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마지막 순간

시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

by 김세윤

야심한 밤,
문득 눈이 떠져 부리나케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11시경. 오늘에서야 겨우 꽃시장에 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작고 소중한 작업실에 있던 꽃들은 어느새 시들어가고 있었고,
그 모습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이번 방문은 어쩌면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꽃시장을 둘러보며 몇 송이 꽃이 눈에 들어왔다.
마릴린 먼로, 작약, 아네모네.
마릴린 먼로는 예전에도 홀리듯 데려온 적이 있기에 이번엔 다른 꽃을 골랐다.
고심 끝에 선택한 건 작약과 아네모네.

한 단을 사고 덤으로 두 송이를 더 받았는데, 그중 하나가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잎대에 검은 반점이 있고,
금세 잎이 마르고 말 것처럼 보였다.

어느 생명이든 태어나는 순간부터 늙고 사라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 꽃을 물병에 꽂아두는 건 내가 잘못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평소에도 꽃에 나 자신을 자주 이입하곤 한다.
이미 병들어가는 꽃을 물속에 억지로 꽂아두는 건,
마치 내가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만으로 생명을 붙잡고 있는 모습 같았다.

그래서 그 꽃에게 잎대를 다듬어주고,

영정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
가장 아름답게, 마지막으로 빛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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