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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킴 Dec 13. 2024

좋은 '리더'란: 정치 혼란 속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

자아성찰, 메타인지의 필요성

안타깝게도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미국과 나의 고국인 한국은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이다 (미국은 아직 빙산의 일각일 뿐... 이제 곧 시작이지만...) 문화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두 나라의 정치정변은 다르지만 그럼에도 비슷한 점이 있다면 극도록 양분화된 집단의 맞대결과 그러한 집단을 이끄는 지도자들의 부족함이 아닐까 싶다.

지도자라는 건 단일 대통령, CEO, 큰 집단의 최고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2명 이상이 모인 집합체라면 다 적용된다. 집안의 가장이라면, 아이가 있는 엄마나 아빠라면, 동생이 있다면, 후배가 있다면, 가르치는 학생이 있다면, 직장에서 나를 따르는 사람이 있다면 등등 우리 모두는 인생을 살면서 스스로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한 번쯤은 '리더'로 살아간다.

그렇다면 "좋은" 지도자, '좋은' 리더란 무엇인가?

속해있는 공동체에서 리더라는 자리에 있었더라면 혹은 현재 있다면 당연히 그 사람은 아마 평균이상의 능력, 문제해결력, 지능, 카리스마, 목표지향적, 비저너리 (visionary)등의 보편적인 리더의 자질을 갖고 있을 테다. 하지만 모든 리더가 좋은 리더가 될 수 없듯이, 리더라는 보편적인 자질로는 충분치 않다.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보통의 리더를 뛰어넘는 좋은 지도자란 타인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다. 특히 나와 반대되는 신념 및 생각일수록 말이다. 사실 이건 모순적일 수 있다. 자기의 신념과 자아가 확고한 사람일수록 리더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리더라면 필요할 때 자신의 자아 및 자존심을(ego) 잠시라도 내려놓고 타인의 말을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



왜 타인의 말에 귀 기울어야 하는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화된 사회는 타인과의 교류 없이 절대적으로 개인이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체제가 구축되어 있다. 우리는 각자 속해있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타인과 함께 공존해야 한다.

최고경영자로서 회사의 방향성 및 전략을 나 혼자서 아무리 기가 막히게 만들어도 회사 의장과 보드멤버들, 회사 주주들, 회사 일원들이 동의하지 않고 따르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아이의 양육에 대한 결정권은 나 혼자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 나의 배우자에게도 있다. 아이는 나 혼자 키우는 게 아니다. 부부라는 공동체의 숙명이다.

크던 작던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든 간에 2명 이상이 모인 집합체는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계속해서 움직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기차와 같다.


대통령 및 국회에 있는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국가는 더 많은 레이어가 겹겹이 엉키고 설킨 복잡한 차원의 커뮤니티이다. 대통령 혼자서 나라를 이끌 수 없다. 국회에서 일하는 여러 당들의 대표들과 정치인들과, 나라를 운영하기 위해 존재하는 여러 부문의 리더들과 함께 일을 수행하고 움직여야 한다.



우선 우리는 주어진 '리더'라는 타이틀, 직위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대통령의 목적, CEO의 목적, 어린아이를 가진 부모의 목적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나라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고

CEO는 회사를 망하지 않게 경영을 해야 하고

부모는 아이가 건강하고 올바른 사회인으로 자랄 수 있게 양육해야 한다.  


아이양육의 방향성에 대해 입장 차이가 있다면 부부는 다툴 수 있다. 부부는 무촌이고 일심동체라 하더라도 결국 서로 피 한 방울 안 섞인 다른 존재 아닌가. 생각하는 게 일치할 수 없다. 그러나 백날 싸우기만 하고 아이를 내팽개치는 일은 없다. 건강한 부부라면 생각이 다르더라도 서로의 다른 의견을 인정하고 수용한다. 함께 합의점을 찾아 아이에게 모든 최선을 다한다. 왜? 부모는 아이를 잘 키우려는 공통된 목적을 갖고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이유가 확고하게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념이 다르더라도 민주주의를 중시하고 국가의 안보, 경제, 발전, 시민들의 삶의 질, 타국가들과의 상호관계 등등 나라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서 모든 정치인들이 동의한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정치인이 본인의 모든 힘과 시간을 써서 자기가 속한 나라를 망하게 만들겠는가?


이러한 목적성을 기반으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에 대해서 서로 다른 당이 다투고 싸우는 건 당연하다.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정치적 이념은 존재하지 않는 다. 어떠한 사안에서는 민주당 정책이 가장 옳은 방법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사안에서는 공화당 정책이 가장 적합할 수도 있다. 흑백논리로 절대적으로 민주당이 옳고, 혹은 공화당이 옳다는 건 존재하지 않는 다.  

