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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은 Sep 08. 2022

쌍봉사 일기 7/22(금):좋은 날, 지구와 인간

이양면 나들이, <인간 존재의 의미>

1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

아침을 먹고 스님께서 말씀을 하셔서 명상 수행 방법들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이후 알려주신 방법대로 걸으며 명상을 하다 들어왔다. 씻고서 어젯밤 조금 읽었던 <마음을 쏘다 활>을 다 읽고 시계를 보니 아직 아침 9시 정도밖에 되질 않았다. 일어나서 이것저것 여러 가지 활동들을 했음에도 아직 매우 이른 시간이라 묘한 만족감이 든다. 거기에다 날씨가 맑고 하늘이 예뻐서 기분이 더욱 좋다.




2

이양면 나들이, 카페 '팔레트'

어제 공양간에서 밥을 먹고서는 도저히 절 밥만 먹어서는 영양과 허기를 채울 수가 없다 생각했다. 외부에 나가 단백질이 많이 포함된 간식거리를 사 오기로 결심했다. 아침에 일기를 잠시 쓰고 산책을 조금 하고서 밖을 나가려고 준비하는데, 나가는 김에 카페도 가고 거의 다 쓴 볼펜도 새로 사고... 그렇게 생각이 이어지다 외식도 하고 싶단 생각에 이르렀다. 그렇게 외식하기로 마음먹고 지도를 펼쳐 어디로 어떤 동선으로 가야 할까 고민을 했다. 시골이다 보니 식당과 카페, 마트가 서로 매우 멀기에 고민이 조금 필요했다. 그렇게 고민을 하니 끝도 없었다. 카페들이 오픈하는 시간도 문제고 그렇다고 읍내까지 나가기엔 멀다 생각이 들고... 어제 책에서 봤던 내용이 떠오른다. 사람이 감정이 없다면 더 합리적이고 올바른 선택을 잘하지 않을까 관찰했더니 오히려 뇌가 다쳐 감정을 담당하는 부분에 문제가 생긴 사람은 아무런 선택도 내리지 못 하더란 얘기였다. 나도 이런 중요하지 않을 결정에선 이성적으로 따지기보단 그냥 끌리는 대로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냥 어제 갔던 카페인 ‘팔레트’에 이런저런 식사 거리를 팔았기에 ‘팔레트’가 오픈하는 시간에 맞춰 가기로 마음먹었다.


11시 30분에 출발하기로 정하고 그전까지 에드워드 윌슨의 <인간 존재의 의미>를 읽어갔다. 제목에서 예상했던 것과 달리 내용은 과학 교양서적에 가까웠다. 조금 더 풀어서 제목을 쓴다면 ‘인간의 생물학적 존재 의미' 정도로 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한다. 책을 읽고 있었지만, 조금 뒤 외출하는 것이 계속 생각나고, 책 내용도 다소 추상적이라 졸리고 집중이 되질 않았다. 결국 그냥 덮고 잠시간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시간이 되어서 옷을 갈아입고 누구에게든 눈에 띄고 싶지 않아 후다닥 나왔다. 차에 올라타니 온전히 내 공간에 들어선 것 같아 마음이 매우 편해졌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창문을 열고는 한적한 시골길을 천천히 만끽하며 운전했다. 길가엔 이런저런 꽃들이 많이 펴있었고 한적한 산과 논밭, 마을의 풍경은 유명 관광지들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요즘은 특히 벼들이 푸르게 자라 있어 그 색이 너무 예쁘고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논의 색깔이 요동치며 더 아름답게 보였다.


자주 가는 이양면의 하나로마트에 도착해 단백질을 많이 포함한 간식거리를 찾아보았다. 먼저 참치캔 8개를 고르고 둘러보다가 단백질바가 있어 이걸 조금 샀다. 밥을 먹을 때 반찬이 너무 부족하면 같이 먹으려 참치캔을 샀는데, 공양간에선 다른 사람들도 주변에서 같이 밥을 먹다 보니 이걸 편하게 먹을 수 있을지는 걱정된다. 마지막으로 삼색 사무용 볼펜을 사서 하나로마트를 나와 ‘팔레트'로 갔다. 매번 느끼는데 이양역 주변 동네의 풍경도 너무 평화롭다. 읍내같이 도로는 정돈되어 있는데 정돈된 길 주변으로 기차역, 면사무소 등 관공서, 몇 안 되는 가게, 가정집, 논과 밭 모두가 서로를 옆에 두고 존재해서 순간순간 풍경이 작은 마을 같다가도 읍내 같다가도 그리고 완전 시골 중간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여기 주변을 자전거를 타며 다니면서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팔레트' 앞 길의 풍경

