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으면 건강하다', 이 말에는누구나공감할 것이다. 그렇다면,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선뜻 동의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행복과 불행에 대한 우리들의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행복'은욕망이 채워진상태, '불행'은 욕망을 채우지 못한 상태라는 통념이 우리들의 의식 속에자리 잡고 있다.
선한 마음에서 혹은 습관적으로 던지는 '행복하세요'라는인사말이 설마 '현재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세요'라거나 '마음 비우고즐겁게 사세요'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얼마 전까지 유행했던 인사말인 '대박'과 '부자' 대신에 조금 더 함축적이고 고상한 단어로 바뀌었을 뿐이다. 내 귀에는 '행복하세요'가 '조금 더 욕심을 내 보세요'처럼 들린다.
행복은 마치 경매시장의 호가와 같다. 아무리 높게 불러도 더 높은 호가에 잡아 먹히고 만다. 한국 사회의행과 불행의 기준은 자신보다 더 나은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정해준다. 그렇다 보니 자동적으로 불행의 영역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이렇게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한 것일까?'
우리 사회는 욕망을 부추기는인사말이나 덕담이 넘쳐난다.게다가, 남들의 조건을 따라가지 못하면 실패와 불행으로 간주해 버린다. 물론, 모든 인사말은 선한 의도에서 출발한다.
어릴 때는 장래희망이 원대할수록 좋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아이들의 희망과 목표를 더 높게, 더 크게 끌어올린다. 문제는 목표를 달성하고도 행복하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도 어릴 적부터 갖고 다니는 현실과 이상의 간격을 좁히지 못해 괴로워하며 산다는 것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어른들이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어른들도 그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어떻게 해서든 원하는 것을 가져야,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가져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부추기고 강요하는 것이 어른들의역할이라고 믿고 있다. 멀쩡한 사람들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악습의 되물림과 악순환이 멈춰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린 시절부터 만들어진 현실과 이상의 간격은 어른이 되어서도좁혀지지 않고 여전히 이상에 대롱대롱 매달려 괴로워하며 살아간다. 마치 발끝이 바닥에 닿을 듯 말듯한 물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이다. 설사 힘겹게 꿈이이루어지더라도 행복은잠깐 머물다가 지나가버린다.스스로 더 큰 이상을 만들어 더 높은 기둥에 매달리고, 더 깊은 물로 걸어 들어가기때문이다.행복의 조건이 차고 넘치는데도 불행의 영역으로 바로 떨어지고 만다.
성공을 기원하는 인사말에도 의도하지 않은 무시무시한 의미가 숨어 있다. 따뜻한 격려와 힘찬 응원이 얼마나 무서운 비난과 공격으로 돌변하는지 대회에 출전하는 운동선수들은 잘 알고 있다.
월드컵 연속 출전이라는 축제 분위기는 16강에 들지 못하는 순간 험악한 인민재판으로 바뀐다. 국민들의 욕망이 바로 이들 국가대표 선수들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해 버린다.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는 것은 모든 운동선수들의 목표이자 꿈이지만, 태극마크를 달았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의 필요한 조건들은 충분히 다 갖추었다. 충만했던 행복은 메달 색깔에 따라 산산조각이 나고 더 큰 불행이 되어 돌아온다.
만족이라고 하면 바로 안주와 나태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연상된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숨 막히도록 경쟁을 부추기고 욕망을 강요하는지 알 수 있다. 질문을 하나 더 해본다. '성공하지 못하면 실패한 것일까?'
수천 대 일의 경쟁률을 뚫지 못하는 수많은 수험생들은 인생의 낙오자가 되고 실패라는 꼬리표를 스스로 달고 다닌다.
가수경연 프로그램에 나와 무명시절의 고생담과 서러움을 얘기하는 경연자들은 눈물을 흘린다. TV에 출현하지 못하거나 스타가 되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스스로 규정지어 버린다. 물론 무명 시절이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든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굳이 자신이 살아온 시간들을 낮게 평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무명시절의 소중한 경험이 오늘 이 자리에 서게 한 것 같다. 과거도 행복했고, 지금은 더 행복하다', 이런 멘트를 던진다면 관객들과 심사위원들은 더 크게 감동하지 않을까..
베이비부머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하기 시작하면서 노후에 대한 로망과 환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인생 2막이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덕담은 기대와 욕망을부추긴다.
그동안 열심히 달려왔으니 노후의 삶을 충분히 즐기는 것은 지당한 말씀이다. 문제는 노후생활의 기대 수준이 지나치게 높아지다 보니 노후를 준비하는 사람들과 이미 노후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불안하고 우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세컨드 하우스나 전원주택, 고가의 실버타운, 럭셔리한 취미 활동, 세계 여행 등이 마치 일반적인 노후의 모습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상당수 사람들이 65-70까지도 일을 해야 하고 그 이후에는 빠듯한 연금으로 버텨야 하는 실정이다. 평생 치열하게 경쟁하며 남들과 비교를 통해 행복과 불행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들이 노년이 되어 또다시 욕망의 부추김에 빠져든다.
노년의 '행복하세요'는 진심으로 '내려놓고 현실에 감사하며 사세요'가 담겨 있어야 한다.
은퇴 시점에 손에 쥔 성적표가어떤 모습이든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노년의 삶은 하늘이 준 보너스로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어떤 삶이든 감사한 마음으로 살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안 죽고 살아 있으면 '이게 웬 떡이냐'하고 즐거운마음을 가져야 한다. 노년의 삶을 불안하고 우울하게 만드는 주변의 입담과 인사말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인다.
욕망의 충족이 행복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욕망을 채우지 못하는 모든 시간들이 불행으로 가득 차 버린다. 비교와 욕망이 일어날 때는 세상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을 모두 잊어버리고 이 세상에 홀로 사는 착각을 일으켜 보는 것도 방법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과 주변 환경에 어떠한 의미도 부여하지 말고 그저 담담하고 편안하게 온 마음과 온 몸을 지구의 중력에 맡겨 보자. 자유로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