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의 문수 바꾸지 않아도 되던 날부터
하나 둘씩 내 곁을 떠나간 친구여
하나 둘씩 내 곁을 떠나간 꿈이여
이재무의 시 <신발>이다. 지난날을 회상하는 시인의 마음에는 만감이 교차한다. 추억 속 옛 친구들과 끝내 펼치지 못한 젊은 날의 푸른 꿈들! 그리움과 아쉬움, 회한과 애석함을 짧은 시구에 꾹꾹 눌러 담았다. 몇 글자 더 보태면 누르고 있던 감정이 터져 나올까 시인은 단 세 문장으로 시를 마무리했다.
신발의 문수가 고정되던 무렵 나는 고향을 떠나 타관살이를 시작했다. 물리적 거리는 어김없이 마음의 거리를 만들었고, 고향 친구들을 떠나보낸 빈자리는 곧 새로운 친구들로 채워졌다. 하지만, 이들도 오랫동안 내 곁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찻장 밖 풍경처럼 조금 가까워졌다 싶으면 이내 멀리 사라져 버리곤 했다. 그리고는 언제부터인가 친구들이 떠난 자리는 더 이상 새로운 친구들로 채워지지 않는 체 덩그러니 비어 있다.
내 곁은 떠나버린 것은 친구와 꿈만은 아니었다. '내 편'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친구는 어린 시절 부모형제 다음으로 내 편이 되어 준 존재였다. 친구는 내 편의 다른 이름이었다. 함께 떠들고 놀던 친구, 내 얘기에 고개를 끄덕여주던 내 편이 지금 내 곁에 없으니 더 그립고 아쉬운 것이다.
하지만, 친구가 곧 내 편이라는 생각은 때로는 대인관계에 걸림돌이 된다. 특히, 직장생활에서 내 편 만들기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친구 정도의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면 내 편 만들기를 지레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직장생활에서 내 편은 반드시 절친한 친구일 필요는 없다. 만들기 까다로운 친구보다는 상부상조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내 편이 훨씬 더 필요한 존재일 것이다.
물론, 이해관계가 곧 대인관계가 되는 세상에서 내 편도 그렇게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필요할 때는 잠깐 친한 척하다가도 조금만 심사가 틀리면 니 편 내 편으로 편을 갈라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한 조직생활에서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내 편을 만들어야 하고, 또 누군가의 편이 되어야 한다.
내 편은 친구처럼 '사귀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이 차이를 이해하게 되면 내 편을 만드는 과정과 유지보수에 도움이 될 것이다. 친구는 지역, 나이, 학교 등 이미 존재하는 외부 환경과 조건에 오래 노출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관계다. 그렇다 보니 환경과 조건이 바뀌면 그 끈끈한 관계도 덩달아 옅어져 버린다.
반면, 내 편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외부의 조건에 자신을 맞춘다. 필요에 따라 관계의 정도와 세기를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여지가 있다. 또한, 친구 관계처럼 감정 개입에 따른 부작용과 불편함이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내 편은 서로 원하는 것을 얻도록 도와주는 협력자이자, 동시에 나를 자극하고 긴장시키는 경쟁자가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순도 높은 내 편을 많이 확보하느냐이다. 그저 몇 명의 술친구가 아니라 생존과 성공에 필요한 만큼의 내 편을 말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남들과 다른 특출한 능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 잘났다고 설쳐대는 무리들 속에서 나를 지지하는 우호 세력을 만든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이와 같이 내가 가진 조건과 한계를 자각할 수 있다면 다음 단계에 진입하기 위한 암호가 쉽게 풀린다. 바로 내가 가진 것을 상대에게 먼저 베풀어야 한다는 깨달음이다. 내가 가진 것은 시간, 돈, 정보, 성의, 관심 등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다.
밥과 술을 사고, SNS를 하고, 경조사를 챙기고, 내가 아는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고, 작은 선물로라도 성의를 표시하는 것이다. 상황과 상대에 따라 시의적절하게 사용한다면 즉각적이고 확실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어쩌면 투자 대비 더 많은 수익을, 나아가 상대의 마음까지 얻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편이란 존재는 벽에 박힌 못이 아니다. 끊임없이 미끌거리며 온 연못을 요리조리 헤엄쳐 다니는 미꾸라지와 같다. 언제든 나보다 더 많이 베푸는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이고, 이해관계에 따라 바람의 방향은 수시로 바뀐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내 편에서 이탈한 사람을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칫 나와 경쟁관계에 있는 편에 붙어 나에 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적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관계중심 사회에서는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으면 양쪽 모두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떠나는 사람을 잡지 못한다면 어떻게든 중립 상태에 머물러 있도록 아름다운 이별을 해야 한다. 등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떠난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 약간의 비용을 투자해 사후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
최근의 직장문화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멀티 세대의 공존이다. 예전에는 나이 차이에 따라 신구 두 세대만 있었다면, 지금은 다양한 특징과 개성을 지닌 여러 세대들이 존재한다. 나 같은 '나때 세대'의 눈에는 젊은 MZ세대가 화성인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기성세대에 물들지 않는 소신과 당당함은 멋있고 부럽다.
다만, 대인관계에 있어서는 의외로 혼란을 겪으며 힘들어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혼자여도 늘 자신감 넘치는 겉모습과는 달리 속으로는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떠나버린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과 직장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들지 못하는 현실에 답답해한다.
내 편을 만들려니 왠지 MZ세대 답지 않고 기성세대의 구습에 굴복하는 것 같아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막상 용기를 내어 내 편을 만들려고 해도 화성에서 친구를 사귈 때 써먹던 방법에만 집착한다. 뜻대로 내 편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직장생활이 체질에 안 맞다며 투덜거린다.
명심해야 될 것은 친구가 아니라 '내 편'이다. 받으려고 하지 말고 내가 먼저 다가가고, 내가 상대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직장에서 오래 버텨야 할 이유와 성공해야 할 목적이 분명하다면 말이다.
오래전에 떠나버린 친구는 웬만해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 더 좁히면 내 편들 중에 진짜 친구가 있을지도 모른다. 없으면 또 어떤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사랑을 주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바꿔보면 어떨까?
집 나간 며느리도 발길을 돌린다는 전어의 계절이다. 내 지갑의 크기는 얇아졌지만, 전어구이에 소주 한잔 정도는 베풀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내 곁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내 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