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 치는 골짜기 걷다 보면 통장수 애절한 울음소리
구만산은 운문지맥의 마지막 구간으로 육화산(675m)과 이어지고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과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의 경계를 이룬다. 구만산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에는 가인계곡이 있고, 왼쪽에는 구만폭포가 있는 통수골(洞簫谷)이 있어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 곳이다. 연둣빛으로 물들어가는 산하. 흐르는 물소리가 가슴을 적시고 물소리를 따라 산천을 오르다 보면 어느덧 시간이 멈춘 자리 '무릉도원'이 펼쳐지는 곳, 임진왜란 당시 9만 명의 사람들이 전란을 피하여 숨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최근 소셜 네트워크(SNS)에서 인증사진 찍기 명소로도 알려졌던 곳이기도 하다.
구만폭포, 구만약물탕, 일제 강점기에 남석(자수정)을 캤던 인공 동굴인 구만굴, 벼락듬이, 상여바위, 병풍바위 등과 같은 기암괴석이 시선을 압도한다. 또한 깎아지른 듯한 벼랑을 지나다 발을 헛디뎌 떨어져 죽었다는 통장수의 슬픈 사연이 전해져 내려오는 곳으로 통처럼 생긴 바위 협곡이 2㎞에 달한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지고(至高)의 것은 경탄(驚歎)이다. 인간은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내려고 하지만, 그것은 헛된 일이다. 그것은 마치 거울을 처음 본 어린애가 거기에 비친 물상(物像)들이 신기로워서 그 뒤에 무엇이 있는가하여 뒤집어 보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독일의 문호 괴테의 <에커만과의 대화>에 실린 글이다. 이 아름다운 봄! 발에 차이는 돌멩이조차도 아름다운 계절, 진귀한 풍경이 펼쳐지는 곳 우리는 이곳을 구만동천이라 부른다.
# 무릉도원 연상케하는 길
계곡물은 속살을 훤히 드러낸 채 추운 겨울의 고통을 덜 쳐내고 봄이 왔음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돌부리를 어루만지며 무심히 흘러간다. 곳곳에 자리 잡은 넓은 암반과 소(沼)와 담(潭) 그 사이로 봄을 속삭이는 정령들의 울림은 맑고 깨끗하다. 흐르는 개울물은 하얀 포말을 연신 토해내고, 천태만상의 기암괴석들은 산객들의 가던 발걸음을 멈추어 세우게 한다. 간혹 골짜기 사이로 불어오는 퉁소 소리처럼 들리는 향기로운 바람과 그 사이로 진달래, 개나리, 생강나무꽃, 벚꽃, 철쭉이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길, 이런 곳이 무릉도원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약2㎞쯤 남북으로 길게 뻗은 협곡은 마치 통속과 같다 해서 '통수골(洞簫谷)'로 불리며 구만동천(九萬洞天)이라 부르기도 한다.
# 도깨비와 약속 잊어버린 통장수
옛날 구만산 자락에 나무통을 팔아 처자식과 노모를 돌보며 생계를 이어가는 한 사내가 살고 있었다. 사내는 부지런하고, 근면 성실해 비가 오는 날이나 농사철을 제외하고는 늘 대나무로 통이나 나무로 함지박, 바가지, 나무장군 등을 만들었다. 5일 장이 서는 날이면 청도, 밀양을 오가며 팔아 부모를 봉양하고 가족을 돌보며 생계를 이어갔다. 어느 겨울 어두움이 채 가시기 전 사내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밖을 내다보니 진눈깨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사내는 평소처럼 사랑채에서 통을 만들기 위해 헛간에 연장을 가지러 갔는데, 머리에 뿔이 난, 눈도 하나, 다리도 하나뿐인 이상한 요괴가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말로만 듣던 도깨비라 생각해 벌벌 떨던 사내에게 "어이, 나무통 장수! 네 놈은 분명 내가 요괴라고 생각했으렷다?" 하며 소리쳤다. 통장수는 겁이 났지만, 지난 여름 마을 어귀에서 어른들이 장기를 두면서 도깨비 얘기를 떠올리며 태연한 척 "아닙니다. 아랫마을 방앗간집 이씨 어르신 자제분 일만씨가 아니신가요? 