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깨발랄영아 Jan 11. 2024

오늘도 죄책감, 책임감 그리고 내려놓음

그리고 슬픈 결말

나이 마흔. 나는 아직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길거리를 걷고, 텔레비전을 보며 깔깔 웃는 시간이 제일 좋다. 그래서 진지해져야 하는 순간들은 버겁고 힘들다. 결혼 후 10년 동안 세 딸의 엄마로 지내며 많은 순간을 버텨왔다.

 

교대근무자 남편과 함께 산다는 건, 어쩔 수 없이 오로지 혼자 하는 육아를 감당하게 했다. 집보다는 밖이 좋고, 밖에는 재미있는 일들이 가득하니 세 딸을 데리고 어디든 간다. 다행히 나를 닮은 아이들은 언제나 밖을 더 좋아한다. 세 딸은 고맙게도 어딜 가든지 그곳에서 즐거움을 찾아 행복해하고, 적당히 예민하고, 적당히 순수하고, 적당히 잘 놀 줄 안다.  


아이들과 해 보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들여다보고 체크하는 것을 좋아한다. 같이 도서관 가기, 같이 목욕탕 가기, 같이 영화관 가기, 같이 자전거 타기, 좋아하는 것을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은 정말 큰 행복이다. 이번엔 ‘자전거 타기’였다. '양산자전거대축전' 현수막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 딱 우리가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도 좋아하며 며칠 동안 흥분해 있었다. 대회 날 아침 팔토시는 안 보이고 긴 팔 티셔츠도 보이지 않았다. 괜찮겠지 생각하고, 늦었다고 빨리 가야 한다고 아이들을 다그쳤다. 접수 후에 땡볕에 서 있고, 장장 1시간가량 자전거를 타고, 큰딸은 더 타고 싶다며 1시간을 더 달렸다. 자전거대회가 끝나고 축제를 즐기고 9시간 만에 집에 돌아왔다. 씻고 나서 보니 아이들이 팔, 다리가 검게 타 있었다. 검게 탄 피부를 본 순간 멍해졌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이 간절히 필요했다. 팔토시, 긴 팔만 미리 찾아 놓았더라면, 점퍼라도 걸쳤더라면, 로션을 발라주며 수많은 후회와 자책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엄마라는 무게는 무겁고 아프다.  


아이들을 키워오며 춥게 입혀 감기에 걸리게 했을 때, 손을 안 잡아주어 넘어지게 했을 때, 밥을 잘 먹지 않을 때, 준비물을 제대로 못 챙겨줬을 때 수많은 죄책감의 시간을 지나왔다. 그때는 죄책감을 혼자 견디며 이겨냈었던 것 같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에게 막내딸이 "괜찮아~엄마. 이거 괜찮아지는 거야. 그렇지?"하고 말했다. 아이가 내가 가진 죄책감을 덜어주는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또 눈물이 났다. 책임지고 다시 돌려놓으리라 마음먹고 로션 바르기, 찜질, 마사지 아이들의 피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여름이 오면 뜨거운 태양에 팔도 속도 더 까맣게 타겠지. 그래도 가을이 되면 선선한 바람이 스치며 검게 탄 피부는 조금 옅어지겠지. 겨울에는 두꺼운 점퍼에 감춰져서 속상한 마음도 감춰지겠지. 그렇게 죄책감도, 책임감도 내려놓아지겠지.  


오늘은 세 딸을 보며 "벌써 피서 다녀왔어요?"라는 누군가의 물음에 "아니요. 그게 아니라…." 하며 시계 자국만 하얗게 남은 내 팔을 보여주며 이야기했고, 하얀 친구 옆에 서 있는 딸들의 검은 피부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유난히 그런 하루였지만 팔다리를 쭉쭉 뻗어 열심히 로션을 바르는 딸들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이렇게 또 조금씩 내려놓고 편안해진다.  


늘 나의 육아는 죄책감, 책임감, 내려놓음, 편안함의 반복이다. 그래서 나의 육아는 행복이다.


시에서 진행하는 '행복육아일기'라는 공모전에 내려고 쓴 글이다. 결론적으로는 공모전 제출 마지막날 이메일 주소를 잘못 적어 제출하지 못했다. 발송 실패 메일을 뒤늦게 확인하고 절망했다. 왜 난 마지막날 제출하려고 한 것인가? 주소가 적힌  문서를 뽑아서 보면서 메일을 발송해 놓고 어떻게 어떻게 잘못 적었단 말이냐? 발송 실패 메일을 왜 확인하지 않은 것인가? 여하튼 슬픈 결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분신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