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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현 Sep 07. 2022

삼성을 20개월 만에 관둔 이유

앞서 첫 글에 언급했듯이, 20개월 만에 삼성을 관둔 이유는 나름 복잡하다.


3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면, 4가지 안 좋은 점이 그 3가지를 덮었다. 어느 날은 너무 좋다가 다음 날 그 좋은 감정을 완전 무마시켜버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20개월 동안 나는 다른 신입보다 많은 일을 겪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동기형들마저 운도 지지리 안 좋은 놈이라 불렸으니까. 이에 관해 몇 가지 썰을 풀어보자 한다. 결국 썰들이 모이고 모여 나를 괴롭히고, 사직서까지 제출하게 만들었으니.


1. 지지리 운도 안 좋은 부서 배치


삼성디스플레이엔 4가지 대공정이 (Backplane, Evaporation, Encapsulation, Assembly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바뀌었다고 한다) 있는데, 각 대공정별 다수의 소규모 공정이 존재한다. 내가 몸 담갔던 Assembly (a.k.a. 모듈공정) 경우 4가지 소규모 공정으로 이뤄졌다. 아주 단순하게 계산하자면 4대공정 * 4소공정/대공정 = 총 16가지 공정이 존재한다.


자, 여기서 당신은 뭣도 모르는 새파란 신입으로 입사해서, 신입 교육이 끝날 무렵 16가지 공정 중 한 가지 공정을 부여받게 된다. 문제는 선택 권한 없이 배정된 공정에서 최소 5년, 많게는 20년까지 근무를 해야 하는 점이다. 공정 간의 인력이동은 종종 있다곤 하지만, 생산/제조센터는 한번 들어오면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는 부문이었다. 연구, 개발자가 제조로 오는 경우는 간혹 있었지만 (이걸 팽당했다고 표현했지만..), 그 반대는 무척 희귀했다. 


나는 모듈공정의 라미(네이션) 공정을 배정받았다. Lamination이란 뜻대로 디스플레이 모듈에 윈도우를 합착하는 단계이다. 일반인이 보기엔 아주 단순한 과정이지만 (실제로 수작업도 가능하다. 작업속도, 불량율은 최악이겠지만..), 나름 고도의 기술과 설비가 존재한다. 처음 1개월은 어느 일이 그렇듯 흥미로웠다. 실제로 라미 과정이 디스플레이 전체 공정에서 스마트폰에 장착될 디스플레이 패널의 모습을 처음으로 갖추는 공정임으로 갤럭시 신제품, 경쟁사 신제품의 외관을 가장 처음 볼 수 있는 부서였다.


문제는 2개월 차부터 슬슬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속된 말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신입이 자주 빠져드는 쓸데없는 걱정이었지만,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을까?" "10년한들 나는 라미 전문가이지 디스플레이 전문가일까?". 선배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을 바라봐도 항상 영혼 없는 눈빛들과 축 처진 어깨는 나의 근심을 더 키울 뿐이었다.


더 문제는 그 조그마한 라미 부서에서도 Rework이라는 부속조직에 사원 홀로 배치되었다. 공정을 심오하게 배우기에도 그 당시 나의 열정을 감당하지 못했는데, 약간 깍두기식으로 Lami공정에서 발생하는 불량을 살려내는 업무라니.. 3과장+1선임+1사원으로 구성된 (구성원 직급만 봐도 대충... 사원의 고충이 느껴지지 않는가?) 팀에서 나는 온갖 잡무를 도맡았다. 발주, 보고서 작성, 통관 (중국 공장에 자주 주고받는 물품이 있었다), 제품 반출입 등이 내 주 업무였다.. 거기다 회식 메뉴 정하기, 회식비 정산, 부서별 CA, 교육 참석하기는 덤으로 담당했다. 정작 공정 빼고 모든 잡무를 도맡은 그 상황은 내 현타를 더 돋우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


여기서 나의 turning point가 될 것 같았던, 하지만 결국 퇴사에 이르게 만드는 조직변동이 있었다. 당시 flexible display 양산 초창기에 아주 많은 투자가 있었는데, 기존 rigid (구부러지지 않는 기판) 인력의 다수를 flexible 부서 (내부에선 YOUM부서라 불렸다) 로 재배치시켰다. 여기엔 실무자급인 사원, 선임이 대부분이었는데 나 역시 포함됐었다. 윰부서는 회사에서 "차세대 먹거리"로 지목된, 기대치가 하늘을 치솟는 조직이었다. 전반적으로 젊은 조직이었고, 양산 초기단계라 무수한 이슈가 있었지만 노력한 만큼 결과가 눈에 보이는 Promising 한 조직이었다. 드디어 나도 일다운 일을 해보겠구나! (드디어란 말도 웃기긴 하다. 당시 1년도 안 된 신입이었으니)라고 생각했을 때, 청천벽력 같은 조직개편을 통보받았다. 공정3부서, 그러니까 관리부서로 배치를 받은 것이다.


