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후반 여자의 인생 2막 열기
"너가 지금 나이가 몇이지?"
"윤석열 나이로요?"
"아니ㅋㅋ 진짜 나이"
"스물아홉이요."
"벌써? 너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야. 진짜 최선을 다해야 돼."
요즈음 주중에 온라인서점 물류센터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다. 감사하게도 물량이 많아질 때마다 가장 먼저 불러주신다. 이제 이 일도, 이곳 직원들도 편해질 즈음이었다.
그리고 꼭 그런 때에 원치 않는 원펀치가 훅 들어오기 마련이다.
대리님이 갑자기, 불쑥 나에게 저런 질문을 해왔다.
나이가 몇이니?
하고싶은 일은 뭐니?
지금 최선을 다해야 돼. 너도 알지?
원펀치 쓰리강냉이다.
불필요한 참견이지만 어느정도 애정의 발화라고 생각하자 싶었건만, 사실 저 한마디에 일주일을 넘게 고민을 하고 우울감을 느꼈더랬다.
대한민국 만큼 나이대별로 해야할 과제가 부여된 나라가 있을까?
20대면 취업을 해야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달려들어봐야하고, 30대면 결혼도 해야하고 돈은 얼마 정도 모았어야하며...
듣기만해도 피곤하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늘 들어오던 말이기에 원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 영향을 받게 되어있다.
그 영향력은 대개 부정적으로 발휘되며 가장 큰 문제는 박탈감과 우울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SNS에 보면 같은 나이 또래임에도 세련된 외모와 멋진 직업, 심지어 부자인 사람들이 넘친다. 반면 현재 내 모습은 마땅히 내세울 직업도 없고, 멋진 꿈도 없고, 돈 버느라 급급한 삶이니 스스로 얼마나 볼품없게 느껴지던지. 하여튼 대리님이 던진 나이 발언 하나에 마음이 크게 데인 상태였다.
20대 후반에 첫 취업은 다들 늦었단다. 아무리 뒤져봐도 다들 늦었다는 말 뿐이다. 백세인생이라면서 20대 후반이 늦었다는 말이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되지만, 어쨌든 현실이 그러하다고 하니 '아, 난 너무 늦었네. 나 이제 뭐 먹고 살지?'라는 걱정과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난 지금껏 뭘 한걸까. 인생을 헛되게 살고 있는 걸까.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는 자괴감은 덤이다.
그렇게 스트레스만 받다가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 관점을 바꿔보려고 시도했다.
은퇴를 앞둔 중장년들이 대개 인생 2막 시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가.
인생 2막의 시기를 좀 앞당겨보자 싶었다.
인생 2막을 지금 시작하면 오히려 남들보다 빠른거니까!
내 인생의 1막은 고민만 하고 시도하지 않았으며, 스스로를 이해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삶이었다.
그러니까 인생 2막은 딱 그 반대로만 해보려고 한다.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고민보다는 실행을 하며,
타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그런 삶을.
늦은 게 어디있단 말인가.
모지스 할머니도 75세에 그림을 시작하고 이름을 떨치지 않았던가.
이름을 떨치는 것까진 바라지 않아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원없이 하면서 여행같은 삶을 즐기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