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원 Mar 26. 2023

세 번 입사하고 두 번 퇴사한 직장인 이야기


지금까지 나는 세 번의 입사와 두 번의 퇴사를 경험했다.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 5년, 두 번째 회사에서 3년을 각각 보내고, 현재 회사에서는 19년째 다니고 있다. 


내가 사회로 진출하던 당시에는 입사 면접에 도움이 될만한 가이드북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저 취업에 성공한 선배들의 경험담을 참고할 수밖에 없었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선배들의 조언은 의외로 간단했다. "회사에 뼈를 묻겠다고 해라", 면접에서 이런 멘트가 통하던 시절이었다. 표현을 조금 달리했을 뿐, 면접관들 앞에서 내가 했던 각오는 선배들의 조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입사 후에도 한동안 면접 때의 다짐과 긴장을 유지하고 살았다. 낯설고 서툴렀지만 회사의 기준과 조건에 나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업무든 대인관계든 조금이라도 삐걱거리면 나 자신을 먼저 의심하며 자세를 낮추었다. 


하지만, 나한테 어울리지 않은 포장된 모습은 어차피 노래동안 지키기 어려웠다. 회사생활에 제법 익숙해질 무렵부터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씩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미건조하게 반복되는 회사업무가 지겨워졌고, 상사의 끊임없는 업무지시와 지적에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한동안 안으로 향해 있던 관점의 방향이 바뀌면서 나한테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려고 할수록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나고 회사에 대한 불만은 점점 커져갔다.

힘겹버티다가 결국 입사한 지 5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사표는 하루 만에 수리되었고, 나의 퇴사를 적극적으로 만류하는 사람은 없었다.


두 번째 회사에서도 첫 면접 때와 비슷한 방법을 사용했는데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외부로 향해 있던 생각의 방향시 내 안으로 돌려놓은 덕분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의 기준점이 다시 외부로 향하기 시작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불만과 부족의 원인을 밖에서만 찾으려고 했다. 회사는 가해자, 나는 피해자라는 등식이 서서히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결국 회사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3년 만에 사표를 던지고 말았다. 성급했던 결정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퇴사와 동시에 5천여만 원의 배상 폭탄을 맞았다. 해외 연수에 따르는 의무 근무와 관련한 조항을 꼼꼼하게 읽지 않은 나의 불찰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5천만 원은 내게 상당히 큰 금액이었다.


두 번째 퇴사도 입사 절차보다 훨씬 신속하게 처리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을 수는 없겠지만, 사표가 빠르게 처리된다는 것은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인재 아니라는 의미다. 어쩌면 대표이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흐뭇한 표정으로 사직서를 수리할 것이다. 정상적인 회사라면 인재가 퇴사를 결심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연봉 인상이든 진급이든, 어떤 식으로든 인재를 붙잡아 두려고 한다.


세 번째 회사도 무난하게 면접을 치르면서 입사에 성공했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과거 두 회사의 근무 경력이 오히려 합격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양한 경험 덕분에 동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면서 생각보다 빠르게 회사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다. 동료들은 내가 이전 회사에서 어떤 표정으로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세 번의 입사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과거 내가 몸담았던 회사가 훌륭한 회사로 남아 있어야 나의 경력도 빛이 난다는 것이다. 나와 악연이었던 회사가 망해버리면 속이야 시원할지 모르지만, 형편없는 회사에 다녔다는 오명은 계속 따라다니게 된다.


지금 회사에서 장기간 버틸 수 있는 요인은 회사의 조건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하나 더 꼽자면 회사를 두 번 옮기면서 경험한 작은 교훈 덕분이다.  안에 부정적인 감정들이 생기는 원인을 외부에서만 찾는 것은 불행을 자초하는 짓이다. 

나와 세상 사이에는 경계선이 하나 놓여 있다. 어느 기준으로 보든 안과 밖은 서로 정반대가 된다. 관점이 어느 한쪽으로 쏠리게 되면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가 없다. 어리석은 판단 뒤에는 반드시 손해가 따라오마련이다.


나는 멀지 않은 미래에 또 한 번의 퇴사를 할 예정이다. 퇴사 후에는 내 취향에 맞게 인테리어 된 서재로 출근하는 것이 꿈이다. 부디  꿈이 마지막 취업이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전공 종목은 여전히 단체 경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