"관리의 삼성"이라 불릴 만큼, 코어는 제조,공정일지 몰라도 그 코어를 감싸는 많은 관리 shell이 있다. 공정 직속 부문에 속해있더라도, 그곳에서도 관리부서가 또 존재했다. 약간 미운오리새끼 같은 존재일까나? 공정 사람들은 같은 소속이니 타부서 (ex. 제조 밖 스탭부서, 경영지원, 제조혁신, 공정개발 등) 사람처럼 차갑게 대하진 않았지만, 결국 자기들을 바로 옆에서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부서임으로 달갑지만은 않은 동료였다. 다행히 워낙 신생 조직이고, 다들 두루두루 친한 젊은 사람들로 구성된 부서여서 서로 견제하는 관계는 아니었다.


공정 3부서에서 부여받은 업무는 불량율 보고였다. 어려울게 생각할 거 없다. 그냥 매일매일 불량율 데이터 분석, 개별공정에서 받은 개선항목 취합 등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한 곳에 모아 일보로 전체에게 공유하는 업무였다. 그냥 우리 "취합하는 일보쟁이"였다. 이 인식을 너무나 잘 아시는 파트 선배께선 보고, 문서에만 집중하지 말고 현장에서 엔지니어들과 같이 소통하고, 피부로 느껴보라 하셔서 주말/야간 가릴 것 없이 현장에도 투입되었다. 하지만 공정을 own하지 않는 업무의 한계를 넘을 순 없었다. 차라리 품질팀이었다면, 주인의식을 가지고 집중했겠지만, 품질도 공정도 제조도 아닌 어중간한 부서에서 느낀 현타는 2개월 차에 느낀 현타보다 5배는 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차라리 라미에 남았더라면, 아니, 처음부터 YOUM으로 들어가서 공정을 맡았더라면. 어떻게든 수긍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여기서 한국 대기업의 공채 시스템의 단점 모두를 내가 견디기엔 하고 싶은 일, 말, 행동이 너무나도 많았던 혈기찬 사원이었다. 당연히 답은 퇴사일 수밖에.


2. 나는 그냥 장기판의 쫄인가?


3공정 파트장님 성격은 몹시 날카로웠다. 7년이란 세월이 지났으니 지금은 마음껏 비판할 수 있지 않을까..? 신경질을 잘 내셨고, 나름 젊은 분이셨으나 부서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셨다. 지적은 잘하셨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So what?을 말씀하지 않으셨고, 부서원들은 항상 defense 모드였다.


여기서 또 사건이 발생한다. 그 당시 대외적으론 A사와 파트너십을 만든다 만다 루머가 있을 당시, 내부적으론 이미 제법 progress가 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원나부랭이가 뭘 알겠냐만은 A사 담당 TF가 구성되는 단계였고, 개발라인 한편엔 A사 전용으로 암막 커튼이 쳐져있었으니 이 정도면 우리 부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금요일로 기억된다. 그저 그런 평범한 날에 뜬금없는 A사 TF 조직이동을 발표하였다. 나름 "에이스"들만 뽑는다는 말이 있었는데, 타 부서에서도 다수 차출되어 20명남짓 조직을 구성한 것이다. 남의 이야기로만 들렸는데, 떡하니 내 이름이 적혀있었다. 겉으로 좋은 척은 못하겠고, 속으로면 포효하였다. 월요일 출근하면 바로 자리를 이동하라는 공문이었고, 그 주말은 20개월 동안 제일 행복했던 주말이 아녔을까? 


그렇게 타부서 사람들과 상견례를 기대하며 월요일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근하였고, 컴퓨터와 서랍장을 다 옮기고 자리에 앉은 지 literally 30초도 안되어 우리 ex파트장님이 콧방귀를 잔뜩 뀌시며 내 앞에 나타나셨다. "누구 허락받고 여기로 옮기래?" 나는 1.5초정도 뇌정지가 왔다. 이렇게 격하게 작별인사를 하시는 건가? 조크겠지? 하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변을 하였다. "공문에 그렇게 적혀있던데요.." 나의 심장은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고 불길한 느낌이 내 뒷목을 잡기 시작했다. 파트장님은 화를 최대한 자제하시는 톤으로 자기는 이 인사이동 허락한 적도 없고, 우리 부서 인력부족해서 죽을 판인데 너까지 가면 안 된다고 내적 분노를 표출하셨다. 그리고 내 손목을 잡으시며 그룹장 자리로 데려가셨다. 


