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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Aug 15. 2024

퇴직 후 山으로 들어갑니다

노후생활


퇴직 후 어떻게 살 것인가?


화두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을 했다. 나를 둘러싼 환경과 예측 가능한 미래를 생각하면 '어떻게'란 단어가 늘 마음에 걸렸다. 직장 업무를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은 흔해빠진 것이어서 퇴직 후에는 별 쓸모가 없어 보였다. 직장 경력의 유통기한은 퇴직 시점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것이다.


노후자금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고민을 더 깊게 만들었다. 퇴직 후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세계 여행을 다니려면 꽤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봉급 생활자의 저축과 연금 만으로는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퇴직 후를 생각하 일할 의욕이 사라지고 걱정과 불안이 밀려오곤 했다.


그때부터 퇴직자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유심히 관찰하 시작했다. 퇴직 한 선배들을 만나 경험을 듣고 조언을 구했다. 특히, 선배들이 어떤 일을 후회하고 어떤 일에 행복해하는지 가슴 깊이 새겨 들었다. 그리고, 나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나의 성향과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퇴직  가용할 수 있는 자금력.. 혼술과 불면의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pinterest에서 퍼온 사진)


얼마 전부터 직장 동료들이나 친구들을 만나면 주로 노후준비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다른 얘기를 하다가도 어느 순간 화제가 바뀌어 버린. 다들 50을 넘기고도 직장에 남아있다는 에 감사해하면서도 얼마 뒤에 닥칠 퇴직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막막해지는 것이. 서로에게 안부를 묻듯이 시작한 대화는 열띤 토론이 되어 한참 동안 이어진다.


퇴직 후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을 받는 사람들 중 열에 아홉은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며 말끝을 흐린다. 당분간 쉬면서 여행을 하겠다는 사람, 시골로 내려가 전원생활을 하겠다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나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어떻게 대답을 할지 망설여진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는 경제적인 문제 외에 삶의 목표나 가치관에 대한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의도의 질문이냐고 되물었다가는 분위기가 썰렁해지고 질문한 사람이 머쓱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대충 대답하자니 성의 없다는 핀잔이 날아올 게 뻔하다.


그래서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은 간단명료한 답변을 생각해 냈다. "산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나의  마디에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린. TV를 너무 많이 본 것 같다며 가볍게 웃어넘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의 담대한 계획에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반짝이는 사람도 있다.  


(pinterest에서 퍼온 사진)

내가 산으로 들어가겠다는 말은 진심이다. 오래전부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확고한 결심으로 굳어진 것이다. 내가 말하산은 인적이 드문 두메산골이다. 작은 농막과 텃밭이 있고 자연의 소리와 냄새가 있는 곳이다. 에서 화초와 채소를 가꾸고, 글을 , 자연과 노니는 것이 내가 꿈꾸는 안빈낙도의 삶이다. 정착을 할지 주중 몇 일간만 머물지는 아내와 협상을 남겨두고 있다. 이러한 결심을 하게  가장 큰 이유는 나는 자연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하기 때문이다.


한편, 자연에 대한 갈망이 커질수록 도시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은 더욱더 확고해지고 있다. 도시와의 인연, 그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젊은 시절 큰 도시는 나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지방 소도시 출신인 나는 학업과 취업을 위해 큰 도시로 나가고 싶어 했다. 바람대로 서울에 있는 큰 회사에 입사했고, 해외 큰 도시에서도 10년 이상을 보냈다.

 

흑수저 출신인 나에게 도시는 젖과 꿀이 흐르는 삶의 터전이 되었다. 나는 도시와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지금까지 잘 버텨오고 있다. 도시가 필요로 하는 소비를 하고 적지 않은 세금을 정기적으로 납부한다. 도시는 그 대가로 나에게 편의와 안전, 그리고 약간의 오락거리를 제공해 준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가 끝이 나면 도시의 기능은 더 이상 나를 위해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낡은 노동력은 대체재에 밀려 폐기 처분되고 도시의 무시무시한 물가와 경조사 알림 문자는 가벼워진 나의 지갑을 호시탐탐 노릴 것이다. 세상 변화를 제대로 쫓아가지 못하는 나는 콘크리트 숲에서 서서히 고립되어 갈 것이다.


공원 장기판을 기웃거리거나 뒷골목 선술집에서 자식 자랑, 돈 자랑하는 인간들과 신세한탄하는 인간들을 번갈아 상대하다가 외톨이가 되어 갈 것이다. 도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간당간당한 자을 빠르게 소진시키면서  빠르게 늙어가는 것뿐이다.


(pinterest에서 퍼온 사진)

도시가 어떻게 해서든 나를 밀쳐 내려고 하는데 반해, 자연은 끊임없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다. 자연과 나는 궁합이 아주 잘 맞는 편이다. 사를 지으셨던 부모님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나는 흙을 만지면서 기쁨과 보람을 얻는 체질이다. 씨앗에서 새싹이 돋아나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생명순환 법칙언제나 경이롭고 오묘하다. 자연 속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평온해진다. 산과 강을 바라보고, 숲 속을 거닐며 자연의 냄새를 맡고, 새와 풀벌레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는 완벽하게 자연의 일부가 된다. 


자연생활이 가져다주는 또 하나의 혜택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이다. 자연이 주는 풍요에 익숙해지면 몸에 베인 도시 스타일의 소비욕구가 감퇴될 것이다. 남의 눈치와 품위유지, 경조사 품앗이, 의미 없는 모임과 형식뿐인 대인관계를 과감하게 끊어버릴  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자연활은 도시생활에 찌든 나의 몸을 리셋해 줄 것이다. 도시생활 보다 더 오래 산다는 보장은 없지만 더 건강하게 살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밭일에 지쳐 곯아떨어져 불면증이 사라지고, 유기농 식단은 오랜 기간 몸 안에 쌓인 독소와 탐욕을 말끔하게 제거해 줄 것이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주경야독 생활을 하다가, 겨울이 되면 눈 덮인 농막 안에서 따뜻한 차로 몸을 녹이며 독서와 글쓰기에 집중할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순간 때가 되면 더 깊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앞으로는 누군가가 나에게 퇴직 후 어떻게 살 것이냐고 물어본다면 이 글을 보여주려고 한다. 이 글을 읽고도 나의 자연생활이 미덥지 않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내 글에 공감하것도 바라지 않는다. 내가 거처할 두메산골은 오래도록 세상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한적한 곳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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