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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열린 Oct 24. 2023

캠핑과 텐트와 우리의 반복

지난 주말, 오랜만에 캠핑을 다녀왔다.

내게 있는 장비는 고작 침낭과 1인용 바닥 매트가 전부지만 지인을 잘 둔 덕에 좋은 계절이 찾아오면 머나먼 곳으로 같이 떠날 수 있는 행운을 얻는다.


지금은 기억이 바래져 어떤 연유로 사장을 증오했는지 가물한, 전 직장 동료들과 떠난 캠핑이 내 인생 첫 캠핑이었다. 단순한 술자리에서 건전한 취미 공유로 우리의 만남이 한 단계 성장했다. 모임을 주도한 동료는 자칭 캠핑홀릭 캠퍼로서 난생처음 보는 장비들을 보유한 찐 캠퍼였다.

금방 인연이 닳을 관계 중 하나가 바로 회사 동료라고 장담할 수 있지만 우리는 분기별로 이곳저곳 캠핑을 함께 다녔다. 다들 엿같은 그 직장을 퇴사하고 흩어진 후에도 삼삼오오 돈을 모아 비싼 텐트도 구입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자연히 내 첫 캠핑 동료들과의 만남에 열정이 슬슬 사그라질 때쯤 학창 시절 친구에게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됐다.

친구는 현재 만나는 남자친구가 취미를 나눠주면서 자연스레 캠핑을 사랑하게 됐다. 덕분에 캠핑과의 연이 사라지지 않았고 모두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됐다. 다시 캠핑 동료가 생긴 것이다.

친구도 하나씩 비싼 장비를 모으더니 이제는 캠핑 장비로만 외박을 해도 한 달을 버틸만한 맥시멈 리스트가 되었다. 한 겨울에 텐트 천 하나만 의지하고 잠을 청해도 추위에 떨지 않고 가져간 겉옷을 되려 벗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내 몸이 빨갛게 익은 상태였다.


주위에 하나둘 캠핑을 사랑하는 사람이 늘어갈수록 궁금증이 생겼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방이 있다. 나도 나만의 방이 있다. 방만 있다면 내가 눕고 싶을 때 누울 수 있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으며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시간도 아무에게 방해받지 않고 고요한 취미를 어느 때나 즐길 수 있다. 그곳에서 모든 걸 해결하는 나로서는 야영을 하며 불편함을 감수하는 캠핑족들이 궁금해진다.


내가 지인들을 따라 캠핑에 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캠핑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무수한 단계가 성가시지만, 빈도 부사를 넣으면 sometimes가 되니 말 그대로 가끔 콧바람 쐬어주는 정도는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아 기꺼이 이틀정도는 투자하는 편이. 하지만 다른 캠퍼들처럼 매달 최소 두 번은 야외로 떠나야 한다면 캠핑은 내게 never 즐거움을 주지 못할 거라고 확신에 확신을 더한다.

지인들의 답은 누가 시킨 거처럼 통일됐다. 그냥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의 공기를 즐기는 게 좋단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는 더 큰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캠핑 준비부터 단계를 대충 세분화한다면

01. 캠핑에 필요한 짐 챙기기(염치없지만 나는 장비가 없어서 이 단계는 거의 건너뛴다. 진짜 염치없어도 너무 없다.)

02. 캠핑장까지 찾아가기(내가 운전대를 잡지 않는데 차멀미를 해버려서 운전자보다 더 지친 상태다. 진짜진짜 염치없어도 너무 없다.)

03. 텐트 설치(너무 힘들다. 여기서 하루의 모든 체력을 다 써버린다. 대부분 장비 주인 진두지휘하에 움직이고 텐트팩만 가져다주는 수준이지만 텐트 자체가 무거워서 힘이 빠진다. 그래도 캠핑한다는 기대감으로 살짝 버틸 수 있다. 진짜진짜진짜 염치없어도 너무 없다.)

