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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연필 Jun 14. 2024

한인 상가를 잠식해 가는 중국인의 단결력

싱크 어게인



 남미에 살던 시절 친하게 지내던 중국인 친구가 있었다. 170cm 정도의 키에 마른 체형. 머리는 짧고 피부는 까무잡잡하다. 말할 때마다 눈에 힘이 들어가면서 원래도 큰 눈은 더 커지면서 단단한 내공이 풍겨져 나왔다. 그 친구가 처음 남미로 왔을 때는 보따리 장사를 했다. 말도 안 통하던 친구는 갖가지 짝퉁신발을 보따리에 담아 전국을 누비며 현지인에게 팔았다. 그러다 어느 날은 강도를 만났고 강도의 총을 맨손으로 제압했다. 사실 남미에서 강도는 중학생 정도의 돈 없는 어린애들이 많다. 그래서 총도 가짜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50%의 확률로 목숨을 거는 도박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친구에게 그 보따리는 온 가족의 전재산이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중국인들은 돈을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몇 해 후 그 친구는 컨테이너로 물건을 들여오는 제법 큰 무역상이 되었다.


 그 친구 주변에는 그렇게 빈손으로 이민을 와서 큰 무역상이 된 친구들이 꽤 있다. 처음에는 같은 고향 출신 중국인의 도매가게에서 점원으로 일을 한다. 그러다 현지의 언어가 익숙해지면 그 가게의 물건을 다른 소매점에 판매를 하며 수수료를 번다. 그리고 자신만의 고객이 어느 정도 확보되면 중국에서 직접 물건을 들여온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자리를 잡아간다. 사실 컨테이너 하나를 들여오려면 적잖은 돈이 들어간다  일단 모든 인맥을 동원해 중국공장에 최대한 외상을 깔고 부족한 금액은 온갖 친척과 친구들의 돈을 끌어와 투자를 한다. 그야말로 영혼까지 탈탈 털어 투자를 한다. 그리고 그 도박이 성공하여 거부가 되는 경우가 꽤 많다. 그 성공의 밑바탕에는 목숨까지 거는 절박함과 주변 친인척들의 도움이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주변의 한인들은 독한 놈들이라며 혀를 내두르면서도 그들의 단결력을 부러워한다. 화교들의 ‘끌어주기 문화’는 한인 교포들 사이에서는 이미 익숙한 이야기다. 보따리 장사를 하던 중국인들이 주변의 한인상가들을 하나씩 잠식해 가는 중국인들을 보면서 드는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경험에서 나온 교포들의 관점을 존중한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중국인 친구들이 날 보면서 자주 하던 말이 있다. 너희 한국인들은 참 단합을 잘한다고. 그래서 서로 가격경쟁도 안 하면서 마진을 잘 유지한다고.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인은 IMF시절 집안의 금부치를 갖고 나왔던 애국자들이고 월드컵 때마다 시청 앞에 모이는 붉은 악마들이다. 심지어 한국의 거리에는 현대와 기아자동차 밖에 없다며 한국인의 애국심을  말한다. (특히 일본차가 많이 없는 것에 많이 놀란다.)


 이렇게 한인교포와 화교들은 서로의 ‘단결력’이 더 대단하다며 부러워한다. 그러나 이건 그냥 남의 떡이 커 보이는 우리의 착각일 수도 있다. 사실 저렴한 인건비를 기반으로 세상 대부분의 공산품을 생산하는 중국인들이 도소매 시장을 장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인들이 남미의 의류업을 장악하기 전에는 유태인들이 의류업을 장악했었다. 그 자리를 70년대 이민 간 (봉제업에 능숙한) 한인들이 물려받았고. 지금 그 자리를 중국인들이 잠식해가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이 단결력이 없어서 한인들에게 옷가게를 뺏긴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지금 한인들과 중국인들의 상가가 입주해 있는 건물의 주인들로 진화했을 뿐이다. 유대인에서 한인을 거쳐 중국인들로 대체되고 있는 의류상가들이 언젠가는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이민자들에게 그 자리를 내줄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중국은 제조업 인프라도 훌륭하고 시골에는 아직도 저렴한 인건비가 넘쳐나서 당분간은 어려워 보인다.) 중국인이 한인 상가를 잠식해 가는 것은 그들의 단결력과는 큰 상관관계가 없는 것 같다. 그저 각자의 ‘때’에 따라 맞는 위치에 서있는 거다.


 그리고 화교들의 끌어주기 문화가 모든 중국인에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주로 해외에 나와있는 중국인들은 광동, 원저주, 푸지엔, 차오산, 칭티엔 등 일부지역의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이들은 그 지역(고향) 사람들에게만 우호적이다. (당시) 먹고살기 어려워 함께 이민온 친인척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그들만큼이나 그들이 보는 우리도 오해가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살아가다 보면 이런 오해와 착각들은 너무도 많다. 우리는 아주 작은 단서로 어림짐작하며 서로를 규정(판단) 하기 때문이다.  가끔 우리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거나 자신이 믿는 것만 본다. 그리고 그 생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견고해진다. 이처럼 우리의 생각들은 의외로 오류가 많다. 우리의 뇌가 세상의 변화속도를 따라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세상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변하고 있다. AI와 로봇의 발전속도를 인간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기존의 가치와 질서마저 무너지고 있는 과도기에 와있다. 우리가 절대적이라 믿고 있는 현재의 생각(결정)에 의심을 품으면서 호기심과 겸손함으로 ‘다시 생각’해야만 쓸모없는 다툼을 줄이고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배에 탑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중국인의 단결력이 한인상가를 잠식한다는 망상을 버릴 수 있을 것이다.(현상은 맞지만 인과관계가 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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