같은 방향성과 같은 테두리 안에 있다면 다른 정책을 내놓더라도 서로 협력하고 협상하며 나라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민주주의아래 다양한 정치 이념이 존재하는 건 매우 건강한 일이며, 서로 다른 견해를 신사적이며 이성적으로 나누며 더 좋은 방안을 찾고 수행하는 게 건강한 나라이며 앞으로 발전할 수 있는 나라이다. <자유론, On Liberty>에서 존 스튜어트 밀 (JS Mill)이 말했듯이, 다양한 정치 이념과 사상의 공존은 사회의 발전과 개인의 자유를 추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도덕적 원칙(Moral Principles)과 공리주의(Utilitarianism)를 주장한 밀(JS Mill)과 다르게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권력의 운영방식을 지침한 마키아벨리(Machiavelli)도 다양한 집단의 의견들이 모여 균형을 만들어야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정치 체제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마우리지오 비롤리 (Maurizio Viroli)의 책 <공화주의, Republicanism>에 언급되어 있다.  

나의 입장만 내세우며 싸우기만 한다면 그건 정치인으로서의 목적, 나라를 대표하는 리더로서의 목적성을 잃은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나라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데, 나와의 정치 이념이 다르더라도, 내가 생각하지 못한 혹은 나의 방법보다 더 나은 방법이 존재한다면 그걸 마저해 야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내가 맞고 네가 틀리다"에서 나온다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의견에 수긍하는 측근들 속에 힘입어 확즉편향(confirmation bias)으로 이어가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확신으로 가득해지고 대립된 주장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게 된다. 같은 생각과 같은 관점만 고수하는 집단은 물이 고여질 수밖에 없고 결국 썩은 물이 된다. 하나의 특정 집단에게 권력이 집중되면, 그들의 확신은 절대적 신념이 되고, 그러한 신념은 독재주의로 변질되어 개인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으며 나라 전체가 퇴보할 수 있다.


그렇기에 타인의 말을 귀 기울이기 위한 절대적인 전제조건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라는 자기 회의감(self doubt)이다. 


"팩트체크"라는 표현이 많이 사용되지만 이 세상에 절대적인 팩트는 존재하지 않는 다,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팩트 빼고는. 이외에 모든 것들은 주관적이다.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건 존재하지 않는 다.

오감으로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주관적이다. 내 눈에는 분명히 빨간색으로 보이지만, 색맹인 사람에게는 같은 사물이 검은색으로 보인다.

개인 한 명이 똑같은 사물을 바라볼 때도 어떤 시각에서 보냐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 바다를 멀리서 바라볼 때는 분명 파란색인데 바다의 물을 유리잔으로 뜨면 그저 투명한 색의 물이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청각이 서서히 손실되고 들을 수 있는 주파수가 낮아진다. 어린아이들에게는 들리는 높은 헤르츠의 소음이 20대가 되면 들리지 않는 다. 그렇다면 그 소음의 존재여부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나의 두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고 들을 수 있는 게 다가 아니며 후각, 미각 등 모든 것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꽤나 큰 착각 속에서 매일매일 살아간다.


심지어 시간마저 절대적이지 않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며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은 동일하다 믿었으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theory of relativity)와 양자역학 (quantum mechanics)으로 통해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냈다. 시간은 그저 물리적인 현상 (time is a physical dimension) 일뿐이다. 중력의 힘 (gravitational force) 혹은 빛의 속도만큼의 속력 (Twin paradox)으로 움직일 경우 시간은 변형된다 (time dilation). 즉 시간 또한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쌍둥이 역설 twin paradox: 쌍둥이 중 한 명은 우주비행사로 빛의 속도(speed of light)와 근접한 속력으로 로켓을 타고, 나머지 한 명은 지구에 남을 경우, 로켓을 타고 돌아온 우주비행사 쌍둥이는 지구에 남겨진 쌍둥이에 비해 더 젊다.

영화 <인터스텔라, Interstellar>에서 쿠퍼가 밀러 행성에서 보내는 한 시간이 지구상에선 7년이 된다. 그 이유는 밀러 행성은 가르강튀아(Gargantua)라는 무지막지하게 큰 블랙홀이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규모의 블랙홀인 만큼 어마어마한 중력의 힘을 밀러 행성에 가하게 됨으로써 시간은 변형되고 왜곡된다.

 

아니 정치얘기에서 왜 엉뚱하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인터스텔라를 얘기하냐고 운운할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이 절대적이지 않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세상에 맞는 답은 존재하지 않는 다. 불과 백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중력의 힘이 시간을 변형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으며 뉴톤의 물리학 (classical physics)은 변하지 않는 불변의 법칙이라 믿었다.


