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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현 Sep 06. 2022

대기업 퇴사 후 후회

이게 후회일까?

또렷이 기억 난다. 롯데백화점에서 쇼핑하던 중 아래 화면을 확인했을 때 포효했던 내 모습을.


.

재수 없게 들리겠지만 나는 남들보단 제법 쉽게 대기업에 입사를 했다. 해외대학 재학 중이란 이유만으로 국내 공채보다 경쟁률이 훨씬 낮은 해외공채를 통해 입사했으니까 (지금은 이 전형이 없어진 것으로 안다). 남들은 문제지를 사서 몇 주 동안 공부한다는 SSAT도 내가 알기론 비교적 쉬운 GSAT을 보았다. 이게 뭐 어렵다고 호들갑이지? 건방을 떨면서 문제 하나하나를 풀어가는 내 모습이 선명히 기억이 난다.


결과는 예상대로 합격이었다. 남은 건 대면 면접이었는데 다행히 한국에 잠시 들어 올 일정과 겹쳐 생전 처음 들어본 아산이라는 도시로 면접을 보러 갔다. 아산 OLED캠퍼스에 들어서는 순간 난생처음 보는 빌딩 크기에 가슴이 웅장해졌다. 그 당시엔 A3까지만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A3도 축구장 5~6개 크기니까.


면접도 대체적으로 스무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적성, 기술, 임원면접이 있었는데, 기술면접은 좀 어버버 했지만 (질문이 경쟁자 디스플레이 제품을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 였다) 나중에 면접 진행요원 때 지켜보니 대부분 면접자들이 어버버 스킬은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었으니까.


임원면접은 좀 묘했다. 임원 세분이 계셨는데, 내가 금방 퇴사할 사람이라도 될 것처럼 멘트를 쿡쿡 찌르셨다. "몇 년 근무하시다가 미국, 캐나다로 이직하실 거 같은데..", "다른 경쟁사로 이직하실 거 같은데.." 그 당시엔 그 분위기가 몹시 불편했다. 아니 내가 당신들 회사에 지원을 하겠다는데, 무슨 말들을 그렇게 하시지? 결과론 적이지만, 이 분들의 생각은 굉장히 날카롭고, 합리적이었다. 그렇다, 나는 결국 20개월 만에 퇴사를 했다. 이 중 거의 반은 OJT, 교육으로 보냈으니 회사 입장으로선 엄청난 Loss인 것이다.


20개월 만에 관두게 만든, 짧은 기간이지만 그 당시 나를 괴롭혔던 복잡한 생각들과 트러블들은 따로 글로 적을까 한다. 지금은 퇴사한 지 7년 만에 후회 아닌 후회를 고백하고 싶다.


퇴사를 안 했더라면


1. 또래에 비해 준수한 재산을 모아뒀을 것이다.


Money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을 수가 없다. 2022년 지금도 기본급 4,000 수준이라면 꽤나 괜찮은 첫 직장으로 여겨지는데, 현재까지 9년을 근무했다면 아마 쌓이는 연차수에 대한 임금인상, 승진할 때 받는 인상, 출장비, 야근, 특근비 등등을 합치면 7~8,000은 찍지 않았을까? 거기다 삼성의 꽃이라 부를 수 있는 PS는 매년 1,000에서 많게는 3,000까지 찍혔을지 모른다. 괜히 PS 받는 날은 정문 앞에 자동차 영맨들이 대기한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나온 게 아니니까. 


신기한 일이지만 퇴사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동기들과 종종 술 한잔을 하곤 한다. 동기들은 내가 삼성을 안 다녀서 그러지, 정산 때 찍힌 자기 영끌연봉을 귀띔해주기도 하는데, 일단 "1억..."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just 1억이냐 vs 1억 1~2천이냐로 좋은 계열사냐, 좋은 사업부냐로 나눠진다. 얼마나 웃긴 일인가, 코로나 즈음부터 IT회사들이 연봉 1억을 준다 만다 하는 기사들이 많이 나왔는데, 이들은 벌써 1억을 벌고 있으니...