04. 앉아서 쉬면서 먹고 마시기(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계! 사실 먹고 마시려고 따라온다. 이제 염치없다고 쓰기에도 손가락 아프다.)

05. 수면(가끔 매너타임에 대한 자각 없는 이웃을 만나면 잠들기까지 귀가 괴로울 수 있다. 다들 도덕 시간에 졸았는지?)

06. 기상(바닥에서 잔 관계로 다음날 등허리에서 느껴지는 모든 근육통을 경험할 수 있다. 혹시 전날 어리석게 과음했다면 백퍼 숙취로 더 힘들다.)

07. 아침 먹기(아침은 맛있지만 이따 텐트 걷을 생각에 식사를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 남은 일정이 노동밖에 없다는 걸 애써 머릿속에서 지우려 노력한다.)

08. 텐트 해체(설치 단계에선 곧 캠핑한다는 기대감이라도 있지, 해체 단계에서는 피로+숙취 더블로 피곤에 절여진 몸을 이끌고 바삐 움직여야 한다. 퇴실시간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급해진다.)

09. 텐트 건조(이게 제일 지옥 같다. 텐트가 빨리 마르지 않으면 수건으로 일일이 닦아내야 한다. 혹 곰팡이가 생길까 봐 걱정하는 텐트 주인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근육 경련된 어깨를 움켜잡고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한다.)

10. 귀가(집에서 실신함과 동시에 다음 날 다시 시작될 쳇바퀴 같은 일상을 걱정해야 한다.)


위 단계에서 내가 좋아하는 단계는 한 단계밖에 없다.

노동의 값어치는 외면하고 오로지 먹고 마심에 치우친 내 즐거움에만 집중하니 한심스럽기 그지없지만 텐트 주인도 다를 게 없다. 다들 먹고 마실 때 표정이 제일 밝다. 사실 이 맛에 캠핑 오는 거지 입에 들어가는 게 없다면 굳이 캠핑 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캠핑장은 늘상 고기 굽는 냄새로 후각을 기분 좋게 마비시킨다. 아직까지 캠핑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채식주의자는 만나지 못했다. 내가 다녀본 캠핑장의 양 옆 사이드 이웃들 또한 삼겹살 몇 팩을 가져와 우리와 경쟁하듯 고기를 먹어치웠다.

기분 좋게 음식으로 배를 채우면서 다들 술 한잔으로 서로의 마음도 채운다. 거칠다 못해 파상풍 입힐 정도로 녹슨 일상은 각자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지만 이렇게 다들 살아내는 거라고 위로주를 주거니 받거니 잔을 교환한다.

어느새 시간은 밤이 되고 내일을 위해 어김없이 이부자리에 들어야 한다. 특별한 날이니 자리는 간소화됐지만 불만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잠 들 시간은 하루의 행복을 빠르게 방해한다.

고로 앉아서 지인들과 먹고 마시는 이 따뜻한 순간은 길어봐야 고작 5~6시간이 전부다. 텐트의 설치는 한 시간 반, 해체하고 건조하는 단계까지 생각하면 앞뒤로 장장 시간은 무거운 천 쪼가리를 가지고 씨름해야 한다.


이쯤 되니 순수한 호기심이 일수밖에 없다.

어차피 하룻밤만 자고 허물 건데 짧은 하루를 위해 굳이 무거운 장비를 싣고 캠핑을 떠나는 걸까.

먹고 마시는 순간은 일상을 떠나 자연 속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오늘 밤 경험할 수 있다.

렇게 따지다 보니 캠핑은 가성비 좋지 않은 취미생활로 정의가 내려진다. 장비도 끝이 없어서 늘 새로운 장비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돈은 돈대로 들고 시간 대비 너무 짧은 찰나의 순간만 힘겹게 왔다가 급하게 사라진다.