파트장님과 그룹장님은 그다지 친분이 있지 않았다. 그룹장님은 뼛속까지 공정만 하신 분이셨으나 (그리고 좀 옆집 아저씨같은 바이브가 있었다) 파트장님은 개발 쪽에서 이번에 넘어오신 분이었다. 그러니 그룹장님 앞에서 내 인사이동에 관해 컴플레인을 거시니 "아 알겠어요 그렇게 하세요~"라며 허무하게 해프닝으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거의 공황상태 직전이었고 1시간 만에 옮겼던 자리를 다시 원복 하는, 남들이 비웃을법한 모습으로 제자리에 앉아 평소같이 불량일보를 작성하게 되었다.


진짜 조직관리 철저한 삼성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이건 순도 100%의 리얼스토리이다. 가해자는 없었고, 피해자만 있었다. 더 화나는 건 그 일이 있고 나서 퇴사 전까지 내 업무의 변화는 1도 없었고, 그 파트장님은 내가 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개발실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게 퇴사를 결심한 결정타였다. 이렇게 사람을 우습게 만드다니..


3. F의 저주


이 스토리는 입사 극초반에 있었는데, 퇴사에 기여했다기보단 꼬인 내 회사생활에 시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S그룹 제조계열사에 지원할 당시, 직군을 선택해야 한다. F(설비), E(엔지니어), G(일반사무)정도만 기억이 나는데, 공채에 대해 아무런 사전조사를 하지 않았던 나는 F를 선택하였다. 설비.. 뭔가 멋있는데?라는 단순한 이유로..


그리고 계열사 입사교육 끝 무렵 희망부서 1,2,3지망을 제출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걸 토대로 인사팀에서 배치를 한다며 교육담당 선배께서 신중히 적으라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내 해외경험을 살리겠다는 취지 하나만으로 뭣도 모르고 영업, 제품 마케팅, 전략팀 정도를 적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싶다는 줏대가 없었던 갇 대학교를 졸업한 사회 새내기였음으로 단순하지만 당연한 사유였다. 여기서 문제는 F직군으로 입사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더군다나 내가 적은 세 곳은 신입 자체를 안 받는 부서로 알고 있다.. 몸으로 부딪혀서 배우는 제조보다 짬과 경험으로 일하는 부서이다 보니..


제출한 1,2,3지망을 가지고 인사담당과 개인 면담을 시작하였다. 먼저 한 동기들을 보니 인당 5분정도 할애해주셨는데, 내 면담은 제법 오래갔다. 면담의 내용은 상담이 아닌, 약간의 혼남이었다. 네가 F를 적어놓고 무책임하게 非제조만 쓰면 어쩌라는 거냐...라는 식으로. 지금 그 인사담당자의 입장으로 생각해보면 뭐 이 딴 놈이 다 있어?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되는 그분의 호통이었다.


그렇게 면담이 모두 끝나고, 내 기억으론 그 당일에 발표가 났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 빼고. 어리둥절할 시간도 없이 인사담당자가 한번 더 면담하자는 콜이 있었다. 뭔가 신이 났다. 엄청난 임무를 주어주시려고 따로 부르시는 거겠지?라는 얼토당토않은 사회초년생들만이 할 법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 두 번째 면담의 긴장감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안자마자 인사담당자께서 다소 의아한 질문을 하셨다. "만약에 네가 외국인 인사를 맡았는데, 외국인이 새벽 2시에 전기가 안 들어온다며 너한테 연락을 하면 어떻게 대처할 거냐?"?!?!? 뭔 생뚱맞은 질문이지?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그냥 내 입은 반응 하였다. "어휴 당연히 직접 가서 관리실에 연락하여 최대한 빨리 조치해드리겠다" 라며.. 그냥 그분 귀에 듣기 좋은 답변을 드렸다.


답변이 만족스려우셨는지 그분은 믹스커피를 한잔 마시며 말씀을 꺼내셨다. 자기는 너에게 외국인 인사를 맡길 생각이다.. 왠지 잘할 것 같다 라시며. 실은 F직군만 아니었다면 너의 해외경험 특성을 고려하여 1,2,3지망도 생각해볼 만했으나 F직군은 무조건 제조밖에 갈 수 없다고 하셨다. 지금 나의 제안은 정말 특별한 케이스라는 걸 강조하시며..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공대를 나왔고, 학생 때도 수학 과학만 파고든 나에게 인사라니...


"공대의 자존심이 있지"라며 단칼에 거절하였다. 아마 인사담당자께서 기분이 좋진 않으셨을 것이다. 자기가 그래도 생각해서 제안한 오퍼를 곰곰히 생각도 안하고 거절하다니. 나라도 괴씸해서 제조 중에서도 제일 빡세고, 거친 곳으로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또 그렇게 하셧다... 이게 실은 프롤로그여야하는데 1,2번 썰보단 임팩트가 크지 않음으로 appendix마냥 마지막으로 끼워 맞추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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