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짱이 Oct 17. 2024

관리하지 않는 시간관리법

올리버 버크먼의《4000주》서평

지은이: 올리버 버크먼(Oliver Burkeman)
제목: 4000주(Four Thousand Weeks: Time Managemenet for Mortals)
번역: 이윤진
출판사: 21세기 북스
출간 연도: 2022.02
원문 출간 연도: 2021.08
페이지: 288쪽





 

 영국의 "가디언지"에서 오랫동안 통찰력 있는 칼럼을 연재한 '올리버 버크먼'의 책 "4000주"는 시간관리를 하면 할수록 삶을 제대로 즐길 수 없다는 색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에겐 태어난 순간부터 4000주의 시간이 주어진다. 4000주라는 유한성은 그 자체로 인간의 한계를 전제하는데 먼저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삶 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말한다.

 4000주라는 유한성은 우리를 조급하게 만들고 시간을 '효율성'이라는 관점에서만 보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매번 시간관리에 공을 들이지만 어째서인지 늘 실패한다. 애초에 시간은 관리할 수 있는 일종의 도구가 아님을 모르기 때문이다. 시간 관리에 매몰되어 이룰 수 없는 무수한 게획을 세우고 그 일을 해치울 수 없을 때 불안과 좌절을 맛본다. 관리하지 않으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기에 방법만 달리하며 시간관리를 시도하고 또다시 실패한다. 

 어쩐지 앞선 얘기가 '갓생'을 외치며 빈틈없이 부지런한 삶을 지향하는 우리가 겪고 있는 모습일테다.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시간관리에 목매고 있지만 분명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알고있다. 따라서 4000주라는 시간을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현재를 즐길 있는 아름다운 유예로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포모, Fear of Missing Out) 보다는 포기하는 기쁨(조모, Joy of Missing Out)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계의 역설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완전히 통제하고 인간에게 주어진 불가피한 제약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시간을 관리하려 할수록, 삶이 더욱 불안하고 공허해지며 좌절감이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인간의 한계성을 마주하고 그 한계성을 받아들이면 삶은 더 생산적이고 의미 있고 즐거워진다.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데에도 분명 한계가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어떤 시간 관리법도 현실을 직시하는 것만큼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시간관리법에 대한 책은 무수히 많지만 시간관리법이라는 주제로 나온 책 중에 시간관리법은 무용지물이라고 주장하는 책이기에 눈길을 끈다. 아마 누구나 한 번 쯤 시간관리를 해보기 위해 애쓴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연초가 되면 구입하는 스케쥴러, 뽀모도로 법칙, 한때 유행했던 구글타이머 등등 무수한 시간관리법과 관련 도구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보이지도 않는 시간을 관리하려고 할까? 벤저민 프랭클린처럼 많은 업적을 세우고 싶어서, 효율성을 위해,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등등 수많은 이유가 존재할테다.

 결국 핵심은 시간관리의 목적이 대개 더 높은 효율성 추구에 있다는 점이다. 시간관리에 급급해 삶의 행복은 저 뒤에 있을 뿐이다. 애초에 본인이 계획한대로 완벽하게 시간관리를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심지어 휴식을 위한 여행을 갈 때도 시간을 일종의 재화로 취급해 분 단위로 계획을 세워 가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휴식은 사라지고 시간과 돈을 투자한 일종의 도구로서의 휴식만이 있다.

   


 이와 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여가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면, 적어도 여가의 일부를 오로지 즐거움을 위해 ‘낭비하며’ 보내는 것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암암리에 이도 저도 아닌 미래 지향적 자기계발에 시간을 쏟기보다 푹 쉬라는 것이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모든 여유 시간을 개인적인 성장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런 관점에서 빈둥거림은 용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의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몬드 보부아르는 이런 말을 남겼다. “노인에게 와인 한 잔을 마시는 행위가 아무런 만족을 줄 수 없다면, 인간의 생산성과 부는 한낱 의미 없는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생산성과 부는 개인이 되찾을 수 있을 때, 생생한 즐거움으로 그것을 만끽할 수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다.”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은 "내가 진심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근로’가 미덕이라는 믿음이 현대 사회에 막대한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게으름에 대한 찬양》, 사회평론, p18)라고 말했다. 더 높은 위치,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해 필요 이상의 노동을 지속하기 때문이다. 일을 통해 얻는 성취, 돈, 명예라는 부산물은 분명 긍정적인 효과도 주지만, 현재 우리는 노동에 필요 이상의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노동, 노동이 창출하는 돈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경향이 짙어 보인다.