이른 새벽에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는지요. 뭐 급히 필요한 물건이 있나요?" 되물었다. 그 말을 들은 도깨비는 고분한 말투로 함지박이나 나무장군을 어떻게 만드는지 보고, 배우러 왔다고 했다. 만들어놓은 물건들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호기심이 가득한 어투로 "이것은 참 신기한 물건 같기도 하고 잘도 만들었네"며 "앞으로 내가 통장수 물건이 잘 팔릴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다만 어디를 가던 "비바람 치는 날 누가 통장수! 통장수! 하고 불러도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런 일이 있고 난 이후로 신기하게도 통장수는 마을을 찾아다니며 팔든, 5일장에 가서 팔든 한나절 안에 물건들을 모두 팔고 일찍 집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세월은 흘러 어느 겨울 가지고 간 물건들을 일찍 다 팔고, 지금 구만폭포가 있는 좌측 벼랑을 지나는 순간 갑자기 비바람 몰아치더니 누군가가 통장수! 통장수! 하고 부르는 것이었다. 실제구만폭포 위 수직 암벽 중간 부분쯤에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 통장수는 그 옛날 도깨비가 하던 말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뒤를 돌아보려다 발을 헛디뎌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지금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면 죽은 통장수의 영혼이 두고 온 노모와 처자식을 생각하며 마치 애절하게 탄식하는 소리로 들려온다고 한다.
# 퉁소 소리 내는 퉁소폭포
구만폭포는 멀리서 바라보면 60여m 높은 협곡에서 3단으로 나누어떨어지나 가까이 가 보면 아래쪽에 있는 1폭포와 2폭포만 보이고, 가장 높은 곳에 있는 3폭포는 잘 보이지 않는다. 3폭포 아래에는 마치 절구통 모양의 소(沼)가 있기 때문이다. 3폭포의 높이는 10여m이고, 소를 이루다 흐르는 물줄기는 8m 가량이다. 중간에 있는 2폭포와 가장 아래쪽에 있는 1폭포 높이를 합해 42m이다. 폭포 양쪽에 100m 넘는 바위 절벽이 병풍처럼 폭포를 둘러싸고 있다. 구만폭포 주변은 좁은 협곡이 남북으로 뚫려있어 마치 깊은 퉁소 소리를 내는 것 같아 퉁소폭포라 부르기도 한다. 비바람이 거칠게 몰아치는 날이면 좁은 협곡을 빠져나가려는 바람이 바위 구멍이나 42m 폭포의 물줄기에 부딪히면서 들리는 소리는 마치 울며 통곡하는 소리, 신음하며 원망하는 소리, 탄식하는 소리 등 온갖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그래서 구만폭포를 퉁소폭포라 부르기도 한다. 구만폭포를 에워싸는 병풍 같은 절벽에는 길이 없는 듯이 보이나 폭포 왼쪽으로 가파른 비탈길(450m)이 있다. 구만산 정상으로 가려면 이곳을 지나야 한다.
# 일제 강점기 때 자수정 캤던 구만굴
구만계곡에는 일제 강점기에 남석을 캐던 광산이 있다. 사람들이 거주한 흔적이 남아 있고 주 동굴과 함께 두 개 정도의 작은 동굴이 인접해 있다. 얼마 전 SNS에 화제가 되었고 이곳 동굴을 배경으로 실루엣 사진을 찍는 명소로 부상해 인증 사진을 찍기 위해 많은 사진가가 몰려들었다. 지금은 출입이 통제된 상태로 접근을 금지하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꽃이 바람에 날려 물길을 따라 흘러내리고 높은 절벽에선 거침없이 떨어지는 물줄기는 오색의 무지개를 피어나게 하는 곳. 통장수의 영혼이 두고 온 노모와 처자식을 생각하며 바람 불고 눈보라 치는 날이면 애절하게 탄식하는 소리로 들리기도 한곳. 또한 임진왜란 때 구만명의 백성들이 전란을 피해 숨어들어 목숨을 구했다는 곳. 이곳이 바로 인간 세상이 아닌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라는 곳이 아닐까.
*참고문헌
· 밀양지(密陽誌) - 1987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이야기는 필자가 20여년전 밀양시 산내면 봉의리 에 거주하고 있었던 김창근 씨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바탕
으로 작성한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