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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Sep 21. 2022

휴대폰 안에 머물러 있는 이름들

오래된 이름들로부터 탈출


언제부턴가 나이와 휴대폰 사용 빈도는 정확하게 반대로 가고 있다. 전화벨이 울리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연락할만한 대상들이 어느 날 갑자기 모두 사라져 버렸다. 정확하게는 사람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관계'가 사라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사는지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원인은 내가 먼저 제공했다. 그들보다 훨씬 일찍부터 나는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나이와 반대로 가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이름을 기억하는 능력은 보유 중인 주식처럼 자꾸만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익숙했던 이름들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질 무렵부터 휴대폰의 수발신 횟수도 같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깊은 침묵에 잠긴 휴대폰은 가끔씩 울리는 카드 사용 내역과 회사 단톡방 공지사항에 깜짝 놀란다.


일 년에 단 한 번의 전화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번호들이 대부분이다. 통화나 문자의 기회는 고사하고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이름들이 많다.




그럼에도 내 휴대폰 연락처에는 여전히 이름들이 가득 차 있다. 이제는 연락할 일도 없는 데다가 기억조차 희미한 이름들을 무슨 이유에선지 휴대폰 안에 꾹꾹 눌러 간직하고 있다.

늘 손에서 놓지 못하고 들고 다닌다. 잠 잘 때도 머리맡에 놓아둔다. 내 삶의 여정에 등장했던 모든 이름들과 여전히 함께 지내고 있다.


어쩌면, 내 휴대폰에서 이름들을 지우는 순간, 그 이름들과 같이 했던 추억들이 함께 사라질까 봐 걱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흐린 기억 속에 있더라도 예전에 나와 소주잔을 부딪히며 호형호제했을 이름들은 함부로 지울 수는 없는 것이다.


어쩌면,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여정을 나 만큼이나 잘 기억해주고 있을 이름들을 계속 간직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휴대폰 안의 이름들이 내 삶의 증인들인 셈이다.


어쩌면, 나에게 시련과 좌절을 안겨준 이름들을 언젠가는 용서하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동시에 나로 인해 상처와 손해를 입었을 이름들에게 사과할 기회를 얻기 위해 남겨두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대신해서 나의 삶을 기억해줄 유일한 사람들이 휴대폰 안에 이름 세 글자의 모습으로 머물러 있다.


나의 이름도 누군가의 휴대폰 안에서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을까?

그동안 살아오면서 나란 존재가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되었거나 위로가 되었다면 여전히 휴대폰 안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두 번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름이 되어 한참 전에 삭제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휴대폰 안에 오래된 이름들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과거에 대한 미련과 집착일 수도 있다.

다시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휴대폰 안에 있는 이름들에게 나의 부족과 실수를 만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나를 자꾸만 과거에 묶어 두려는 이름들로 꽉 찬 휴대폰이 무겁게 느껴질 때는, 즐겨찾기 해 놓은 몇몇 이름들 외에 나머지 이름들은 한꺼번에 삭제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퇴화된 기억력이 지워주기 전에 나의 의지에 따라 과거의 이름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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