 소셜 네트워크의 발달로 자신과 타인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는 더 많아졌고 이에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사람들은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 지도 모른채 그저 더 열심히 살려고 한다. 이에 휴식과 여가를 필수로 여기면서도 맘껏 즐길 수 조차 없게 되었는데, 올리버 버크먼 또한 이를 사후세계에 대한 관점 변화, 노동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 사회 등을 증거로 내세운다.

 근대 이전에는 여가와 삶이 분리되지 않은 삶, 계절에 따라 흘러가는 삶을 살았는데 이는 내세를 믿었기 때문이다. 현세는 내세로 가는 하나의 과정이기에 제한된 시간에 대한  없었다. 그러나 중세시대부터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주어진 생에 대한 욕망, 경험에 대한 욕망이 점점 커져, 결국 시간은 삶에서 분리되어 하나의 사고팔수 있는 수단었다. 산업화 이후 노동이 인간의 핵심 덕목으로 자리잡으면서 일과 여가 또한 완전히 분리되어버렸고, 현대사회에서 여가는 좋은 노동을 위한 단이 됐을 뿐이다.


 


우리는 가능한 한 분명하게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이데거가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라고 말한 것이 바로 삶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또한 인생은 리허설이 아니며, 우리의 선택에는 무수한 희생이 뒤따르고, 시간은 오늘, 내일, 그리고 다음 달이 지나가면서 계속 닳아서 없어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은 상투적인 표현처럼 하루하루를 마치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사는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정말로 오늘이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분명한 미래에 전적으로 의지해서는 안 된다.


 결국 삶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 우리는 시간관리에 연연할 게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삶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이며 4000주의 시간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렇다면 진정한 삶이란 무엇일까. 해보고 싶은 것들을 다 경험하는 삶? 미래는 생각지 않고 현재의 쾌락만을 즐기는 삶? 저자는 구체적인 형태의 삶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다만, 현재에 온전히 나로서 존재하는 삶, 행복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삶을 바람직하다고 본다. 

 또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생에서 모든 것을 경험해봐야 한다는 생각 떄문에 혹은 많은 것을 성취해야 한다는 의지시간관리에 급급하다면, 그 모든 것들을 이루었을 때 진정 행복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한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불안함을 느끼며 오늘하루 해야할 목록들에만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면 더욱 저자가 주장하는대로 시간관리의 한계를, 분명한 죽음을 인식해야 한다. 죽음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바는 확실하다. '시간관리를 핑계로 현재의 행복을 놓치고 있진 않은가.' 저자는 시간 관리에 대한 허황된 인식에서 그 답을 찾았지만, 더 큰 범주로 본다면 SNS의 발달로 인한 비교나 외로움 문제의 총체적 결과일 수 있다. 미래의 완벽한 나를 기대하며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여가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나라는 결과 말이다.

 하루의 투두리스트를 완벽하게 다 지워본 적이 없다. 허황된 기대 속에 무리한 스케쥴을 집어넣는다. 그러나 네모난 체크박스는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주고 그 압박감은 현재의 나를 게으르게 만든다. 이러한 나태는 스스로를 죽이는 칼날이 되고 쉬어도 쉴 수 없고 일을 해도 집중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이처럼 해야할 목록을 만들어내고 혹은 분명 해내고 있는데 어쩐지 불안하고 공허한 기분이 자주 드는가? 그렇다면 올리버 버크먼이 주장하는대로 이제는 시간관리의 한계를 인식하고 진짜 삶을 살아봐야 할 때다. 효율성에 목매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에 완전히 집중하는 삶 말이다. 오늘하루는 해야할 일에서 벗어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일들 가령,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일이나 자연물을 눈에 담는 일 등을 해보자. 아주 조금이라도 전보다 더 평온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연이은 불행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