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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희영기행작가 May 11. 2024

[영남알프스 전설따라] 아기봉산과 마석산

아기장수의 이야기 증명하듯 기암괴석 가득한 정상

아기봉 시체바위·돌바위·목욕시킨 돌
마석산 맷돌·남근·유두바위 절로 감탄
크고 작은 바위 엉켜 천상의 정원 연출
기암괴석 너머 삼태·호미지맥도 한눈에

마석산 바위군 너머 일자로 길게 이어지는 삼태지맥 모습

아기봉산(236m)은 울산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경주 외동읍(입실, 연안, 냉천, 구어리)한 가운데에 있는 기암(奇巖)으로 된 봉우리다. 이 바위봉은 쳐다만 봐도 '우와'하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신기하고 오묘하다. 산의 높이가 300m도 채 되지 못하는 곳에 마치 거대한 성벽을 쌓아놓은 것처럼 크고, 둥근 바위들이 서로 얽혀 천상의 정원을 연상하듯 하늘을 향하여 솟아있다. 마을사람들은 이 바위를 '아암(兒巖)'이라 부르며 높이가 10여m에 이른다. 정상에 서면 삼태지맥이 이어지는 토함산, 삼태봉, 무룡산이 일자(一)로 길게 이어지고, 남·서쪽의 호미지맥이 이어지는 치술령과 더 넓게 펼쳐진 외동 평야와 가까이는 경주 남산과 인접한 마석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 아기봉산의 슬픈 전설

이 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아주 오랜 옛날 선경(仙境)에 사는 제석천왕의 막내딸(선녀)이 부모의 허락도 받지 않은 한 남자를 몰래 만나다 아기를 갖게 되어 하늘나라에서 쫓겨나 이곳으로 내려와 바위 위에서 아기를 낳았다. 아기는 태어난 지 삼칠일(21일) 만에 일어나서 걸으며 말을 하고 석굴 앞에 있는 지름 50㎝, 길이 1m쯤 되는 돌을 밧줄로 묶어 짊어지고 동몽산 꼭대기에 갖다 놓기를 반복하며 힘을 길렀다.

 임금은 이 사실을 전해 듣고, 장래 임금 자리가 위태로움을 우려해 군사들에게 아기를 없애버릴 것을 명하였다. 군사들이 아기를 죽여 끈으로 묶고 포대기에 싸서 시체를 들고 가려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하고 우르릉~쾅 하는 소리와 함께 폭우가 쏟아졌다. 군사들은 겁이나 도망갔다. 놀라 깬 선녀는 아기를 찾았으나 아기는 그 바위 위에 돌로 변하였다. 선녀는 돌이 된 아기 위에 엎드린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바위에는 포대기에 묶인 아기의 시체가 돌이 되어 남아 있고 아기가 태어났던 곳, 탯줄을 끊은 가위 자국과 목욕시키던 돌 홈이 함께 남아 있다. 바위산 정상에는 아기가 지고 다녔다는 돌이 있는데 그 돌에는 두 줄의 밧줄 자국이 있다. 그 후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 봉우리를 아기봉이라 불렀으며 정상에 전설의 굴이 있다. 신기하게도 정상을 둘러보면 그때의 전설이 사실인 것처럼 느껴진다. 포대기에 묶인 아기가 돌로 변했다는 시체바위, 아기를 목욕시키던 움푹 파진 돌 바위, 아기가 돌을 밧줄로 묶어지고 다니며 힘을 길렀다는 돌 등이 모두 남아 있어 이야기들을 증명하는 듯 하다.  

 산행 들머리는 몇 군데가 있는데, 한 바퀴를 돌아서 원점회귀를 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보통 출발지는 수덕사 또는 건국사를 초입으로 잡으면 된다. 수덕사로 올라가면 건국사로 내려오면 되고, 건국사에서 시작했다면 수덕사로 하산하면 된다.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경북 경주시 외동읍 아기봉길 164를 치면 수곡사 주차장에 도착하게 된다. 

포대기에 묶인 아기가 돌로 변했다는 시체바위
밧줄로 묶어 아기가 짊어지고 다녀다는 돌
아기를 목욕시키던 움푹 파진 돌 바위

# 마석산(맷돌산)


마석산(磨石山)은 경주 남산(南山)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높이 531m의 산으로 남쪽으로는 치술령과 인접해있고, 경주시 내남면(內南面) 명계리와 외동읍(外東邑)의 제내리(堤內里), 북토리(北土里) 그리고 시동(矢洞)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신라시대 외동지역은 신라 6부촌 중 '취산 진지촌(嘴山珍支村)'에 해당하는 곳이다. '취산(嘴山)'의 취(嘴)는 '부리, 주둥이'의 뜻을 가진 한자로서 '취산'이라 함은 마치 '새의 부리처럼 뾰족한 산'이란 뜻을 가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석산 기암괴석지대는 경주 남산의 국립공원의 범주에 넣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최근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평소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마석산 정상에서 조금 북서쪽으로 유두바위, 선바위, 대포바위, 남성의 남근을 닮았다는 남근바위, 촛대바위가 있다. 수많은 바위 가운데 뾰족하게 수직으로 서 있는 바위가 산 꾼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또한 동쪽 성원봉(420.3m) 암릉 가장 아래쪽에 3개의 뾰족한 바위가 비스듬하게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삼지창 바위와 독수리 머리를 닮은 독수리바위, 가시개(가위) 바위도 있다. 


