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과 1 사이

by 유한성


공중을 유영하는 음들을 수집해

피아노 선율로 이뤄진 곡을 들으면 꼭 울 것만 같고

끊길 듯 이어지는 인연만 생각하면 꼭 그날 봤던 야경처럼 일렁거리고

이어질 듯 끊어져버린 인연만 생각하면 꼭 바닥 가까이 배를 맞대고 누워 부스럼을 긁어모으고 싶어져

어떤 빗물은 슬픔을 너무 많이 먹어 체한 습함과 닮아있는 것 같아

생각나는 숨 쉬는 문장들이 더는 많지 않다는 사실은 잊다가도 서글퍼지는 마음이고

어쩔 수 없다며 위안 삼아 살아내다가도 끝없는 실망이 지속되면 또 눈을 돌려버려

사랑하는 것들이 더없이 많아진 세상에서 더 사랑하고 싶은 건 이제 욕심이라 생각하고 싶지 않아

그럼 너가 나 좀 안아달라는 말이야말로 욕심 같아

당연한 사랑이 소실될 미래를 그리면 저 멀리 있던 늘 빛나던 초신성이 수명이 다 닳아 죽어버린 것 같고

응석 부리는 걔가 더더 울고 나를 찾아줬으면 하는 미운 마음만 늘어가는 나날이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직 없는 건 수집하고 있는 와중이라 믿고 싶고

늘 아플 때만 찾던 사람은 이제 서서히 멀어져만 가서 가슴이 미어져와

살기 싫은 건 사실 너무 잘 살아내고 싶은데 마음처럼 안되어서 그런 거였고

살면서 아리따운 것들이 꼭 엄청난 자극제 투여한 것처럼 사방팔방 반짝이는데 그걸 일일이 다 기록하지 못하는 건 내가 너무 크기가 작아서일까 아니면 그들이 너무 압도적이라서일까 그런 부질없는 생각이나 하게 돼

야식은 오늘도 참을래

난 아주 오래전보다 오늘과 내일의 나를 무척이나 아끼니까

안녕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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