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원 Sep 02. 2023

머리채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


두 여자가 서로 상대의 머리채를 잡은 체 싸우고 있었다. 주인을 구분하기 힘든 네 개의 손이 헝클어진 두 머리통을 이리저리 마구 흔들어댔다. 산발(散髮)이 요동칠 때마다 앙칼진 비명소리와 거친 욕설이 오갔다. 머리채를 움켜잡은 손아귀는 한번 잡은 먹잇감을 절대 놓지 않으려는 사자의 이빨을 연상시켰다. 한참을 그렇게 뒤엉켜 업치락 뒤치락하던 두 사람의 난투극은 싸움 소리를 듣고 달려온 지인들의 개입으로 간신히 끝이 났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머리채 싸움 장면이다. 보기 드문 여자들의 난투극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서로의 머리채를 낚아채며 기세등등하게 시작한 싸움은 시간이 지나면서 지루한 소모전으로 바뀌었. 양 쪽 모두 핵심 전력인 두 손이 상대의 머리채에 꽁꽁 묶여 있한, 승패를 결정지을 방은 어려워 보였다. 


나는 머리채 싸움 장면을 볼 때마다 궁금증이 일어났다. 만약,  말리지 않는다면 싸움은 어떻게 끝이 날?  사람 모두 제 풀에 쓰러질 때까지 머리채를 계속 붙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패배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무승부에 자위하면서.


비슷한 두 힘이 맞붙으면 대치 국면이 길어진다. 씨름, 줄다리기, 소싸움 등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쪽 모두 계속 같은 방향으로, 같은 종류의 힘을 더 많이 쏟아 부려고 한다. 관성 때문이다.


싸움에 변화를 주려한쪽 샅바에 갑자기 힘을 빼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씨름 선수에게 배워야 한다.

먼저, 머리채를 잡고 있는  손 중 한 손을 놓아 버린다. 순간 상대는 '이게 뭐지?' 라며 움찍 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 자유로워진 한 손을 이용하여 재빨리 상대의 얼굴을 힘껏 가격한다. 주변에 있는 물건을 집어서 상대의 머리를 내리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손을 상대의 머리채에서 먼저 빼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패배를 각오하지 않으면,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목숨이 걸린 상황이라면 엄두조차 내기 어려울 것이다.


오징어 게임 줄다리기 관문에서 기훈(이정재)이 속한 팀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노인과 여성이 포함된 기훈 팀은 최약체다. 상대 팀은 건장한 남성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패배하는 팀은 전원이 바닥으로 떨어져 죽는다. 죽음을 목전에 둔 위기 상황에서 실패한 천재 상우가 한 마디 던진다. "내가 사인을 주면 앞으로 세 발자국만 갔다가 다시 당긴다" 결과는 기훈 팀의 승리다.


'세 발자국'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줄을 계속 당겼더라면 기훈 팀은 바닥으로 떨어져 죽었을 것이다.



지금 당신은 누구의(무엇의) 머리채를 잡고 있는가? 그리고, 누구한테(무엇에) 머리채를 잡히고 살아가는가?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 많은 머리채를 잡고, 잡힌 체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춘기 아이와, 성격이 안 맞는 배우자와, 괴팍하고 변덕스러운 꼰대 상사와, 비교하고 싶은 주변과, 아무런 잘못이 없는 중립의 세상과, 그리고, 착각과 무지에 빠져 허욱적대는 나 자신과.


승산이 없는 싸움, 잃는 게 더 많은 승리, 목적과 방향을 잃은 최선에 매달리고 집착하며 인생을 낭비한다. 붙잡은 머리채를 놓으려니 나만 손해를 보는 것 같고, 패배를 인정해야 하는 현실이 두렵다. 그동안 들어간 비용과 시간을 생각하면 두 손과 온몸에 힘이 더 들어간다.


이럴 때는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머리채를 잡고 있던 한 손을 슬쩍 내려놓아 보자. 그리고는 자유로워진 손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머리채를 잡는 것 말고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을 것이다. 자신의 머리통을 한 대 세게 쥐어박아 정신이 번쩍 들게 할 수도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관계 미니멀라이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