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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방글 Aug 23. 2022

내 우울증의 역사 - 2

내 행복의 원천 찾기

 엄마와 같이 살기 전, 엄마에게 2번이나 버려졌던 나는 엄마에 대한 미움은 애써 외면하며 원망하지 않으려 애쓰며 살았었다. 가상의 엄마상을 떠올리면서 버텼었다. 엄마는 내 옆에 없었기에 마음대로 상상하면 됐다. 엄마는 좋은 사람이고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나에게 엄마라는 단어는 눈물을 펑펑 쏟게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좋은 엄마라는 가상의 모델은 유지할 수가 없게 되었다. 같이 살아보니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 나는 홍대 국어교육과를 다니고 있었는데 주말엔 카페나 편의점 알바를 해서 내 용돈을 벌었다. 등록금은 다 학자금 대출이었다. 어느 날 학교에 가려는데 교통카드를 충전하려고 통장을 봤더니 돈이 다 인출되고 없었다. 엄마가 내 돈을 다 빼갔던 것이다. 당시 엄마는 식당을 운영하면서 빚을 많이 졌고 빚쟁이들이 집에도 찾아왔다. 나는 지하철 탈 돈이 없어서 학교를 가지 못하고 있으니 내 돈을 돌려달라고 엄마에게 말했지만 엄마는 자기는 모른다며 외면했다.



 나는 휴학을 하기로 했다. 어차피 졸업해도 학자금 빚만 쌓이고 바로 임용고시에 합격할 확률도 낮은 것 같았다. 진로를 고민하다가 아는 언니가 경인교대를 다녔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과외로 월 100만 원은 벌 수 있고 졸업 후 바로 교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교대를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다니던 홍대는 휴학하고 수능 공부를 준비했다. 주말에는 알바를 하고 평일엔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나에겐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했고 졸업 후 바로 취직이 가능하다는 점, 교대는 국립대라 등록금이 싸다는 것, 대학 다니며 학비와 생활비도 벌 수 있는 점, 그것 때문에 진로를 결정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것이 나의 불행의 씨앗이었다.



 나는 1년 만에 경인교대에 합격을 했다. 뭔가 결심하면 바로 이루는 점은 대단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결코 안정과 행복에 닿지 못했다. 교대 합격과 이후 임용고시 합격, 교사로서의 생활은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이었다.



 교대를 다니는 동안 나는 과외로 돈을 벌었는데 내 적성에 참 맞지 않는 일이었다. 너무 하기 싫었지만 고시원 월세와 이전 대학에서의 학자금 대출 이자, 그리고 다니고 있던 교대 등록금 등을 감당하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숨만 쉬어도 고정지출 한달에 70만 원이 나가는 상황이었다. 대학생에게 정말 감당하기 힘든 액수였다. 과외하는 게 적성에 안 맞고 너무 하기 싫은 일이었지만 꾸역꾸역 하는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러면 고시원 월세를 못 내서 길거리에 나앉게 된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과외비를 자꾸 미루면서 안 주는 집이 있었다. 받아야 할 돈을 못 받으니 월세를 못 내게 생기고 밥 한 끼 사 먹을 돈이 없어 굶고 있다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사정을 설명하고 밥 사 먹을 돈이 없어서 조금 보내줄 수 있냐고 했는데 엄마는 돈이 없다며 거절했다. 이때도 나는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바로 다른 방법을 강구했다. 아빠에게 연락했더니 조금 보내주었다. 충격받고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설사 내가 굶어 죽을지라도 엄마는 내가 도움을 청할 사람이 아니었다. 모든 건 나 혼자 해결해야 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임용고시도 바로 합격해서 28살에 첫 발령을 받았다. 그런데 나는 교사 일을 수행할 수가 없었다. 우울증도 찾아오고 일도 적성에 맞지 않았다. 휴직과 복직을 반복했다. 교사가 적성에 맞지 않는 건 교대를 다니면서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다. 과외할 때도 너무 싫었고 교생 실습하면서 너무 힘들어 자퇴를 하고 싶을 정도로 안 맞았다. 그래도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별다른 대안도 없이 그만둘 수는 없었다.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그다지 없었다. 당장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상황에 창창한 직업을 그만둘 수가 없어서 그냥 진행시켰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그나마 내 불안한 인생에서 희망을 가졌던 것이 안정된 직장인데 나는 그것을 수행할 수가 없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12년이 넘게 우울증이 이어지고 있고 양극성 장애 - 조울증을 앓게 되었다. 우울한 환경을 버텨오는 과정에서 병이 생긴 것 같다.



 험난하게 이어져 온 인생에서 하나 건진 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이 나를 더 병들게 해서 직업활동이 고통스러운 상황이다. 하지만 버리지도 못하고 고통스럽게 직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게으르고 나태해서 지금의 일이 싫은 건지 헷갈린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나태한 사람이 아니다. 나태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며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최상의 환경이 주어져도 성적이 안 나오는 사람도 많다. 나는 목표를 위해 달려 나가거나 바로바로 결과가 수치로 나오는 일에 열심히 임할 수 있는 사람인지 모른다.



 나는 뭘 좋아할까?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이렇게 글 쓰는 것도 좋다. 그리고 부동산에 관심이 많다. 어렸을 때부터 집다운 집에 못 살아봐서 집에 대한 욕구가 아주 크다. 공부하는 것도 좋아하니까 부동산 관련 책 읽고 공부할 때 아주 신났던 것 같다. 나는 부동산을 좋아한다. 이 일로 기쁨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린 시절 열심히 공부하는 과정에서 희열을 많이 느꼈었다. 내가 짠 전략대로 공부 계획을 세우고 시험 점수라는 피드백으로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이 기쁨이었다. 공부하는 것 자체가 재밌었고 상승해가는 기쁨도 컸다. 성취감은 나를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내 불행의 원천이 무엇인지는 어느 정도 찾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나의 행복의 원천이 어디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기쁨과 즐거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일은 내가 나 스스로를 존재 마땅한 사람으로, 존귀한 사람으로 느끼게 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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