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천둥벌거숭이 같은데 벌써 학교에 간다니. 우여곡절 많았던 임신출산 과정을 제외하고서라도 대하소설 열 권은 나올 것 같은 지난 7년여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천 명의 아이에게 천 명의 세상이 있다고 하니,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육아스토리는 부모마다 장편소설을 써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번주부터 본격 시작인가 보다. 아이 친구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언니, 저 방금 원서 냈어요. 떨려요."
오늘부터 입학원서를 접수한 학교가 있다. 두둥. 덩달아 내 가슴도 내려앉았다. 드디어 시작이구나.이내 우리의 대화는 '합격 이후'로 빠르게 흘러갔다.
"언니. 근데 당장 등하교가 문제예요."
"지금 집에서 다니기엔 너무 멀지? 고학년이라면 몰라도 저학년은 혼자 다니기 힘들긴 하지. 이사를 고려하는 건 어때? 학교가 멀면 다들 반 학기 지나면 이사한다더라."
"그렇죠? 그 생각도 안 해본 건 아니에요."
"그 학교 근처에 00 아파트 있어. 학교도 가깝고 학원 다니기에도 교통이 괜찮대."
"찾아보니 위치 좋네요. 그럼 이 집은 전세를 언제 내놔야 하지?"
"어머. 근데 아예 매매를 해야 하는 거 아냐? 거기서 또 바로 중학교를 가야 하잖아?"
"언니, 이미 남편은 갈 중학교까지 정해놨어요. 거기 근처예요. ㅋㅋ"
참고로, 우리 애들은 7살이고, 오늘은 초등학교 입학 원서 접수 첫날이다. 엄마들은 이사와 매매를, 아빠들은 초등 졸업 이후에 갈 중학교까지 정해두었다. 우리는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이다.
원서접수를 시작하지 않은 학교도 있건만 우리의 대화는 한 시간여 동안 이어졌다. 그 사이 우리의 아이들은 이사도 하고, 친구들도 다양하게 사귀었으며, 학원도 수십 군 데 다녔다가 그만두기를 반복하는 시뮬레이션을 거쳤다. 한참을 헤맨 후에야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이제 오늘이 첫날이니까 마지막 날까지 경쟁률을 지켜보자."
"네, 언니. 언니도 원서 쓸 곳 정해뒀죠?"
"응응. 어디로 보내야 할지 정말 걱정이야."
참고로, 우리 아이가 지원할 예정인 사립초등학교는 입학설명회조차 진행되지 않았다. 붙여준 곳도 없는데, 엄마의 상상의 나래는 이미 우주 끝까지 펼쳐졌다. 세 군데 다 합격했다는 착각의 늪에 푹 빠져 어디를 골라서 가야 할지 행복하게 허우적댔다.
"언니, 우리 합격하고 다시 얘기해요. ㅎㅎ"
"그래. 난 아직 시작도 안 했네. 다시 연락하자.ㅋㅋ"
요즘 배춧값도 비싼데 김칫국도 적당히 마시자며 농담으로 마무리했다. 그래도 김칫국은 마셔야 제맛이다. 덕분에 학부형으로서 마음의 준비를 서둘러 시작할 수 있었다.
내가 8살이 되던 해, 낯설고 두툼한 책가방을 멘 내 손을 꽉 움켜쥐고 학교 정문을 들어가던 엄마의 결연한 발걸음을 잊을 수가 없다. 입학이 두려운 건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30여 년 전 우리의 부모님도 그랬겠구나. 조금 더 괜찮은 부모가 되기 위해 아이의 입학을 잘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예비 초등생 부모님들, 아이가 건강하고 원만한 학교 생활을 할 수 있기를 함께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