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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커엄마 Dec 13. 2023

"당신, 그러다 천벌 받아."

트라우마극복기 6

"얘, 아프니? 응? 이게 아프니?"


아주머니는 무섭게 다그쳤습니다. 재활 과정을 거치며 간신히 서고, 간신히 절뚝거리며 걷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보라야, 도 아니고 얘! 쟤! 라고 호명하셨죠. 제 다리를 꾹꾹 누르고 이리 들었다, 휙- 저리 들었다가, 툭- 떨어뜨려 보기도 했습니다. 아팠습니다. 하지만 신음 소리는 크게 못 냈습니다. 아프냐고 무서운 칼눈으로 다그쳐 묻는 아주머니 성화가 무서웠으니까요. 저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습니다.


"윽. 조,조금요..."

"그래? 그럼 어디 한 번 걸어 봐. 어머, 잘 걷네. 됐네, 이제."


아주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결론을 잽싸게 낚아채 버렸습니다.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는 말은 저희 가족의 입에서 나와야 마땅한 문장이었죠. 하지만 적반하장도 유분수였습니다. 


조금밖에 안 아프다니 다행이네, 이제 더 나아질 거야, 생각보다 잘 걷네, 심각하더니 엄살이었나봐. 호호호. 됐네, 됐어, 이제.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는, 신세 한탄이 시작되었습니다. 


애들 아빠는 감옥에 들어가고 집안이 순식간에 풍비박산이 되었다, 우리집 인생도 망했다, 돈을 줄래도 쥐꼬리만큼도 없다, 사업도 망했다, 애 다리 자른다더니, 멀쩡하게 걸으니 얼마나 좋냐, 애 다리 자르지 않은 것만 해도 하늘이 도운 거지, 더이상 줄 돈은 없다. 미안하다. 


결론은, 보상금도, 수술비도 내어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 줄 돈이라니요. 처음부터 한 푼도 못 받았습니다. 저희 집도 빠듯한 살림이었는데, 제 수술비와 병원비로 모두 쓰였습니다. 제가 멀쩡해질수록 집은 가난해져가는 이 아이러니라니. 


가해자의 집은 동네에서 제법 큰 오락실을 운영했습니다. 수술비를 받으러 엄마와 함께 찾아갔을 때도 그 집에는 오락을 하는 아이들로 북적거렸었지요. 현금부자라는 소문은 그저 소문에 불과했나 봅니다. 끝끝내 땡전 한 푼 줄 수 없다며 드러눕는 비정함에, 엄마는 치를 떨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제 손을 꼬옥 잡고서 소리쳤습니다.


"당신, 그러다 천벌 받아. 두고 봐. 우리 딸 살아나서 그냥 봐주는 거야." 


무서운 수술보다도, 끔찍한 물주머니보다도, 지난한 재활 과정보다도 더 매운 맛은 저희 가족을 대하던 가해자 가족의 뻔뻔함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냉대 속에 보상금 한 푼, 수술비 1원도 받지 못한 채 재활을 마쳐야 했습니다. 




저는 인과응보라는 진리를 믿어요. 믿을 수밖에 없어요. 


"그 집 아들 눈이 멀었대. 쯧쯧."


그 집에는 제 또래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눈을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던 건 수 년이 흐른 후였습니다. 학교에서 새총을 만들어 놀다가 돌멩이를 반대로 쐈고, 실명에 가까울 정도로 눈을 크게 다쳤다고 하더군요. 그 뒤로 수술을 했는지, 회복이 되었는지는 알 길은 없었습니다. 사실 관심도 없었어요. 관심을 가진다 한들, 제 다리가 예전처럼 멀쩡해지는 것도 아니고, 그 가족의 불행을 기뻐한다고 한들, 제 다리의 수술자국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매끄러워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부모가 덕이 없어서 자식이 대신 벌을 받네."

어른들이 수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실명만큼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가만히 하늘에 빌었습니다. 제 불행의 끝이 누군가의 불행의 시작이라면, 제가 고통을 견뎌낸 값이 너무나 하찮게 느껴질 것 같았습니다. 죽을 것 같은 고통과 인고의 시간을 버틴 만큼 남은 생은 그 고통만큼의 보상을 받고 싶었습니다. 어차피 과거는 돌이킬 수 없으니, 앞으로 남은 삶 만큼은 너도나도 잘 살자, 빌었습니다.


그 즈음, 기적적으로 다리에 감각이 돌아왔습니다. 사실상 붙어만 있을 뿐 죽은 살갗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특히 발등 쪽은 살을 아무리 꼬집어도 감각이 아예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물건을 떨어뜨렸는데 발등이 너무나 아픈 겁니다!!!!


'아..?

발등이 아프다...?'


눈물이 났습니다. 아파서 눈물이 났고, 이제 드디어 내 발이 정상으로 돌아왔구나, 싶은 안도감에 기뻐서 눈물이 났습니다. 


"엄마! 엄마!!!!!!!!!!!! 

나 발등에 감각이 돌아왔어!!!!!!! 

물건을 떨어뜨렸는데, 너~~~무 아파!!!!!!!!!!

너~~~~~~무 좋아!!!!!!!!"


아파서 너무나 기뻤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너희한테 해가 될까봐 개미 한 마리도 못 죽인다."


그 사건 이후, 엄마는 하늘이 무섭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행여나 자식들에게 해가 될까, 풀 한 포기, 개미 한 마리도 조심스럽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덕을 쌓아야 너희들이 복을 받는다고 하시며 나름대로 당신께서 하실 수 있는 선행을 최대한 베풀고 계세요.




이 글은 6화에 걸친 저의 트라우마 극복기였습니다. 1화에서 언급했던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한없이 쌀쌀맞았던 선생님도 내가 진료실 문을 나서고 난 뒤엔 얼굴을 쥐어싸며 엄청난 고뇌를 하셨겠구나.

거친 드레싱을 했던 선생님도 사실은 이제 막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초보 의사선생님이었겠구나.

내가 정신줄을 놓아버린 수술대 위에서는 저렇게 치열한 삶이 펼쳐졌었겠구나.

몸이 작고 여린 7살 아이를 살려보겠다고 저렇게 많은 선생님들이 고군분투했었겠구나.

어느 부위의 살을 떼어 피부 이식을 하는 게 가장 베스트일지, 어느 시점에 재수술을 하는 게 최선일지, 몇 ml의 물주머니를 넣어야 부작용 없이 마무리될지, 숱한 토론과 고민이 있었겠구나.

그리고,

깁스를 제거하고 재활실에서 뗀 첫 발에 환호하던 선생님들의 모습이, 

두 번째 발을 내딪지 못해 축축한 매트 위에 주저앉아 울던 아이를 안아 일으키던 선생님의 따뜻한 품이 떠올랐습니다. 


 드라마 속에 어린 시절의 제 병원생활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렇게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생활이 드라마를 통해 치유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아직은 병원에 들어서면 숨이 턱- 막히고, 때로는 손발이 덜덜 떨리기도 합니다만, 정말 많이 좋아졌습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치유의 시간을 선물해 줄 것만 같습니다. 저와, 지금도 사고와 재활로 고통스러울 평범한 누군가에게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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