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해 볼 결심
솔직히 나도 상상해 보긴 했지.
내 가게라면 아이들 학부모 참여수업에 일주일 전부터 두근거리며 사장님 기분 봐가며 이야기 꺼내야 하나 말아야 하는 눈치 안 볼 수 있겠고, 가족여행 가고 싶은 날은 당당하게 휴무라 내 걸고 콧바람 쐬러 가는 것 어렵지 않잖아?
맛있는 차와 커피도 준비해 두고 친구들 놀러 오라고 해야지 내 가게가 아지트가 되는 거야! 생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책임져야 할 것은 많아지겠지.
월세와 각종 공과금, 고객과의 예기치 않은 문제 발생에 내가 해결해야 할 거고, 실수하더라도 오로시 내 몫이 될 테니까. 누리고만 싶지 책임지고 싶지 않은 것들 내가 짊어져야 할 것이고.
원래 내 꿈은 남들 눈에 안 띄고 가늘고 길게 사는 건데. 이 사건은 내 인생에 큰 도전이자 과제가 될 것이 뻔했다. 안 하고 싶었다. 그냥 이대로 10일이면 들어오는 월급의 노예로 살고 싶었다.
하지만 5년 후에도 지금처럼 살고 있다면?
그건 싫었다. 달라져 있었으면 좋겠다.
남들이 하라는 일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원하는 때에 하며 살고 싶었다. 아이들 입에 맛있는 거 넣어주고 철철마다 아름다움을 마주하러 떠나고 싶기도 했고.
이렇게 나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랬다 저랬다 롤러코스터를 탔다.
아니야 내가 무슨 사장이야.
왜 못할 건 또 뭔데? 일 다 알겠다. 내 가게면 더 열심히 하지.
돈 몇 푼 남기는커녕 마이너스 나면 어쩔 건데?
마이너스될지 플러스될지 그것도 해봐야 알지.
계속 여기 다니면 빨간 날 다 쉬어~ 월급날에 따박따박 돈 들어와~ 얼마나 좋아.
언제까지 푼돈만 받고 살 건데? 애들은 먹는 거 안 보이냐 치킨도 곧 3마리야~
중학생 되면 돈 더 들어갈걸?
결단이 필요했다.
남편은 늘 뭔가 시도하는 것에 긍정적이다.
자기 개발서를 너무 많이 읽어서 그런 것 같다.
늘 뭘 해보자 하고 하라고 한다. 아침식탁에 앉으면 책에서 읽은 내용들로 일장연설을 한다.
하루는 내 고민이 심상치 않아 보였는지,
"직장에서 처음 일 배울 땐 자기가 힘들어하는 부분도 있었지 그런데 지금은 잘 적응했잖아. 누구보다 일도 잘 알고 있고, 어르신들 대하는 거 재미있고 귀여우시다며. 지금이랑 똑같은 일 하는 거야 책임의 크기가 좀 커지긴 하지, 그래도 일단 장소만 달라진다고 생각해 보는 거야. 이왕 하는 거 남의 일 해주지 말고 당신 일 해 봐."
당신 일? 나를 위한 일?
내 안에 나도 모르는 무언가가 하라고 시킨 걸까.
신랑의 가스라이팅인가.
이미 내 손은 인터넷으로 부동산을 뒤적이고 있었고, 주말이면 상권을 보러 걷고 또 걸었다. 옷이 땀에 흠뻑 젖어도 좋았고 계단을 오르고 내려도 아픈지 몰랐다.
직장에서는 일하면서 그리고 집에서는 아이들과 남편을 위한 시간을 쓰다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낸다는 게 가슴 뛰었다.
실패 누구나 하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은 단어다.
하지만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다면 성공일지 실패일지 알지도 못하겠지. 그리고 실패한다 하더라도 다음번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은 없을 테지.
그만큼 경험했을 거고 아팠던 만큼 성장했을 테니까.
몇 년 뒤 ‘아 그때 해 볼걸.’하고 후회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까 싶었다.
이미 그런 경험들 차고 넘친다.
더 이상 아쉬운 후회로 한숨짓는 일 그만 만들고 싶었다.
쉽게 시작해 보기로 했다. 매일 할 일을 적어두고 하나씩 지워가면서 목표에 가까이 다가가 보기로.
그렇게 나는 사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