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성향은 타고난 기질과 성장과정의 영향을 받으며 대부분 유년 시절에 형성이 된다. 나이가 들면서 삶에 대한 자각과 성찰, 뇌세포의 노화 등으로 조금씩 바뀌어 가기는 하지만 기본 성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수 십 년 만에 만난 어릴 적 친구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얼굴은 몰라보게 바뀌었는데 성격은 예전 그대로여서 놀랐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인간관계 성향 또한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시절 나와 친했던 친구들의 성향이나 50대인 지금 나와 가까운 지인들의 성향은 여러 면에서 많이 닮아 있다. 세월이 흘러도 유유상종의 울타리는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는 모양이다.
다만, 나이에 대한 성향은 스무 살 무렵부터 비로소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대인관계의 범위가 대부분 같은 또래 학교 친구들에 한정되어 있다. 그러다가 대학에 진학하거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과 접촉하게 된다.
이때부터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나이대의 구분이 뚜렷해진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선배)과 주로 어울리는 유형이 있는가 하면, 이와 반대로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후배)과 교류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또 다른 부류는 어린 시절의 습관대로 지인의 대부분이 동갑(친구) 위주로 채워져 있다.
직장은 나이 성향에 따른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이다.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섞여 일을 하다 보니 갖가지 마찰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이때 상대의 나이 성향을 제대로 파악한다면 갈등을 줄이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선배 비중이 높은 사람은 대체로 안정을 추구하는 보수적(정치적 개념과 별개) 성향의 소유자이다. 위계질서에 잘 순응하는 성격으로 조직생활에 적응이 빠른 편이다. 출세에 대한 열망이 강하며 보스보다는 참모 역할이 잘 어울린다. 다만, 대인관계가 계산적이라는 비판을 자주 듣는다.
이에 반해 후배 비중이 높은 사람은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고 싶어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상대의 실수와 단점에 관대하고 남에게 잘 베푸는 호방한 스타일이다. 리더십이 강하고 소통에 능숙하다. 다만, 자기주장이 강하고 타협에는 약한 면을 가지고 있다.
한편, 친구의 비중이 높은 사람은 격식과 통제를 싫어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의리를 중요시하고 사교성이 뛰어나다. 문제 제기는 잘하는데 남들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는 성향은 단점이다. 친구들에게는 친근하고 소탈하게 보이는 모습이 다른 나이대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소 무례하게 보일 수도 있다.
상사가 후배지향형이라면 업무 하기는 편하겠지만 출세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만약 선배지향형이라면 하루하루가 아주 피곤할 것이다. 부하직원이 후배지향형이거나 친구지향형이라면 다루기가 쉽지 않다. 이들의 특징 중 하나는 권위(조직과 상사)에 대한 반항심이 강하다는 것이다. 만약 선배지향형이라면 예스맨이 아닌지 잘 살펴봐야 한다. 한편, 주변에 친구지향형이 많다면 위로가 필요할 때 술자리 맞은편에 늘 누군가가 앉아 있을 것이다.
세 가지 유형 중에서 친구지향형이 조직생활에 가장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유형이다. 친구지향형은 상대적으로 주변에 지인들이 적은 편이다. 몇 안 되는 입사동기들이나 학창 시절의 옛 친구들 위주로만 교류를 한다. 현실은 직장 동료들의 대부분이 선배들과 후배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잘 버티려면 이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후배들에게 인기가 많은 사람은 직장에서 출세하기 어렵다는 속설이 있다. 문제는 '후배들에게만' 인기가 있는 경우이다. 조직생활을 하는 한 선배(상사)는 모든 면에서 중요한 사람들이다. 이들과 전략적인 관계를 잘 만들어 놓아야 여러 모로 유리하다.
선배만 잘 챙기는 유형은 대체로 인기가 없는 편이다. 원하는 것을 누구보다도 빨리 얻겠지만 외로움과 주변의 험담은 견디며 살아야 한다. 유념해야 될 것은 자신을 챙겨주던 선배들이 언젠가 조직을 떠난다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고 싶다면 싹수가 보이는 후배들과는 미리 친분을 쌓아 두어야 한다.
얼마 전 오랜만에 나의 인맥 리스트를 작성해 보았다. 친구와 선배의 비중은 엇비슷한데 후배들의 숫자가 얼마 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성인이 된 이후로 내 주변에는 늘 선배들이 많았다. 젊었을 때는 선배들을 만나면 왠지 마음이 푸근했다. 실수를 하더라도 너그럽게 용서해 주었고, 나의 미숙함이 선배들 앞에서 큰 흠이 되지 않았다. 또한 선배들은 귀가 솔깃해질 만한 경험과 정보를 들려주었다. 지금은 문화가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술값 계산은 선배들의 자존심이었다. 선배들과 가깝게 지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반면에 후배들과의 교류는 활발한 편이 아니었다.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경제적인 부담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또한, 선배들의 노련함과 원숙함에 비해 후배들의 언행은 어딘가 모르게 투박하고 유치하게 느껴졌다.
자평해 보면 나의 성향은 친구 혹은 선배지향형에 가깝다. 그런데도 다른 선배지향형 사람들처럼 출세를 하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선배를 선배로 대하지 않고 그저 편한 친구처럼 대했기 때문이다.
결혼상대는 나와 반대의 성향을 선택했다. 연상의 여인이 이상형이었지만 아내는 나보다 여섯 살 아래다. 대신 선배지향형인 아내는 자신의 성향대로 나이 차이가 나는 남편을 만났다. 궁합이 맞지 않을 것 같은 선배지향형끼리의 조합이지만, 아내도 나와 비슷한 성향(선배를 친구로 대하는)을 하나 더 가지고 있다. 대선배인 남편을 친구처럼 대해준 덕분에 이제는 두 사람 모두 친구지향형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대신 직장에서는 후배지향형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부쩍 많이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