‘팔레트'에 도착했더니 어제와 다르게 차가 몇 대 서 있었다. 들어가 보니 점심시간이라 주변 관공서 직원들 같아 보이는 사람들 몇과 20대 초반의 어린 듯 보이는 남자들 몇이 있었고 밖에는 어제 보이지 않던 통통한 삼색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어제 앉았던 곳은 이미 가득 차 있어 1, 2인석 자리 쪽에 앉았다. 막상 밥을 먹으려 메뉴를 보니 종류가 적기는 했다. 삼겹덮밥을 먹고 싶었지만 주문이 불가능하다 해서 치킨랩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고는 책을 봤다. 여기는 어제도 느꼈지만 음식 준비 과정이 전혀 체계화되지 않았다. 메뉴 종류 또한 준비 시간이나 재료 관리를 크게 생각하지 않고 선정한 느낌이다. 그래서 음식이 나오는 데는 엄청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아내는 음식점에서 음식이 나오는 시간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데, 아내가 이곳에 있었다면 엄청 싫어했겠다는 생각이 든다(나는 아무렇지 않다ㅎㅎ). 시간이 지나 치킨랩이 나와서 조금 급하게 먹었다. 너무 급하게 먹은 것 때문인지 에어컨 바람을 너무 정면으로 맞고 앉아있어서인지 몸이 불편하고 소화가 잘 안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나갔기에 햇빛이 드는 어제의 자리로 옮겨 앉았다. 신기하게도 금방 몸이 편해졌다. 앉아서 하늘을 보니 나가서 걷고 싶어졌다. 아주머니가 또 복숭아를 가져다주셨다. 어제부터 먹고 싶다 생각했던 닭강정을 시키고 잠시 나가 걸었다. 햇빛이 너무 강해 조금 덥긴 했지만 그래도 파란 하늘 아래서 햇빛을 받는 건 너무 기분 좋은 일이다. 멀리 걷지는 못하고 금방 돌아와서 창가에서 햇빛을 받으며 책을 계속 읽었다.


묘하게 <인간 존재의 의미>는 집중이 잘 안 된다. 앉아서 책을 보다가 오후 3시를 넘겨 절로 출발했다. 이렇게 날씨 좋은 날 밖을 좀 걷고 싶은데, 햇빛이 너무 강해 밀짚모자나 양산이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이런 생각을 몇 번 했는데 아직 밀짚모자를 안 샀다. 차를 타고 절로 천천히 돌아가는 중에 내 뒤를 승합차 한대가 따라붙었다. 답답하단 듯 가까이 붙더니 금세 추월해 지나가는데, 차 옆을 보니 쌍봉사 이름이 쓰여 있었다. 팀장님이 타고 다니시는 차였다. 팀장님이 저번 예초작업 때 차 빼는 일도 있고 해서 내 차를 알아보실 텐데 생각했다. 예전에 밖을 나간다면 나간다 얘기 주고 나가라 하셨기에 나중에 보면 한 마디 하실 것 같다.




3

아기 고양이

아내가 고양이에 대해 충고를 하나 해주었다. 내가 계속해서 사료를 줄 순 없기에 혼자 독립심도 기를 수 있게 사료를 주는 간격을 조금씩 늘려란 것이다. 나도 약간 밀당의 느낌으로 오늘은 사료를 안 주고 내일 주려고 마음먹었다. 아까 전에 잠시 가서 슬쩍 보니 여전히 나를 경계하고 있었고, 조금 뒤 다시 갔더니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내가 왔다는 신호로 소리를 조금 내주니 천막 아래서 무언가 들썩들썩 움직이는 게 보였다. 잠시 뒤 내가 뒤로 조금 물러나니 고양이가 얼굴을 내밀고 나타나서는 여전히 나를 경계하면서도 울음소리는 낸다. 그렇게 그냥 얼굴만 비추고는 돌아왔다. 과연 이 아이는 혼자 식량을 사냥해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4

<인간 존재의 의미>를 읽고, 불완전함의 가치, 지구의 가치

앞에 썼듯이 <인간 존재의 의미>는 제목에서 내가 예상한 것과 조금 달랐다. 인간이라는 생물학적인 존재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것이 지구의 지질, 생물학적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지구의 환경과 다른 생명체들이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등 여러 가지 저자가 가진 인간에 대한 생각을 짧게 압축적으로 써놓은 책이었다.


어제 <사피엔스>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는데 비슷한 얘기들이 이 책에 또 쓰여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인류가 적자생존의 생물학적 진화를 넘어서 스스로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다른 것으로 바뀔 수 있는 기술을 가졌을 때, 과연 그 변화를 선택할 것인가, 인간은 신이 되려고 할 것인가에 대한 예측이다. 저자는 인간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 적었다.


