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다락방의 자야

by 오 순


아버지는 직업 군인이었다.

아버지는 나라를 위해서

직업 군인이 된 게 아니었다.

도피처였다.


딸 다섯 아들 한 명을 키우려면

군대 만한 직장은 없었다.


아버지는 직업 군인으로서는 성실했지만

가장으로서는 그리 적합하지 않았다.

칼퇴하면 대폿집으로 귀가해 일독을 풀었고

집은 잠깐 들르는 곳이었다.


월급날이

언니들은 대폿집 문 앞에 대기해

아버지의 누런 월급봉투만

집으로 리고 왔다.


여섯 명의 자식들이 바글대는 집에는

아버지가 쉴 곳은 없었다.


가난대학 중퇴를 한 아버지는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면

잠자던 자식들을 깨웠고

학교에서 뭘 배웠는지 묻곤 했다.

유독 공부를 못한 둘째 언니는

빠따로 엉덩이를 자주 맞아서

어린 나이에 습관성 가출병이 생겼다.


둘째 언니는 고등학교 때까지

가방 대신 종종 보따리를 들고

집으로 들어 적이 았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대가로

언니보다 더 열심히

학교를 등교해야만 했다.


내 어릴 적 가난한 젊은 아버지는

책임질 일곱 명의 사람이 있었으니

술 없이는 견디지 못했으리라 싶기도 하다.

허나,

아버지는 자신의 상실에 너무 취해 있었고

우리는 그 시절,

경쾌하게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지 못했다.


그런 아버지가 의아하게도

점잖게 퇴근하는 날에는

자전거에 여름에는 바밤바와 자야를

겨울에는 호빵과 자야를 싣고 왔다.


아버지가 군복을 입고

회색 자전거에 자야 박스를 싣고

골목길을 들어오는 날은 조금은 따뜻한 날이었다.


어머니는 작은 봉지에 담긴 자야를

가위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으로 잘라 우리에게 주었고

건빵에 물려 있던 군인의 자식인 나에겐

자야는 초콜릿 같았다.


한 여름 바밤바가 녹을까 봐

한 겨울 호빵이 식을까 봐

힘차게 페달을 밟았을 아버지는

짧은 순간 아빠였다.

자야,

어릴 적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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