바닥에 꽂힌 텐트팩을 맨손으로 뽑다가 잠시 허리를 곧추 세운다. 텐트 주인은 손이 상한다고 팩망치를 가져다줬지만 이래저래 안전제일 단계는 다 귀찮다. 후딱 텐트를 정리하고 쉬고 싶다는 생각만이 간절하다.

허리를 두들기며 주위를 돌아보면 많은 캠퍼들이 퇴실 시간에 맞춰 각자의 텐트를 정리하고 있다.

새벽이슬로 젖어있는 타프와 외부 텐트. 그 천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려보면 작은 물방울이 도르륵 바닥으로 떨어진다. 내부 텐트도 결로로 흠뻑 젖어있는데 밤새 내뱉는 우리의 적은 온도가 이 공간을 데웠다는 게 신기하다. 감탄도 잠시, 갈 길이 멀다. 모든 텐트를 바닥에 펼쳐놓고 뜨거운 햇살에 바싹 말린다.

어제 모두가 왁자지껄 웃고 마신 순간은 없었다는 듯 다들 뒷정리에 여념이 없다.


내 손으로 열심히 텐트를 지었다가 내 손으로 열심히 허물어버린다.

전날 힘겹게 세웠던 폴대가 텐트에서 사라지면 모양 잡힌 삼각형은 곧 바닥으로 추락한다. 하루사이에 내 손으로 쌓아 올린 결과를 무너뜨릴 때면 가슴이 시리다. 텐트 주인을 쳐다보면 그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다른 뒷정리에 여념이 없다.


이제 다시 생각해 보자. 시간의 효율을 따져보자. 취미에도 계산적으로 영악하게 굴 필요가 있다.

원터치 텐트를 구입하면 힘겨운 설치와 해체 단계를 짧게 압축할 수 있다. 우리가 오롯이 즐길 순간만 기다랗게 잡아당겨 펼쳐놓을 수 있다. 행복한 공간은 길고 가쁜 시간은 좁다. 답은 나와있다. 다 같이 결정만 하면 된다.

하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진정한 캠핑족이라면 원터치에 눈도 돌려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럼 돈을 모아 장박을 하자고 권해본다. 고개는 더 크게 좌우로 흔들렸다. 텐트 설치부터 캠핑의 시작이란다.


아, 나는 내가 궁금해 마지않았던 '더 큰 이유'를 어렴풋이 이해해 버리고 말았다.

작은 천을 세워 공간을 건축하는 고된 순간도 사랑해 버리는 게 바로 캠퍼다. 본인이 지었던 그 공간을 부수는 용기도 사랑해 버리는 게 바로 캠퍼다. 다시 캠핑장을 찾아와 저번과 똑같은 방수 천을 세우는 노동도 사랑해 버리는 게 바로 캠퍼다. 하룻밤이 지나고 그 결과물이 부서질 거라는 걸 알고 있어도 묵묵히 튼튼하게 공간을 건축하는 게 캠퍼다. 캠핑의 희로애락을 온전히 즐길 줄 아는 자만이 더 큰 기쁨을 누릴 자격이 있다. 내 고개는 상대방과 다르게 위아래로 흔들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타서 나는 한결같이 비슷한 생각을 한다.

너무 힘드니 다음번 캠핑 때는 따라오지 않아야지. 하지만 망각의 동물답게 한 달만 지나면 좋다고 따라온다.

차 트렁크에서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캠핑 장비를 꺼낸다. 효율성을 위해 각자가 분업을 해 할 일을 찾는다. 팩의 길이를 맞추고 나는 기억을 더듬어 내 것이 아닌 텐트를 주섬주섬 세운다. 지난번 캠핑보다 설치 시간이 단축됐다. 텐트 주인이 칭찬을 해준다. 원터치로는 느껴보지 못할 뿌듯함이다. 장박을 해도 느껴보지 못할 보람참이다.

해체하지 않으면 실력은 좋아지지 않는다. 얼굴에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혀 인중을 넘어 입술로 흘러들어 왔지만 내가 느낀 미각은 단 맛이었다.






Photo by Chris Scho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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