인간이 가진 무엇보다 가치 있고 독창적인 것은 과학이 아니라 인문학이라고 한다.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가진 모순과 한계가 창작과 창의성의 원천이었으며, 이런 우리의 모순적 특징은 과거에 인간이란 종이 걸어온 진화의 매 갈림길을 통과하며 만들어진 단 하나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만약 우주에 우리보다 뛰어난 문명을 이룬 외계인이 존재하고 그들이 우릴 발견했을 때, 우리가 가진 과학 기술은 어차피 그들의 것에 한참 못 미치기에 그들에게 별 가치를 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들과 다른 진화의 발자취를 걸어온 우리의 생물학적 본능이 만든 인문학이야말로 그들과는 다른 우리만의 독창적인 가치를 가진 결과물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진정한 가치는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모순과 불합리성이라 저자는 말한다.


이런 생각은 처음이기에 약간은 충격을 주었다. 이 주장의 시작인, 사람은 스스로 진화적 과정을 넘어서 스스로를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나는 만약 과학의 힘을 빌려 무한의 수명을 얻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할까? 비합리적인 나의 본능을 바꿔서 언제나 본능에 따라 거리낌 없이 행동해도 문제없이 될 수 있다면 그렇게 바뀌는 선택을 할까?


내가 아직 죽음의 앞에 다가서진 않았기에 앞으로도 같은 생각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의식적으로 영원한 삶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살 수 있게 된다면 너무 무섭고 고통스럽지 않을까? 영원히 살거라 생각했던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 중 누군가 사고로 빨리 죽게 된다면 상실감이 무척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상실감뿐 아니라 내가 그런 사고를 당할까를 걱정하며 언제나 공포 속에 살 것이라 생각된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운명을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면, 죽음은 때로는 인생을 더 의미 있게 하지 않나 생각한다. 또한 나의 본능에 대해서도 같다. 내 본능의 부족한 부분을 있는 그대로 느끼면서 내가 극복해가며 살아가고 싶을 뿐이지 이를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바꾸고 싶단 생각은 없다.


물론 유발 하라리나 다른 과학자들은 이러한 인간의 변화가 개인의 선호나 행복에 의한 결정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밈이라는 스스로 퍼져나가려고 하는 가상의 실체에 의해 일어난다고 예측하는 것이다. 우리가 미래를 예측하며 이성으로 판단했을 땐 좋지 않은 방향일지라도 사회 구조상, 인간의 본능상 어쩔 수 없이 변해가는 진보의 방향이 존재하는 것이다. 어찌하였든 이러한 예측들은 모두 인류 스스로가 문명을 파괴하는 길로 빠지지 않을 때에 유효하기 때문에 이미 확률이 매우 낮은 예측 들일 것이다.


<코스모스>, <사피엔스>, <인간 존재의 의미> 셋 모두 아니, 생각해보면 웬만한 과학교양서적에서는 비슷한 얘기들이 있을 텐데, 인간의 문명이 여기까지 발전하고 진화할 수 있었던 것조차 너무 낮은 확률이고 많은 우연이 겹친 결과이다. 지구가 탄생한 이후 생명의 탄생 → 캄브리아기 대폭발 → 공룡의 멸종 → 빙하기 → 큰 두뇌 → 언어 → 과학혁명이라는 각 사건들, 인간이 탄생한 이후 수 십만 년 간의 안정된 기후, 그 기간 동안 대멸종을 일으킬 정도의 재앙이 없었던 것, 지구에 생명체가 탄생한 이후 수십억 년 간 무사했던 지구, 이 모든 우연들이 모두 일어나서야 현재의 문명이 탄생한 것이다. 각 사건들이 필연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필연적인 사건들도 필요한 시간 이내에 일어나지 못한다면 각 사건이 얼마나 더 늦게서야 발생할지 알 수 없다. 처음 생명의 시초가 지구상에 나타난 것은 약 35 ~ 40억 년 전으로 지구가 탄생한 지 15억 년이 되기 전 일이라 추정된다. 하지만 처음으로 다세포 생물들이 다양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는 캄브리아기 대폭발로 생명의 시초가 탄생한 지 약 30억 년이 지난 약 5억 년 전의 일이다. 시간으로 비교하였을 때 생명의 시초가 탄생한 것보다 우리가 생각하는 다양한 다세포 생물들이 나타나는 게 더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위에 적었던 다른 사건들이 이보다 더한 우연의 결과인지 그 여부는 지금의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저자는 또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미래에 과학기술이 발전한다 해도 지구만큼 우리가 잘 살아갈 수 있는 행성은 없을 거라고. 우리와 함께 공생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동, 식물과 미생물들 자체도 우리가 수 십만 년 간의 진화를 통해 적응한 환경이다.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란 이러한 환경 전체가 인간과 함께 적응해야만 하는 문제이기에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우리에게는 지구는 하나밖에 없으며, 기회는 한 번뿐이라 얘기한다. 우리가 지구를 파괴하고 많은 희생을 거쳐서 다른 행성으로 이주를 성공해낸다 하더라도, 지구를 파괴한 우리의 유전자와 밈들은 그대로 다른 행성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무엇보다도 먼저 지구에서 지속 가능하고 영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정치체제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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