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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가 Feb 28. 2024

일본어 공부 도전기 1

시작이 반?

시작은 남는 시간에서 비롯됐다. 주말을 제외하곤 매일매일 출근하는 방송을 그만두니 남는 게 시간이요, 넘치는 게 시간이었다. 게다가 10여 년 가까이 매일 정해진 습관으로 생활해 온 터라, 내 앞에 펼쳐진 텅 빈 시간 앞에서 당황스러웠다. 매일 고정으로 할 수 있는 것, 뭔 가를 배운다면... 손재주도 없고, 그다지 배우고 싶은 것도 없었던 내 앞의 선택지는 외국어뿐이었다. 영어는 매일 조금씩 하고 있었고, 그렇다면 여기에 하나 더 추가. 바로 일본어였다. 몇 년 전 두 어 달 배우던 중, 갑자기 어려워진 문법에 당황해서 그만둔 그 일본어!


일단 주변의 반응이 궁금했다. 굳이 이제 와서 일본어라니, 쓰잘 데기 없는 일본어라니, 게다가 이제 스마트폰 하나면 통역까지 다 되는데 일본어라니.. 역시 시큰둥했다. 그런데 내 마음은 청개구리였다. 오히려 이런 반응에 다시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솟아올랐으니 말이다. 학원의 성지인 강남역에 있는 일본어 학원을 찾아갔다. 수년 전, 공부하다 만 바로 그 학원. 혹시 기초 일본어 회화반은 없는지 물어봤다, 4개월짜리 기초 문법 과정을 완주하거나 레벨 테스트를 통과해야 그것도 원어민 회화도 아닌 한국인 회화반 만이 가능했다. 4개월이라... 긴 시간이다. 그 사이 내 상황이나 처지가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 방법은 하나였다. 4개월 문법 과정을 매일 두 시간가량의 수업으로 두 달 만에 끝내는 속성반에 등록하는 것뿐.


매일 공부해야 하는 속성반에 대한 부담은 컸다. 결국 상담만 하고 등록은 하지 않은 채 1월 첫 주, 나는 여행을 떠났다. 여행 중간, 함께 상담하러 갔던 친구가 연락이 왔다. 나, 등록했으니 너, 등록해. 한 달 20번 수업 중 4일을 빼먹었지만 동영상 수업으로 대체하고 오자마자 등록해. 그렇게 해서 나는 다시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학원이 있는 곳은 강남이 아닌 종로.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동영상으로 공부하고, 첫 수업을 받는 날... 13명의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친구와 나 빼곤 20대처럼 보였다. 수업 시작 질문은 늘 같았다. 오늘은 몇 월 며칠? 일본어 공부를 왜 하나요? 학생들의 대답은 비슷했다. 유학 가려고요, JLPT 시험 보려고요, 워킹 홀리데이 가려고요. 친구와 나의 대답은 그네들과 조금 달랐다. 여행 가서 말이나 조금 해 보려고요.


이틀마다 단어 시험이 있었다. 80개 정도 되는 단어를 외워야 하는데, 히라가나조차 헷갈려 죽겠는데, 이 많은 걸 단 이틀 만에 외우라니. 붉은색 X가 넘치는 시험지를 오랜만에 받아본다. 내 교재는 온갖 필기로 빡빡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본 옆에 있는 남학생의 교재를 보니 하얗다. 필기는 안 하는데, 선생이 물어보면 답도 잘한다. 이럴 수가!! 친구가 한마디 한다. 요즘 아이들은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데 강해서 우리처럼 필기 잘 안 해.   


1단계 수업 8일 차, 첫 번 째 진급 시험이다. 70점 이하로 통과 못하면 재수강이다. 무려 4일이나 빼먹었기에 엄청난 압박이 찾아왔다. 시험 이틀 전부터 미친 듯이 공부했다, 외우고 또 외웠지만 돌아서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분명 수업 시간에는 이해했는데, 다시 보니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간다. 옛날처럼  계속 쓰고, 말하고의 반복이다. 시험 전 날, 커피와 카페인 음료를 마셔 대며 밤새 공부했다. 이 나이에 공부한다고 밤샘이라니... 시험 전, 비굴하게 선생에게 귓속말을 했다. 저, 70점 안되면 다시 공부해 올 테니 내일 재시험 보게 해 주세요.


86점!! 시험지를 돌려주며 선생님이 한마디 한다. 지연상, 시험 잘 봤는데요. 암요, 4일이나 빠졌는데 이 점수라니 고맙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 그깟 학원 진급 시험이 뭔데 싶지만, 내겐 새로운 도전에 대한 첫 시험이다. 이렇게 해서 나의 일본어 공부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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