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야에서든 최고의 자리에 오른 분들을 존경한다.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1등의 자리에 오르는 게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지를, 그 짜릿한 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날들을 참고 인내하고 견뎌냈는지를.
"라면을 1년에 한 번만 먹는다고요?"
'스마일 점퍼' 우상혁 선수는 라면을 참는다고 한다. 그 힘든 일을 한다고? 우상혁 선수의 스승인 육상의 전설 이진택 대한육상연맹 경기력향상위원장을 인터뷰했을 때, 생방송에서 정말 놀라서 소리쳤다.
YTN <뉴스라이더> 캡처 / 2022. 7. 20
운동선수라면 알 것이다.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이다. 우상혁 선수는 먹는 걸 좋아해서 도쿄올림픽 때는 85kg을 찍었다가 다시 감량에 집중했는데, 8개월 만에 17kg을 감량했고, 약 1년이 흘렀을 때는 20kg까지도 체중을 조절했다고 한다.
죽을 만큼 운동하고 죽지 않을 만큼만 먹었다는 소리이다. 그리고 가장 참기 힘들다는 라면을 참았다. 대단한 인내심이 아닐 수 없다.
1위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이 인터뷰가 끝난 뒤, 제작진은 일주일에 한 번씩 라면 먹는 앵커가 어디 있냐며 나를 놀렸다. 덕분에(?) 나의 목표도 수정했다. 라면은 한 달에 한 번만 먹기로. 아무리 생각해도 1년에 한 번만 라면을 먹으며 웃고 살 자신이 도저히 없었다.
라면의 유혹 정도는 가뿐히 넘겨야, 2m36를 넘길 수 있다. (우상혁 개인 최고 기록)
우상혁 선수의 목표는 2m38이다. 그래서 SNS 아이디도 woo_238이다. 머지않은 날에 목표로 한 높이만큼 날아오를 수 있기를 간절히 응원한다.
"자신이 없다. 질 자신이."
2024 파리올림픽 남자 펜싱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리스트 도경동 선수의 자신감 넘치는 소감이다.
펜싱 도경동 선수 / 연합뉴스
도경동 선수는 결승전에서 '특급 조커'로 피스트에 올랐다. 상대팀 헝가리에 30대 29, 1점 차로 쫓기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간 교체 멤버로만 이름을 올렸을 뿐, 한 번도 피스트 위에 오르지 못했던 그였다. 긴장됐을 법도 한데, 오히려 몸이 근질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도경동 선수는 위축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선수 같았다. 첫 출전인데도 베테랑의 향기가 났다. 나비처럼 사뿐히 걸어가 폭풍 같은 검술을 선보였고, 짧은 시간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뒤집혔다. 상대 전적 5:0으로 완벽한 마무리를 선보인 것이다. 상대 선수는 귀신을 본 듯했을 것 같다.
어떻게 그런 경기를 펼칠 수 있었느냐는 우문에 현답이 흘러나왔다.
"자신이 없었어요. 질 자신이."
나는 여태까지 무슨 일을 해도 저런 자신감은 가져본 적이 없다. 노력이 부족했다는 방증이다.
역시 금메달리스트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메달 땄다고 (자만에) 젖어있지 마라. 해 뜨면 마른다."
양궁의 맏형이자 3관왕의 주인공 김우진 선수. 어린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라며 묵직한 명언을 남겼다. 남자 선수로는 사상 첫 올림픽 양궁 3관왕의 위업을 달성한 그는 가을의 벼처럼 차분했고 허리를 숙였다.
1등에 오르기도 힘든 일이지만, 더 힘든 건 정상을 유지하는 일이다. 오름이 있으면 언젠가는 내림도 있겠지만, 정상에 있는 동안만큼은 나태해지거나 방만해지지 말자는 깊은 울림이었다.
양궁 김우진 선수 / 연합뉴스
메달에 영향을 받지 않고,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하는 맏형의 모습에서 도의 경지에 오른 아우라마저 느껴졌다. 이렇게 겸손하고 묵직하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을, 얼마나 깊이 침잠하여 갈고닦았을까.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수준에서는 헤아리기 어려운 경지여서 절로 숙연해졌다.
역시 3관왕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집중이 안 될 때는 한국사 인강을 들었어요."
지난 22년 12월, 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의 고지에 오른 3명 중 한 명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당시 현대청운고 3학년이었던 권하은 학생이었다.
불수능으로 평가받던 해였다. 금메달리스트는 하늘이 내린다는 말이 있는데, 수능 만점이야말로 하늘이 도와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날의 컨디션, 시험이 끝날 때까지의 집중력은 우주의 기운 정도는 모아줘야 수능 만점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우주의 기운도 아무에게나 뻗치는 게 아니었다. 수능 만점생의 공부 비법을 물었는데, '잠은 충분히 잤고, 개념은 교과서로 잡았으며, 이후에 다양한 문제집을 접했다.'는 답변이 나왔다. 듣다 보니 궁금해졌다. '누구나 다 하는 공부법인데, 대체 비결이 뭐야? 혹시 공부가 하기 싫었을 때도 있었나? 집중이 안 될 때는 무엇을 했을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 따로 있었나? 뭔가 말하지 않은 비결이 있는 게 아닐까?'
놀라웠던 대답은 바로 이것이었다. 2022년 12월 9일 자 YTN <뉴스라이더> 방송 중 일부분을 편집하였다.
YTN<뉴스라이더> 중 /2022. 12. 9
'집중이 안 될 때는 한국사 인강(인터넷 강의)을 들었다.'
귀를 의심했다. 한국사 인강도 공부인데, 공부에 집중이 안 될 때 한국사를 공부했다니. 글로 쓰면서도 이해가 안 된다.
끝내 수능만점생의 비법을 이해하지 못한 두 앵커는 자신들이 수능 만점에 실패했던 이유를 간접적으로나마 찾아낼 수 있었다. 그 앵커 중 한 명이 바로 이 글을 쓰는 안보라이며, 나머지 앵커 한 명은 현재 YTN에서 <뉴스퀘어2>를 진행하고 있는 나경철 앵커이다.
공부가 지겹고 힘들 때, 집중이 안 될 때에도 다른 과목을 공부할 정도의 의지와 열정이 있어야 만점의 고지에 오를 수 있다.
나는 지금 목표로 하고 있는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새삼 반성하게 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