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죄책감, 책임감 그리고 내려놓음
그리고 슬픈 결말
나이 마흔. 나는 아직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길거리를 걷고, 텔레비전을 보며 깔깔 웃는 시간이 제일 좋다. 그래서 진지해져야 하는 순간들은 버겁고 힘들다. 결혼 후 10년 동안 세 딸의 엄마로 지내며 많은 순간을 버텨왔다.
교대근무자 남편과 함께 산다는 건, 어쩔 수 없이 오로지 혼자 하는 육아를 감당하게 했다. 집보다는 밖이 좋고, 밖에는 재미있는 일들이 가득하니 세 딸을 데리고 어디든 간다. 다행히 나를 닮은 아이들은 언제나 밖을 더 좋아한다. 세 딸은 고맙게도 어딜 가든지 그곳에서 즐거움을 찾아 행복해하고, 적당히 예민하고, 적당히 순수하고, 적당히 잘 놀 줄 안다.
아이들과 해 보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들여다보고 체크하는 것을 좋아한다. 같이 도서관 가기, 같이 목욕탕 가기, 같이 영화관 가기, 같이 자전거 타기, 좋아하는 것을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은 정말 큰 행복이다. 이번엔 ‘자전거 타기’였다. '양산자전거대축전' 현수막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 딱 우리가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도 좋아하며 며칠 동안 흥분해 있었다. 대회 날 아침 팔토시는 안 보이고 긴 팔 티셔츠도 보이지 않았다. 괜찮겠지 생각하고, 늦었다고 빨리 가야 한다고 아이들을 다그쳤다. 접수 후에 땡볕에 서 있고, 장장 1시간가량 자전거를 타고, 큰딸은 더 타고 싶다며 1시간을 더 달렸다. 자전거대회가 끝나고 축제를 즐기고 9시간 만에 집에 돌아왔다. 씻고 나서 보니 아이들이 팔, 다리가 검게 타 있었다. 검게 탄 피부를 본 순간 멍해졌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이 간절히 필요했다. 팔토시, 긴 팔만 미리 찾아 놓았더라면, 점퍼라도 걸쳤더라면, 로션을 발라주며 수많은 후회와 자책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엄마라는 무게는 무겁고 아프다.
아이들을 키워오며 춥게 입혀 감기에 걸리게 했을 때, 손을 안 잡아주어 넘어지게 했을 때, 밥을 잘 먹지 않을 때, 준비물을 제대로 못 챙겨줬을 때 수많은 죄책감의 시간을 지나왔다. 그때는 죄책감을 혼자 견디며 이겨냈었던 것 같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에게 막내딸이 "괜찮아~엄마. 이거 괜찮아지는 거야. 그렇지?"하고 말했다. 아이가 내가 가진 죄책감을 덜어주는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또 눈물이 났다. 책임지고 다시 돌려놓으리라 마음먹고 로션 바르기, 찜질, 마사지 아이들의 피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여름이 오면 뜨거운 태양에 팔도 속도 더 까맣게 타겠지. 그래도 가을이 되면 선선한 바람이 스치며 검게 탄 피부는 조금 옅어지겠지. 겨울에는 두꺼운 점퍼에 감춰져서 속상한 마음도 감춰지겠지. 그렇게 죄책감도, 책임감도 내려놓아지겠지.
오늘은 세 딸을 보며 "벌써 피서 다녀왔어요?"라는 누군가의 물음에 "아니요. 그게 아니라…." 하며 시계 자국만 하얗게 남은 내 팔을 보여주며 이야기했고, 하얀 친구 옆에 서 있는 딸들의 검은 피부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유난히 그런 하루였지만 팔다리를 쭉쭉 뻗어 열심히 로션을 바르는 딸들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이렇게 또 조금씩 내려놓고 편안해진다.
늘 나의 육아는 죄책감, 책임감, 내려놓음, 편안함의 반복이다. 그래서 나의 육아는 행복이다.
시에서 진행하는 '행복육아일기'라는 공모전에 내려고 쓴 글이다. 결론적으로는 공모전 제출 마지막날 이메일 주소를 잘못 적어 제출하지 못했다. 발송 실패 메일을 뒤늦게 확인하고 절망했다. 왜 난 마지막날 제출하려고 한 것인가? 주소가 적힌 문서를 뽑아서 보면서 메일을 발송해 놓고 어떻게 어떻게 잘못 적었단 말이냐? 발송 실패 메일을 왜 확인하지 않은 것인가? 여하튼 슬픈 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