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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Sep 07. 2022

내려놓고 싶다면 놓아버려야 한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구나 꿈꾸는 평범한 희망과 목표일 뿐인데, 그저 세상의 평균 정도만이라도 가지려고 했을 뿐인데.. 남들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이 내게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한계 상황이 되고 말았다.


세상을 상대로 대단한 양보를 하거나 인생의 큰 깨달음을 얻어서 내려놓으려는 것이 아니다. 내려놓지 않으면 불행한 결과가 뻔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일단 여기까지 마음먹었다면 대단하다는 칭찬을 받을만하다. 어쨌든 자신의 삶을 되돌아봤다는 것이고, 한계와 욕심을 알아차린 것이다.


더구나, 어떤 이유에서든 내려놓을 여지가 있다는 것 큰 위기가 닥치기 전에 대비기회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려놓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조차 힘들고, 다행히 실행에 옮기더라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내재화시키기까지는 멀고 험한 과정이다.

비범한 각오로 내려놓을 결심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요요현상이 일어나 또다시 욕심과 집착에 사로잡히고 만다.



내려놓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난센스 같지만,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내려놓으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내려놓는다는 말의 어감은 완전한 포기나 단절이라기보다는 왠지 '일시 정지'나 '작전상 후퇴'와 같은 느낌이 든다.


마치 연인들이 헤어진 후에 재결합을 염두에 두고 친구 관계는 계속 유지하는 것과 같다. 정치인들이 은퇴 선언을 했다가 언제든 다시 복귀할 수 있도록 모호한 여지를 남기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내려놓을 때의 손동작을 상상해 보면 조금 더 명확해진다. 손에 쥐고 있던 물건을 툭 던지는 것이 아니라 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옮겨 놓는 동작이다.




반면에, 내려놓다와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놓아버리는 동작은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놓아버리는 동작은 물건이 어떻게 되든 말든, 누가 그 물건을 다시 사용할지 말지에 대해 전혀 고려를 하지 않는다.


도자기를 내려놓지 않고 놓아버리면 어떻게 되는지 상상해보면 알 것이다. 연줄을 놓아버리면 연은 내가 빨리 포기하도록 멀리 날아가 버린다.


이렇듯 놓아버리다는 내려놓다와 비교할 때 근본적으로 마음가짐이 다르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리는 고독한 결단의 비장함과 돌아갈 다리를 끊어 버리는 단호함이 느껴진다. 핑계와 원망, 후회와 자책마저 송두리째 잘려나가 버린다.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 모든 신경계통이 멈출 것 같은 충격, 영혼을 삼킬듯한 막다른 골목.. 이들의 눈빛에서는 마음을 비우겠다는 결심이나 뭔가를 잠시 내려놓을 여유 따위는 없다. 모든 끈을 놓아버린 후의 고요함마저 느껴진다.


감자인 줄 알고 잡은 것이 뜨거운 돌덩어리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놓아버려야 한다.

그릇에 살포시 내려놓으려고 하다가는 그전에 손이 다 타버릴 것이다. 욕심과 집착을 버린다는 것은 바로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뜨거운 돌덩어리를 놓아버리는 듯이 해야 한다.



욕심과 집착은 너무나 질기고 강해서 웬만해서는 끊어지지 않는다. 놓아버려야 비로소 마음에서 도려내듯이 잘려 나간다.

그렇게 욕심과 집착이 떠난 자리에는 새로운 희망이 싹트기 시작한다. 한번 떨어진 낙엽은 다시 나뭇가지에 붙을 수는 없지만, 죽은 낙엽더미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돋아난다. 

다만, 욕심과 집착이 사라진 빈자리에 통찰을 채우지 못하면 언젠가는 욕심과 집착이 다시 비집고 들어온다.


놓아버리는 것은 한번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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