물론 개인마다 씀씀이가 다르겠지만, 괜찮은 벌이가 바탕이 됨으로 대부분 차, 자가를 소유하고 있다. 여기서 자가는 부모님께 도움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으나, 동일 나이대들이 받는 경제적 도움보단 훨씬 적게 받았을 거라 짐작된다. 아니 확신한다. 게다가 근무지가 수도권이 아닌, 충남 아산/천안임으로 서울처럼 >10억 하는 집이 많은 것도 아니다. 해외 월세생활이 지긋지긋 한 나에겐 자가를 소유한다는게 엄청나게 큰 메리트로 느껴진다.


이렇게 경제적인 부분은 나의 후회의 1위를 차지한다. 


2. 결혼을 했을 것이다.


나는 Pro-결혼 주의다. 외국생활을 오래 지내며 외로움에 사무쳐 혼술 하던 날이 수두룩했고 (thank you 코로나...), 주위 사람들이 하나둘 결혼한다는 소식은 나를 무척 부럽게 한다. 부모님이 터치를 안 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자발적으로 부러워하고, 결혼을 갈망했다. 외국생활도 한 곳에 정착한 것이 아닌,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했으니 짝을 찾는 건 물론이고 동성친구 조차도 만드는 게 어려웠다. 이렇게 떠돌아다닌 계기가 바로 첫 직장을 퇴사하고 역마살에 제대로 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직장에 지금까지 머물렀다면 나는 분명, 100% 결혼을 했을 거라 확신한다. 앞서 말한 1번 역시도 결혼에 많은 기여를 했을 것이다. 외국생활 시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경제적 여유가 있고, 소개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이건 2013~15년 당시에도 사실이었다 ㅎ)


내가 외국생활 때문에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어렸을 적부터 아이 두셋을 낳아 알콩달콩 와이프와 함께 공원을 가고, 맛있는 밥을 함께 먹는 게 꿈이었으니까. 웃긴 말이겠지만 구체적인 시기도 정했었다. 31이 나의 행운의 숫자인데 31살엔 무조건 가자!라는 아무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젠 만 나이로 목표를 바꾸어도 비현실적인 바램이 되었다.


3. 이직이 수월했을 것이다.


7년간 다녔던 두 번째 직장을 최근 관두고, 현재는 백수 상태다. 두 번째 직장은 FMCG 분야였는데, 이게 이직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왜 직장선배들이 "우리 회산 career path 무덤이야..."라고 농담을 했는지 몸소 느끼고 있다. 더군다나 내가 했던 일의 nature가 다른 FMCG회사에도 꼭 있는 게 아님으로 아주 극소수의 job opening이 나오는 직종이다.


이런 상황에 있다 보니, 첫 직장에 대한 후회가 생겼다. 만약 남았더라면, 9년 차인 나에게 이직에 대한 옵션이 무척 많지 않았을까?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실제로 사원인 당시 나에게도 링크드인으로 많은 헤드헌터가 연락이 왔었다 (그중 대부분은 중국의 실체도 없는 헤드헌터인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찔러본다는 거 자체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내가 굳이 헤드헌터를 통하지 않더라도 자발적으로 미국이든 유럽이든 반도체 또는 디스플레이 회사에 이력서를 내본다면 HR이 한 번쯤은 훑어 볼만한 이력서가 아녔을까? Direct 경쟁사에 취업은 못하겠지만, 9년 동안 쌓아온 skill set이 relatable 할 수 있는 회사는 지금 현 상황보단 10배는 많지 않았을까 싶다.



누군가에게 나의 후회를 말한다는 건, 어찌 보면 나 자신을 흉보는 행동일지도 모른다. 후회는 자기 혼자 감내하는 거지, 굳이 남에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말은 한다고 후회가 참회로 바뀌지도 않는다. 후회는 평생 후회로 남는다. 하지만 왜 이 글의 부제를 "이게 후회일까?"라고 정했는지는 다음 글로 설명해볼까 한다. 이게 지금에서야 후회지 그 당시에 겪었던 대기업, 그리고 삼성 근무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던 나에게 이런 후회를 감내하고 퇴사할 만한 이유가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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