정치 이념도 마찬가지이다. 오롯이 하나의 정치 이념이 - 민주당이 혹은 공화당이 혹은 다른 야당이 - 절대적으로 맞지 않다는 뜻이다. 결국 정치 이념은 인간이 만들어낸 사상이고, 우리 인간이 하는 생각, 갖고 있는 주장 및 신념도 절대적이지 않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의심해야 한다.

과연 내 생각이 맞는 것인지.

과연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게 정말 맞는 것인지.

 

나의 생각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즉 최대한 객관적으로 나의 생각을 분석하는 게 바로 자아성찰, 메타인지이다.그리고 이러한 메타인지를 그 누구보다 해야 하는 게 바로 지도자들이다. 리더십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더 큰 책임과 사명을 갖고 있는 리더일수록 자기의 생각과 신념을 지속적으로 성찰하며 객관화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한 자아성찰을 통해 "내가 틀릴 수도 있다"라는 걸 인지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나와 반대의 생각과 이념을 가진 사람의 말을 진심으로 귀 기울일 수 있다.

메타인지를 통해 덜 감정적인 태도로 보다 건강한 토론을 통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대안 및 정책을 가져올 수 있다. 개인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나는 틀리지 않고 항상 옳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정말 안타깝게도 그런 생각을 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47번째 미국 대통령 되었다: 도널드 트럼프.


스티브 잡스가 메타인지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더라면 이 세상에 아이폰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잡스는 처음에 핸드폰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컴퓨터와 노트북 계발 생각뿐이었다. 애플에서 일하던 그의 측근들이 몇 개월을 거쳐 스티브 잡스에게 혁신적인 스마트폰 (당시에는 crackberry - 마약베리-라는 단어가 나올 정도로 블랙베리가 열풍이었다)을 만드는 것이 앞으로 애플이라는 회사의 미래이자 애플의 핵심가치와 일치한다며 그를 집요하게 설득했다.

자기 확신과 자기의 직감을 그 누구보다 강하게 믿었던 잡스는 왠 얼어 죽을 핸드폰이라며 절대 안 된다고 했지만 다행히 그는 메타인지 능력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 다시 객관적으로 자기의 생각을 검토한 뒤 본인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인정했고 그 프로젝트를 승인하게 되었다. 그렇게 애플은 21세기를 넘어 인류역사에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인 스마트폰의 혁명을 이끌어냈다.

스티브 잡스의 측근들이 그에 대해 한 여러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말한 그의 가장 멋진 특성은 객관적으로 자신의 사고 및 생각을 분석하여 자기가 틀렸다는 걸 인정한다는 거였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자아성찰을 하고 편집증을 갖으라는게 아니다. 과도한 자기 의심으로 낳은 자의식 과잉은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으로 오히려 더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적당한 선에서 필요할 때 메타인지능력을 나의 툴박스(tool box)에서 꺼내 쓸 줄 알아야 한다.


언뜻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나의 소신은 지키되 메타인지를 수행하고 갈고닦으며 나의 툴박스에 계속 보관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좋은' 지도자가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 사회에 우리가 우러러볼 수 있는 '좋은' 지도자가 드문 거 일지도 모른다.



뉴스를 보며 부족한 지도자들을 향해 욕을 하고, 거리에 나서서 평화적 시위를 하고 난 뒤 땡 하고 끝나는 게 아니다. 우리가 현재 속해있는 공동체 안에서 과연 우리는 '좋은' 지도자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의 부족함과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걸 인지하여 필요할 땐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수용할 줄 알고 그들과 협력하여 크던 작던 지금 현재 내가 속해있는 커뮤니티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멋진 리더가 되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그럼 우리 다음세대가 그런 우리를 보며 이 사회에 우러러볼 수 있는 좋은 리더가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게 우리가 인류의 일원으로서 해야 하는 최소한의 의무(duty)가 아닐까 생각한다.






달리기를 뛰며 들었던 현재 돌아가는 정치 관련 및 좋은 지도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들을 샤워하면서 다시 곱씹어 보았다.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기록하고 싶어 머릿속에서 사라지기 전에 얼른 애플워치에 녹음하려 했는데 하필 애플워치를 안 끼고 있었다 (운동하고 나서 샤워할 때 애플워치를 끼는 습관이 있는 데 역시 머피의 법칙인가... 꼭 필요할 때 없는...) 급하게 샤워를 마치고 부랴부랴 나의 생각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정치학공부라고는 대학교 때 정치학입문용 수업(심지어 동양과 서양 정치학의 차이에 관한 수업이었다)이고 정치 관련 서적이라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Aristotle's Politics>,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JS Mill's On Liberty>, 그리고 현재 읽고 있는 <마우리지오 비롤리의 공화주의, Maurizio Viroli's Republicanism>뿐이라 정치적 지식과 견해가 짧아 다소 글이 엉성할 수도 있기에, 얕은 분석 및 개인적인 생각의 정리라고 감안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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