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신해철과 래퍼 칠곡 할매
'나의 장례식은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내가 사랑했던 이들은 어떤 표정일까.
내게 어떤 말을 해주고 갈까.
나는 그들을 두고 잘 떠날 수 있을까.'
10여 년 전, '마왕' 신해철이 떠났다. 장례식장에는 '민물장어의 꿈'이 울려 퍼졌다.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틀게 될 곡이라던 그 음악. 마지막까지 신해철다웠다. 현실이 된다 해도 머나먼 얘기일 것 같았던 그 순간이 너무나 이르게 찾아왔다. 가족은 물론이고 동료들과 팬들은 모두 황망할 따름이었다.
내게도 감정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뮤지션을 잃은 충격과 슬픔도 버거웠지만, 저 사람은 마지막 가는 길마저도 어찌 저리 멋있을 수 있을까... 생각지도 못한 방식에 그저 입만 벙긋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의 장례식을 처음으로 고민해 봤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마지막을 '나답게' 마무리하고 갈 수 있는지를.
최근 또 다른 감정의 해일을 맞이했다.
2024년 10월 16일. 대구 달서구의 한 장례식장이 비트로 가득 채워졌다. 곡소리 대신 힙합이 울려 퍼졌다. 고인을 위한 추모 공연이 펼쳐진 것이다. '수니와 칠공주' 칠곡 할매 래퍼 멤버 중 한 명이었던 서무석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5세였다.
'힙 소울메이트' 할매들은 상복이 아니라 벙거지를 쓰고, 번쩍이는 펜던트를 목에 걸었다. 둠칫- 두둠칫-. 비트에 몸을 맡기며 세상에서 가장 '힙'한 이별 공연을 열었다. 서무석 할머니도 먼 길 떠나기가 두렵지 않으셨으리라.
할머니는 혈액암 투병 사실을 숨기고 활동할 정도로 음악에 열정이 깊으셨다고 한다. 랩을 하실 때는 한없이 아이 같았고, 한없이 행복해하는 모습이셨다고 가족들은 언론을 통해 전했다. 음악이 병마와 싸우는 힘이 된다는데, 자식인들 말릴 수 있었을까. 할매는 마지막까지도 그 어떤 래퍼보다 '힙'했다.
세상에서 인간에게 가장 공평한 것이 '죽음'이라고 한다. 누구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죽기 때문이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공평하다. 죽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라도, 반드시, 똑같은 시간이 주어진다. 그렇게 시간 속을 살아간다. 명사로 하자면, '삶'이다.
아니, 그러고 보니 '죽음'은 '삶'의 연장선상이 아닌가? 나답게 살면 마지막이야말로 나답게 보낼 수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의 장례식장을 상상하지 말고, 오늘을 나답게 보내는 데에 에너지를 써야겠다. ' 묵직한 울림이 가슴속에 번진다. 이게 '힙'한 할매가 남기고 떠난 선물이었구나. 혹시 모른다. 아직 우리가 '마왕' 신해철의 음악 속에 살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흔적이 누군가에게 희망으로 스며들고 있을지도.
그저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겠다. 나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