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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Aug 24. 2022

난생처음 떠나는 낯선 여행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

 

사회 초년생 시절 출근길 버스 안에서 광화문 교보빌딩 글판이 정면으로 보였다. 당시 신입사원의 단순한 잡무와 팍팍한 서울 생활에 무료함을 느끼고 있던 나에게 어느 날 아침 새롭게 교체된 글판은 유달리 선명하고 강렬했다. 나보다 더 정확하게 내 마음을 표현해 주고 있는 글판은 의미심장한 미소로 용기가 부족한 나를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고은 시인의 '낯선 곳'은 내게는 일종의 기도문과 같았다. 지치고 힘들 때나 삶이 따분하게 느껴질 때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수없이 되뇌었다. 언젠가는 낡은 삶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곳으로 떠날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으로 설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살던 곳을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싶다는 열망이 강했던 것 같다. 새로운 곳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서가 아니라 따분하고 지질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방 작은 도시에 살던 어린 시절에는 거의 2년 간격으로 이사를 다녔는데, 궁핍한 가정 형편 때문이었으니 그야말로 유랑에 가까운 이동이었다. 이사를 가는 곳마다 주변 환경은 열악했고, 형제들과 공유하는 복작거리는 공간은 좀처럼 개선이 되지 않았다.

몸서리치게 가난한 집과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칙칙한 동네를 하루라도 빨리 탈출하고 싶었다. 자칫 그 환경에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벗어나야겠다는 의지마저 꺾일까 봐 두려웠다. 고달픈 현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동네 사람들처럼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빨리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했다.


권위적이고 따분한 고향의 정서 또한 가난 못지않게 시간이 흘러도 극복할 수 없는 큰 장벽이었다. 그곳 사람들은 사춘기가 지나면 바로 꼰대로 성장하여 20대에 들어서면 거의 40~50대와 유사한 말투와 행동 습관이 몸에 배고, 꽉 막히고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은 빠른 속도로 학습이 되었다.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것은 철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였고, 정서와 다르거나 입바른 소리는 어김없이 집단 공격을 받았다. 당장 폐기해도 아깝지 않을 낡고 오래된 습관을 마치 소중한 유산처럼 움켜잡고 살아가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고향을 떠날 때는 가난과 편견이 쫓아올까 두려워 차마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얼마 되지 않은 좋았던 기억들을 떠올리게 되면 다시 그곳으로 불려 갈까 봐 차고 넘치는 안 좋았던 기억들로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까지 나온 후에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니 19년간에 걸쳐 느리게 통과해온 어둡고 긴 터널이 까마득히 보였다.


고향을 떠난 후에도 진학, 군대, 취업, 결혼, 직장 근무지 변경 등 크고 작은 일들을 겪을 때마다 마치 사전에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듯 거주 지역이 자주 바뀌었고, 고향에 있을 때처럼 같은 지역 내에서의 이동이 아니라 거리가 먼 타 지역으로의 이동이 이어졌다. 해외 출장도 잦은 편이었고 가족들과 함께 장기간 해외에 체류하기도 하였다.

새로운 환경과 낯선 풍습으로 인한 불편은 내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것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이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낯선 곳에서 이방인이 누리는 특권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과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곳을 경험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하는 만큼 내 삶의 경륜과 콘텐츠도 같이 풍성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동이 언제까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진행될 수는 없었다. 어느 날 예기치 못한 변화가 닥치면서 대처하버거운 일들이 한꺼번에 쏟아다. 업무의 변화와 근무지 변경 등으로 직장 내 위상은 추락하였 자존감은 사정없이 무너져 내렸다. 가족들은 익숙한 것들과의 갑작스러운 단절과 낯선 환경에서 힘들게 적응하면서 한동안 시련을 겪었다. 가족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시간들을 힘겹게 버텨내고 있었다. 혼술의 밤이 늘어나고 잠자는 시간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끊임없는 이동으로 점철되어 온 그동안의 삶을 돌이켜 보았다. 도대체 어떤 인연으로 인해 그렇게 자주 이동을 하게 되었는지, 새로운 곳으로의 빈번한 이동을 통해 나는 무엇을 얻었고 나와 가족들은 또 얼마나 행복했는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답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우연한 기회를 통해 명상을 시작하게 되었다. 난생처음 나 자신과 마주하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아침 안개가 걷히면서 멀리 산자락의 온전한 모습이 비로소 드러나고 내가 모르고 있었던 많은 일들이 인과관계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또렷하게 보였다. 몇 년간의 꾸준한 명상 덕분에 세상과 나에 대한 관점이 조금씩 바뀌었고, 무지와 착각에 빠져 있는 어리석은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물질적 풍요를 쫓아, 때로는 출세 통념에 이끌려 끊임없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아등바등거리며 살아왔다. 내 욕심에 충족되지 못하는 조건과 환경은 진정한 내 삶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음은 늘 조급하여 숙성의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조금만 익숙해지면 따분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지금까지의 모든 삶을 나 스스로 낡은 반복으로 만들어 버렸다.


명상을 하면서 또 하나 깨달은 것은 몸은 늘 새로운 곳으로 이동했지만, 정작 나의 '사고와 관점'은 항상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 집착과 편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혐오하던 낡은 사고와 관점을 마치 진리인 것처럼 오랫동안 끌어안 있었다. 몸은 낯선 곳에 적응하도록 단련되어 왔지만, 어리석은 마음은 낡고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나아갈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동을 할 때마다 그저 보기에 좋아서, 남들이 사니까 따라서 사 모은 온갖 잡동사니들을 버리기가 아까워  머리에 이고 다녔는데 명상을 하면서 하나씩 버리기 시작하였다. 수 십 년 동안 내 마음을 붙잡고 있던 낡은 짐들을 다 버리고 이제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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