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9-30일, 5년 3개월 만에 방한한 나토 사무총장을 다시 수행 통역했다.
나토가 군사 조직이라 그런지 한국에 있는 AIIC 회원 중 유일한 청일점인 필자를 다시 불러줘 고마웠다.
5년이 흐르는 동안 코로나도 횡행했고 우크라 사태도 있었던 만큼 나보다 6살 연하인 그도 그만큼 늙어있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Even brushing past a person is a karma) 이라는 데 그와는 특별한 전생의 업이 있었을까.
참고로, 내가 수학한 파리 3대학 통번역대학권ESIT이 파리 샹제리제 너머 뽀르트 도핀Porte Dauphine에 있는데
그 건물이 나토 본부였던 연유로 2층 국제회의장과 부속 동시통역 시설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었다.
요인 수행 통역은 필자가 30-40대에 걸쳐 10년 넘게 체험한 것이라 "몸이 기억하고 있겠지" 했는데
거의 5년만에 맡은 일이라 맘대로 되지 않았다. 순발력도 떨어지고 청력도 젊을 때 같지 않아 슬펐다.
그런데 여러 사진 중 잘 나왔다고 생각해 공개한 현충원 참배 사진을 본 친지들이 "통역사 같지 않다"고 놀려 댔다.
맞다. 필자는 우선 통역사 역할을 하기에는 덩치가 너무 크다. 통역부스에 들어가 있으면 모르지만
순차통역을 위해 단상에 올라가 요인 옆에 앉으면 너무 커 눈에 띄기 때문이다.
통역사는 비가시성(invisibility)이 높을수록 이상적인데 180센티 키에 85킬로 체중은 눈에 너무 띄기 마련.
30대 때부터도 선배들로 부터 "요인 옆에서는 몸을 움츠리라"는 경고(?)를 자주 받았던 기억이 살아났다.
어쨌든 5년 만에 한 통역은 힘들었지만 오래 만에 엔돌핀이 돌고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이제 고희를 지나 만 70세를 2개월 앞두고, 이런 통역을 언제 다시 하게 될 지 기약도 없지만
"송충이는 솔 잎을 먹어야 한다"고 하니 Fight Tonight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