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스타트업 창업 후 회생까지, 한순간이었다

사업 참 어렵구나

by 엄주영

지금도 수많은 열정 넘치는 예비창업자, 창업자 분들은 본인의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부단히 많은 활동, 노력들을 하고 있다.


나 또한 예비창업자 시절 아이디어 고도화 프로그램을 통해 창업에 대해 눈을 떴고

창업이 너무 하고 싶어 2016년 10월 창업을 시작했다.


창업을 하고 나름 잠도 줄여가면서 부단히 노력했지만, 그저 열심히 하는 것이었을 뿐 잘하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개인회생을 하게되었다.

눈 감았다 뜨니 부도가 나 있더라.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렇게 글을 쓰지만


나만의 것이 무너져 가는 저 당시에는 정말 안좋은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나는 어떻게 보면 나의 치부라고 할 수 있는 실패담을 여기서 풀어보고자 한다.


창업 한 번 하고 실패한 이력을 가진 놈이 어줍잖게 남을 가르치는 그런 글이 아닌 순전히 나만의 경험을 말하고자 한다.


브런치라고 하는 날고 기는 글쟁이 들이 모인 곳에서

남들에게 인정받을 동기부여도 글도 아닌 나의 실패담을 일기처럼 써야 한다는 사실이 더더욱 얼굴을 붉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실패담을 아무렇지 않게 천명하면서 깔끔히 잊어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데 시간을 쏟고 싶기 때문이다.

-필자-




필자는 1993년생 1월생 현재 31살의 남자이며, 20대 중반 2016년 10월 부터 2021년 3월 까지 개인사업자 형식의 제조 스타트업을 운영했다.

그후 2022년 12월 개인회생을 통해 5년간 영위하던 사업을 최종적으로 정리하게 되었다.




창업을 하게 된 계기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지긋지긋한 업종에 발을 들인 이유는 과거 비슷한 제조업 사업을 영위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당신의 작업복에 풍기는 쇠 냄새가 너무도 익숙하였고

보고 자란 것이 그러한 것들이라 자연스럽게 제조업 쪽으로 흘러가게 되었던 것 같다.




힘들었던 1년차 창업

이기간이 매우 힘들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가뜩이나 나이도 어리고 자본금도 없이 시작한지라 금전적인 부담이 매우 컸다.


필자의 제조스타트업은 기본적으로 (1)부지 (2)설비 (3)거래처가 있어야 하는데


부지는 그동안 모은 목돈을 쏟아부어 무리해서라도 공실 공장의 임대차 계약을 하면 됐지만

남은 두개, 즉 설비와 거래처는 설비가 최우선적으로 확보가 되어야 거래처가 생기기 때문에 설비를 확보하기 위해선 정부에서 지원하는 저금리 정책자금을 활용하여 설비자금을 확보해야 했다.


MVP 제조를 위해서는 Minimum 2~3억의 설비가 필요하게되었는데 20대 초 중반의 나이에 그것도 제조업으로 금융공기업에 방문하여 융자상담을 받게되면 차명대표(소위 바지사장)로 지속적으로 의심을 받게 됐고 그 의심을 해결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쏟았다.


막상 금융공기업 한 곳에서 융자를 받고 매출이 발생된 순간 다른 금융공기업에서 융자를 받으려고 할 때는 같은 이유의 의심은 깔끔하게 사라졌다.




나는 내가 금방 부자가 될 줄 알았다.

우여곡절 끝에 성공적으로 정책자금을 마련하였으니

총알도 있겠다 과감하게 설비를 도입하였고, MVP 제작 설계 & 제조까지 단기간에 완성되었다.


확실히 자금이 있으니 MVP를 만들어 내는 것은 자금확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개발한 MVP를 기반으로 사전에 주요 거래처를 리스팅한 DB를 통해 한 곳 한 곳마다 컨택하여 영업할동을 진행하였으며 운이 좋게도 중견기업 한 곳이 좋은 반응을 보여 성공적으로 거래처로 확보하였다.


아무튼 그 이후 중견 거래처와의 구체적인 생산 케파(Capa)관련 논의, 생산라인 구축 타당성 미팅을 지속하였고 최종적으로 Deal done까지 완료되어 해당 거래처와 2개년의 사업화가 진행되었다.


