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이던가 신촌 어느 타로집에 가서 타로점을 봤다. 타로술사가 나에게 30대 후반이 되면 좋아질 거라고 말했다. "예?" 지금과 같은 시간을 10년이나 더 보내야 좋아진다고요? 언니집에 얹혀살며 노량진 임용고시학원씩이나 다니면서도 임용시험을 2년째 말아먹고, 그냥 내가 하고 싶던 라디오작가가 돼 보련다 하며 방송아카데미를 수료했다. 뭐 부단히 노력한 듯 하지만 고작 월급 100만 원 받는 막내작가였던 나였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경험해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했지만 막막하고 두려운 감정이 더 많았다. 늘 어중간했고, 열정이 부족했고, 그냥 이만하면 되었다 하고 타협해 왔다. 무언가 되어 온전히 자기 삶을 살아가는 듯한 친구들의 모습과 비교하며 힘들었고, 또 언젠가 이만하면 되었다 하고 그만둬 버릴 것 같아 불안했다. 역시나 나는 포기하고 타협했다.
요즘 생각 해보면 타로점이 맞나 싶기도 하다. 내 앞에서 육아의 고됨을 말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투정이라 할 만큼 10년 동안 연년생, 쌍둥이 육아의 매운맛을 견뎌왔다.
지금은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 모두 "예뻐졌네. 얼굴이 좋아 보여요."라는 말을 한다. 의술의 도움을 조금은 받긴 했지만 꾸준한 운동과 긍정적인 마인드가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아버지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해 보라며 100만 원을 주셨다. 노량진에서 까먹은 돈은 다 잊으셨나 보다 하고 냉큼 받았다. 남들은 모르지만 마음속으로 오래 고민한 뒤 심플하게 결정해서 학점은행제 심리학과 공부를 시작했다. 강의, 과제, 시험의 과정을 마무리했다. 실상은 그리 성실하지 못했지만 마무리하고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이 노력의 결과라면 성실했다고 해 두자. 학습자등록을 안 해서 학위신청을 늦게 하게 되어 학위를 아직 받지는 못했다. 아주 나답다.
심리학과 관련 자격증인 청소년상담사 3급도 시험, 면접시험을 통과하고 연수만 남겨놓았다. 60점 커트라인 시험에서 60.4를 받았다. 합격률이 50%였고, 어쨌든 통과이니 난 성실했던 것이다.
41세 아니 만 나이 40세가 된 지금도 난 성실한 인간인가? 게으른 인간인가? 알 수 없다. 운동을 절대 빠지지 않고 가면서도, 설거지는 내일 하지 뭐 하며 핸드폰만 바라볼 때가 있다.
오늘도 성실함과 타협하며 대충 산다.
토닥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