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버린 구두 한 짝
나는 ‘오징어 땅콩’을 먹지 않는다.
땅콩은 있는데 오징어가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날의 기억 때문이다.
그날은 대학 입학을 앞두고
처음으로 돈을 벌러 가는 날이었다.
돈이 없던 나에게 아르바이트는
멋지고 우아한 경험은 아니었다.
그냥 무섭고 서럽고 슬픈 일이었다.
이런 기분을 떨쳐버리려
언니의 심은하 딥 퍼플 립스틱을 발라 봐도
언니의 진분홍 오리털 점퍼를 입어 봐도
그 생경한 돈 벌러 가야 한다는 서러움은
오히려 더욱 빛을 냈다.
생존을 위해 돈을 번다는 일은
서러움도 같이 버는 일인 거 같았다.
언니가 첫 월급으로 사 준,
고이 모셔 두었던 랜드로버 신발을
꺼내 신을 수밖에 없었고,
왼쪽 신발 앞코를 바닥에 톡톡
두 번 치고 집을 나갔다
옷가게에서
마네킹보다 더 마네킹답게 일한 난
별 탈 없이 일을 마쳤고
퇴근길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오징어 땅콩을 샀다.
동글동글한 ‘오징어 땅콩’을
혀로 데굴데굴 굴려 소금 가루를 발라낸 후
날쌔게 사정없이 어금니로 부숴버리면
땅~ 콩하고 풍기는 고소한 내음과 동시에
안도의 한숨이 흘렀다.
그런데 쿵.
누가 일부러 파 놓은 함정 같은 맨홀에
왼발이 그만 빠지고 말았고
난 휘청거렸고
오징어 땅콩은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순간 사람들은 몰려왔고
부끄러움에 서둘러 발을 빼내느라
나의 랜드로버는 벗겨져
하수구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날 밤,
찾지 못할 걸 알면서도
언니는 연탄집개로
작디작은 구멍을 휘저었고
난 최선을 다해 플래시를 빙빙 돌려댔다.
빠듯한 월급을 쪼개
신발을 사 준 언니한테 미안하고
단 하루만 신어 본 나의 억울함에
플래시 불빛은 점점 하얗게 흩어졌다.
불빛 사이로
도망 못 간 망할 놈의
몇 개의 오징어 땅콩들이 보였고
난 온 힘을 다해
하나, 둘, 셋 ,
즈려 또 즈려,
밟고 또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