그렇게 해서 3년 차까지 주기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캐시카우가 되었던 중요한 거래처가 되었다.


이 기간이 본인이 생각 했을 때 가장 재미있었고 돈도 잘 벌었던 시기라고 생각한다.



아 글쎄, 리스크 관리가 없는 회사랑은 일 같이 못하겠습니다.

나는 지금 창업한지 불과 4년도 넘기지 못하고 벌써부터 많은 문제점들을 만들고 있었다.


다른 이야기지만 소위 중소기업을 비하하는 X소기업에 있는 현수막을 보면

"품질로 고객사를 감동시키자", "정확한 납기일 준수"와 같은 흔해(?) 빠진 말이 있을 것이다.


너무 간결하고 수 없이 많은 곳들이 그런 말을 중복적으로 하여 너무 당연하게 여겼다.


우리 기업은 저게 안됐다. 저런 것이 리스크 관리를 위한 중요한 과정이었던 것이었고 그것이 안되니

우리 기업은 비즈니스 매너가 없는 기업으로 소문나기 시작한다.


다른 기업의 영업팀, 생산팀에서 우리를 보고 하는 말이 "관리체계가 너무 없는 부실기업"이라는 평까지 들으며 바닥의 정점을 찍었다. 물론 이 이유 하나만이 패착요인이 아닐 것이다.



이쯤 생각해 보면 우리의 문제점은 몇 개 더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 고객사 납기일 준수를 하지 못하고 매번 딜레이 시켰다.

딜레이 되는 것도 한 두번이어야 했는데 빈도가 잦았다. 그리하여 신뢰가 깨졌던 것 같다.


- 품질관리(Quality Control)가 너무 되지 않았다.

제조업의 숙명중 하나인 품질관리를 너무 우습게 봤다. 이쪽에 힘을 잘 쏟지 않았고 그 품질 관리가 잘 되지 않아 악성불량품대거 발생하였고 클레임 비중 또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앞서말한 납기일품질관리에서 우리 회사의 평판은 엄청나게 깎이기 시작했다. 이 바닥은 단가도 중요하지만 품질 및 납기일이 매우 중요하여 이러한 클레임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 다른 기업과의 거래시에도 이 부분을 어떻게 알고 꺼린다. 즉 추후 영업활동에 악영향을 끼친다. (그만큼 해당 시장이 좁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기업간의 거래가 끊기게 되고 이는 곧 기업 생존의 위협이 되었다.


- 정책자금(융자)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필자는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업종으로 다른 업종 (IT, 유통, 기타 자영업)에 비해 융자를 조금 더 수월하게 받을 수 있었다. 또한 39세 미만의 청년으로 높은 한도, 낮은 금리로 융자를 손쉽게 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금융공기업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신용보증기금) 두곳만 해서 4억 8천만원 가량의 융자를 받았고


기타 1금융, 보증대출 등을 포함하면 5억 7천만원 가량의 융자가 발생했다. 이는 부채비율이 600%에 해당하였다.


부채비율이 높을 수록 그에 따른 매출액도 정비례하여 증가하여야 했는데 어느 순간 매출액은 일정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부채비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게 되면서 한계점에 임박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실이 없는 기업이 돈맛에 빠져 융자만 받고 다니면 이렇게 된다는 걸 여기서 알게됐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타 금융기관들로 부터 위험 기업 판정을 받게 되었다. 회생을 하기 전 시점 월 차입금 변제금만 1,000만원이 넘어갔다. + 직원 인건비 까지 하면 숨이 막혔다.


- 성장단계 & 상황별 마일스톤 부재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느단계에는 스케일업을 해야 한다 와 같은 성장 단계별 계획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저 이만큼의 매출액이 발생하면 설비에 더 투자해야지 와 같은 두루뭉실한 계획 뿐이었다.


또한 가장중요한 자금경색을 대비 방안이 없었다.


- 경쟁력 및 영업력이 부족했다.

창업 초기 단계라 혁신성이 높은 제품을 양산하지 못하는 단계였다.

이러한 약점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스케일업을 하려고 하면 (1)기술력을 갖추던가, (2)다양한 거래처 확보를 통한 안정적인 영업활동이 선행되어야 했다.

