자의 대화는 채 1분을 넘기지 못한다. 그래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조언을 구하곤 한다. 물론 철없는 나의 행동 때문에 아버지는 화를 내시기도하고 나를 믿지 못하시는 아버지 때문에 나의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꾸준히 나의 걱정으로 아버지를 염려시켜 드린다. 잘 사는 모습만 보여드리고 효도하며 살고 싶지만 내겐 그런 능력이 없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걱정만 끼쳐드리고 살고 있다.
나이가 드실수록 아버지는 더 연약해지신다. 가끔은 내가 아는 아버지가 맞나 싶을 정도록 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신다. 이런 모습을 마주하는 나는 때론 짜증이 나고 가끔은 아리다. 그나마 아버지가 가장 예전의 아버지 같은 모습을 보이실 때는 자식들을 걱정하실 때다. 그때는 아버지의 목청도 커지시고 표정도 선명해지신다. 어처구니없게도 나의 문제들이 아버지의 정신건강에 꽤나 도움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사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삶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스트레스를 대하는 긍정적 태도가 중요하지만 분명 적당한 스트레스는 삶에 적당한 긴장과 에너지를 주는 듯하다.
그렇다고 나의 고민상담이 아버지의 정신건강을 위한 거라고 말히면 너무 억지 같은가? 안다. 반성하고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불효자는 이렇게 스스로 최면을 건다! 난 또 대단한 정신승리를 해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