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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은 Aug 30. 2022

쌍봉사 일기 7/12(화):가벼운 이야기들

가벼운 이야기들, 플라톤

1

카페 몽리브


어제도 차를 타고 나가서 카페를 갔다. 점심을 먹고 고민하다가 나갔는데, 나갈 때 팀장님께 말씀드리고 나가려니 ‘몽리브'라는 카페를 추천해주셨다. 엊그제 갔던 곳을 갈까 고민하다가 추천해주셨으니 ‘몽리브'로 가 보았다. 엊그제 갔던 ‘열두시오분'보다는 거리가 조금 멀었지만, 카페 자체는 매우 한적한 곳에 위치하고 조경도 매우 깔끔하게 잘 되어있었다. 다만 책을 보고 일기를 쓰기에는 책상이 조금 불편하고, 사람도 많아 약간 소란스러웠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책 읽는 것에 집중하기가 조금 어려웠다. 그러던 중 <국가>를 읽고 <이방인>과 관련된 생각들이 떠올라 어제 일기에 쓰게 되었다.




2

내 평소의 무의식적 생각


평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정말 높은 비중으로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 범주의 생각들이다. 예를 들면 절에서 산책하러 나가다가 ‘사람들이 나 보면 뭐하러 간다고 생각할까?’처럼 사소한 생각이, 명확히 논리적으로 떠오르는 건 아니고 어렴풋한 생각으로 스쳐 지나간다. 그간 제대로 인지하지 않았는데 이런 부류의 생각이 무의식 중에 많이 떠오른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무슨 강박에 이러는 걸까? 이것 또한 ‘나는 평범하다'는 밑바닥 자아로부터 만들어진 강박인가? 맞는 것 같다. 앞으로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냥 흘려보내기보단 의식적으로 붙잡아 한번 생각을 읽어보고 다시 흘려보내야겠다.




3

저녁예불


어제는 처음으로 저녁예불에 참석했다. 매일 둘이 같이 다니시는 여자분들이 점심때 얘길 거시며 108배하러 저녁예불에 오라 하셨다. 마침 한번 예불에 참석해보고 싶었기에 그러겠다 하였다. 그분들이 예불을 주관하시는 스님께 말씀을 드려서 그 스님이 예불에 대해 얘기를 주셨다. 저녁이 되어 실제 예불에 갔는데 염주를 준비 못해 조금 우왕좌왕하며 예불에 참석했다. 예불은 처음에 불경을 암송하고 108배를 진행하였는데, 이때 조금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절에 오기 전 계단에서 삐끗해 발목을 다쳤었는데, 108배를 위해 무릎을 꿇으니 발목에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다. 어찌어찌 불편한 자세로 108번 절을 마쳤는데, 잘못하면 발목이 제대로 안 낫을까 싶어 예불에 참석하지 못하겠다 말씀드렸다. 스님께선 굳이 108배 안 해도 된다 하시니 한 번씩 앉아서 명상하기 위해 참석해야겠다.




4

발목, 병원


일주일째 발목의 부기가 안 빠져서 병원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가까운 곳에 병원이 없어 읍내까지 나가야 했기에 지도를 보니 30분 이상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친구인 평강이가 근처에서 공보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혹시 위치가 가까우면 거기 보건소로 가는 김에 평강이도 보고 와야겠다 생각을 했다. 내가 원래 사용하던 휴대폰은 아내가 광주에서 가져갔지만, 아내와 한 번씩 통화하기 위해 기능을 잠가둔 옛날 폰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폰을 이용해 평강이에게 전화를 했고 얘기를 나누었는데, 생각보다 거리가 멀고 치료를 위해서 엑스레이 있는 병원을 가라 해서 그냥 읍내로 갔다. 오전 10시 반쯤 가서 치료를 받고, 모처럼 점심으로 외식도 했다. 병원에선 반깁스를 해줬는데 너무 불편하다. 특히 화장실을 가거나 샤워실을 갈 때 신발을 신어야 하다 보니 너무 불편하다. 앞으로 잘 끼지는 못하겠다.




5

<국가> 읽기의 어려움


<국가>를 읽는데 계속 읽어가는 게 너무 힘들다. 책 속 소크라테스의 주장들은 논리를 이용해 연역적으로 연결해 결론을 내는데,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엔 논리의 연결과 결론을 내리는 과정 전부 너무 허술하고, 각 논리는 귀납적인 방법으로 가져오는데 그것도 너무 비약적이다. 그리고 주장하는 내용 대부분이 국가의 기준에서 공리주의적인 가치를 따르고 각 인간이 가지는 생각과 사유의 자유를 박탈에 가깝게 제안하려 한다. 그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완벽한 대상을 이상향으로 내세워 이를 따르는 절대적인 국가관을 강조하는데 이런 얘길 ‘우리는 국가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지금 논의를 하는 것이네'라고 말한다. 그의 논리 자체도 너무 허술하다 생각하는데, 그 결론으로 제시하는 국가체제 또한 너무 절대적인 모습을 가지며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는 형태라 납득이 안 간다. 거기에 더해 어떤 ‘이상적'인 형태의 국가체제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도 공감 되질 않아 책을 읽는 게 계속 고통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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