지금 보면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1)기술 고도화 멘토링 프로그램 (2)거래처 매칭 프로그램이 많더라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고 잘하는 것이 중요했다. 우린 이걸 부정했다.

물론 이런 지자체 프로그램을 통해 100%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미리 좀 알고 있었으면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은 가끔 든다.


- 스케일업을 할 시점에 현실에 안주했다.

지속적으로 영업을 하면서 주위의 거래처들 또한 확보되고 있었고 스케일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분명 여럿 있었다.

하지만 나는 기존의 거래에 심리적인 안정감을 심히 느낀 나머지 도전을 두려워 하여 스케일업에 외면했다.


- 포기해야 할 타이밍에 포기를 하지 못했다.

앞서 말한 스케일과는 반대로 사실 사업을 영위하면서 내 사업은 올해를 넘기지 못할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했을 때, 그 때 과감히 설비나 지속적으로 지출되는 리소스를 줄여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포기를 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 생각하고 상황에 유동적으로 적응하지 못했고 그것이 결국 내 발목을 채우는 족쇄가 되었다.


- 씀씀이는 가면 갈수록 커졌다.

매월 몇억씩 수익을 벌어들이는 전문직 분들이 많은 해당 플랫폼에서 장난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1년차 후반~3년차에 순수익이 매월 2천만원이 넘게 생겼다.

평생 없이 살던 놈이 갑작스럽게 돈을 벌어보니 신나서 온갖 돈잔치를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번 돈을 꼬박꼬박 저축해서 자금경색이 발생하였을 때 운전자금으로 활용해야 했다.


그렇게 모은 돈은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 나머지 기업이 힘들 때힘 한번 쓰지 못하고 손쉽게 무너졌다.

그렇게 결국 나는 개인회생을 하게 되었다
개인회생절차개시결정 - 복사본.jpg

2023년 1월 현재, 개인회생 개시결정이 났다.


이제 필자는 최종적으로 인가결정만을 기다리고 있다. 인가결정만 된다면 법적으로 신용불량자에서는 탈출이다


그리고 회생을 통해 당연하게도 상당한 빚에서 해방되었다.

개인회생 변제계획안 中


이러한 개인회생 단계를 거치면서 현재까지도 겪는 후유증 같은 것이 있는데,

바로 부도 및 빚독촉으로 인한 자존감 상실이다.


연체가 시작되면서 각 금융기관에서 나에게 불이나게 전화가 오기 시작됐다.

내용증명서류 및 지급명령 등기 또한 송달되었다.

일정 시간이 흐르니 채권자들이 소송을 통해 내 명의의 계좌를 압류하여 금융거래가 정지되었다.


회생사무실을 통해 금지명령신청을 하였지만 보기좋게 기각이 났고 개시결정이 나는 23년 1월 동안 몇개월에 거쳐 지독한 빚독촉에 시달렸다.


그래서 난 지금도 미등록 번호로 전화가 오면 심장이 쿵쿵 거린다.


돈이 없을 때 겪는 자존감 상실은 매우 고통스럽다. 이건 겪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정말 숨 쉴 곳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소위 바닥 중의 바닥으로 진입했고 여기서 정신을 놓으면 자살까지 할 수 있겠다 생각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지 마시라. 난 다시 창업을 꿈꾸고 있다.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는 사람들은 나의 이러한 말을 들었을 때 "아직 대가리가 덜 깨졌네"라고 한다.


한 켠으로는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무섭지만 또 다른 한 켠으론 이제 더이상 내려갈 바닥이 없으니 올라갈 일 밖에 없다 생각이 든다.


비록 지금 당장 시작하는 것은 아니고, 인가결정이 나고 나서 아이디어를 고도화 시키고

나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하려고 한다.


물론 전과는 다르게 큰 상처를 안고 시작하겠지만 실패를 기반으로 조금 더 성숙하게 창업을 하고 싶은 마음 또한 갖고 있다.


지금도 꾸준히 시간을 쪼개 창업 교육을 받고 있기도 하고, 올해 3월에 있는 정부지원사업(예비창업패키지) 지원을 통해 필자가 구상중인 사업 아이디어에 대한 피드백을 요청할 계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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