# 맷돌산의 유래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산 정상에 있는 바위가 맷돌처럼 생겨 일명 맷돌산, 뺏돌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뺏돌산은 뼈처럼 삐죽삐죽한 돌이 많은 산, 즉 '뼈돌산'이라는 뜻이다. 한자표기로 표기하면 마석산(磨石山)이 된다. 즉 갈-마(磨), 돌-석(石), 뫼-산(山)으로 맷돌을 의미한다. 그래서 마석산을 이 지역사람들은 '맷돌산'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또한 외동읍 제내리 방면에서 마석산을 올려다보면 산 정상에 있는 큰 바위가 마치 맷돌의 손잡이처럼 보이고, 산의 형세는 마치 맷돌처럼 생겼다 해서 붙어진 이름이다. 또 다른 유래는, 신라시대때 무지하게 큰 홍수가 나서 서라벌의 강과 들판, 산들이 모두 잠기고 말았는데 오직 마석산 꼭대기만 잠기지 않고 맷돌만큼만 남았다고 하여 맷돌산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 백운대 마애불 입상


이 불상은 마석산 백운대의 거대한 바위면에 광배 형태로 윤곽을 거칠게 파내고 안쪽에 입상을 새긴 마애불이다. 불상의 높이는 4.6m로 통일신라시대에 사용되던 당척으로 환산하면 1장6척 크기의 장육상이다.  불상의 모습은 커다란 얼굴에 머리카락이 없으며 상투 모양의 육계가 큼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두 귀는 길게 늘어져 있고 무표정한 둥근 얼굴에는 반쯤 뜬눈과 눈썹에서 이어져 내려온 큰 코, 굳게 다문입술 등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목에는 굵은 삼도(三道)가 새겨져 있다. 삼도란 불상의 목에 가로로 표현된 새줄기의 주름으로 불교에서 깨달음에 이르는 3가지 수행단계를 이르는 말이다. 옷은 양어깨를 덮은 통견을 걸쳤지만, 옷 주름이 없어 미완성 작품으로 보기도 한다. 왼쪽 손목에는 세 가닥 주름이 새겨져 있다. 오른손의 손가락은 위쪽을 향해있고 왼손의 손가락은 아래쪽을 향해 있다.  백운대에 바위전망대에 서면 영남알프스 산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좌측부터 영축산, 신불산, 간월산, 가지산, 상운산, 고헌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낙동정맥이 영남권에 진입하는 단석산이 가까이 다가온다. 

마석산 백운대 마애불입상  

간절히 기도하면 들어주는  영험한 바위

마석산 맷돌바위 

이 바위는 예로부터 영험한 바위라고 알려져 왔다. 간절히 기도 하면서 탑돌이 형태로 바위돌기를 100바퀴를 하면 그 기도를 들어주는 바위였다고 전해진다. 바위 앞에는 야트막한 봉분의 이름 없는 묘(무덤)가 1기 있는데 이 묘의 주인공에 얽힌 슬픈 전설이 다음과 같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옛날 마석산 아래의 동네에 사는 처녀가 한 총각을 연모하고 있었다. 처녀는 차마 연모하는 총각한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맷돌바위를 돌면서 짝사랑하는 그 임과 사랑의 결실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 하였다. 처녀는 바위돌기를 99바퀴를 돌고 마지막 1바퀴를 돌면 100바퀴를 채우려는 순간 처녀는 그만 바위에서 떨어져서 죽고 말았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슬픈 이야기를 품은 맷돌바위다.


# 남근석(대바우)


유두바위 서북쪽 바로 아래에 있는 바위로, 건장한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듯 위로 쪽 뻗어 하늘을 향해 쏟아 있다. 옛날 이 바위를 찾아와 불을 밝혀 치성을 드리면 사내아이를 얻는다하여 아낙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한때는 마을 전체 60여호 중 서울 대학 출신이 20여호라 자랑하며, 이 마을 남정네들이 기(氣)가 세서 객지에 나가 출세하는 것도 이 남근석의 영향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래서 생긴 말이 '북토(北吐)가서 자식 자랑 말고, 말방(末方) 가서 힘 자랑하지 마라'는 속담이 전해져 내려 올 정도로 이 지역 산자락에 사는 사람들은 마석산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마석산 남근석(대바우)


 북토는 영지(影池)에서 남서쪽으로 약 6km정도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이다. 행정구역상 경주시 외동읍 북토리로 북토(北吐)라 부르게 된 것은, 마석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제내리 앞의 토성계(土城谿)에서 남과 북으로 갈리어 흐르는 데 남으로는 울산 태화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마석산이 북쪽으로 토해내는 물의 냇가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북토라 했다. 말방은 경주가 도성일 때 가장 마지막 방(方)이라는 뜻으로 경주시 외동읍 말방리는 예로부터 장군이 많이 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세속을 벗어날 흉금을 갖지 않으면 산수를 감상할 수 없고, 멋진 풍광을 찾아다닐 튼튼한 팔다리가 없으면 그윽하고 신비한 곳을 구석구석 찾아다닐 수 없으며, 여유로운 시간이 없으면 자기 뜻대로 소요할 수 없다. 가까운 유람은 넓지 않고, 얕은 유람은 오래 가지 못한다. 스스로 자신을 물외(物外)에 두고서 온갖 일을 내던져버린 채 외로이 자기의 뜻을 행하지 않는다면, 비록 유람한다 할지라도 유람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의 여행 작가이자 사상가인 서하객이 지은 <서하객유기>를 두고 '반뢰'라는 사람이 쓴 서문이다. 신록이 점점 짖어가는 계절. 떠오르는 해는 눈부시도록 밝다. 이 좋은 계절 반뢰가 서하객유기의 서문에 쓴 글처럼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하루 일정으로 스스로 자신을 물외(物外)에 두고서 온갖 일을 내던져버린 채 유람을 떠나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 진희영 산악인·기행작가 -



*이야기는 필자가 20여년전 외동읍 북토리에 사는 한 노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글 임. 

*참고문헌

·현지 문화재 안내표지

·외동 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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