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원 Oct 11. 2022

후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착각

착각에서 벗어나자 후회가 사라졌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때 그 말만 하지 않았어도..', '그때 그냥 해버릴걸..'

대표적인 후회의 말들이다. 잘못된 선택이나 결정, 어리석었던 말과 행동, 우물쭈물하다가 놓쳐버린 기회들.. 지나 간 크고 작은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돌이킬 수 없으니 아쉬움과 집착은 더 커진다.

살면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후회인데, 살면서 가장 많이 하는  또한 후회다. '~라면'과 '만약에~'는 역사책을 읽으며 상상할 때는 재미있지만, 일상의 삶에서는 마음병의 근원이다.


그렇다면, '만약에' 그때로 되돌아가 똑같은 상황을 겪는다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누구나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그때와 비슷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더 나은 선택이나 더 못한 선택을 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후회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착각 때문이다. 이 착각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후회가 줄어들거나 멈출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왜 착각일까? 예를 들어, 나는 과거의 어떤 행동 때문에 지금까지 후회하고 있다. 지금 생각하니 그 행동은 너무나 어리석은 실수였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당연히 다르게 행동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착각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어떤 행동이든 순간적으로 우연히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의 행동이 나타나기까지는 수많은 내외부적 요인들이 합쳐져서 오랜 숙성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런 다음에 의식과 무의식의 상태에서 잠재되어 있다가, 어느 순간에 외부의 조건에 반응하면서 그때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마치 그 순간의 감각과 의지에 따라 표출된 행동 같지만, 사실은 이미 수십 년 동안 누적된 업습에 의한 것이다. 그때 그 상황에서 그런 행동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인연이 이미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또한, 모든 행동은 독립된 것으로 존재할 수가 없다. 수많은 내외부적 요인들이 결합되어 상호작용에 의해 나타난 하나의 행동은 고스란히 수많은 내외부적 요인들과 함께 다시 저장이 된다. 그 행동만 단독으로 끄집어내어 좋다 나쁘다고 판단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작은 행동 하나, 말 한 마디라도 모두 삼라만상을 이루는 작은 먼지들이다. 아무리 작은 먼지라도 하나를 건드리면 삼라만상 전체 판을 건드려야 한다.


돌이킬 수 없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시간을 거스를 수 없으니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말은 삼라만상의 판을 건드릴 수 없다는 말과 같은 의미다.  


예를 들면, 공부를 열심해 안 해 후회하는 사람이 다시 과거로 돌아가 열심히 공부하면 될 것 같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태어나서 오랫동안 쌓인 내부 요인과 외부의 환경, 부모님까지도 건드려야 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날씨와 먹은 음식들까지 모두 펼쳐놓고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요인들을 모두 재 세팅해야 한다.  


후회의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원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선택이나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내가 모르는 수많은 조건들과 상황들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


운명론이나 팔자소관 하고는 개념이 다르다. 운명과 팔자는 나의 노력과 의지 관계없이 정해진 대로 흘러가기 때문에 내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내가 제공한 원인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은 정해진 운명이라고 할 수 없다. 더군다나, 과거에 학습된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더 나은 선택이나 결정을 할 수 있다면 운명이나 팔자의 영역이 아니다.




우리들의 기억은 한계가 있다. 모두가 자기가 기억하고 싶어 하는 것들, 유리한 것들만 기억한다.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한 깊은 숙고와 인과관계를 기억해 내려는 것이 아니라,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충분히 다른 선택이 가능할 것이라는 '욕심이 입혀진 상상' 그 자체만을 기억하려고 한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후회하고 싶은 것들만 골라서 후회를 한다는 것이다. 정확한 인과관계를 모르니 기억장치가 뒤죽박죽이 되고 사고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 정작 참회할 알맹이는 못 찾고 겉으로 드러난 현상들에 대해서만 단편적으로 반추한다.


이러한 행동은 후회와 자책을 깊게 만들 뿐이다. 자신의 선택이나 결정에 대해 몇 가지 요인으로만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지 말고, 그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인과의 법칙에 대해 그저 믿고 맡겨버려야 한다. 다행히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잘못 끼워진 단추를 찾아낼 수 있다면 그 상황에 놓일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을 이해하고 위로해줘야 한다. 

또한,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더라도 자신이 저지른 모든 선택과 결정에 대해 책임지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해 가장 현명하게 대응하는 자세는 현명한 습관들이 현명한 행동으로 나타나도록 연습하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노지월동! 그 거칠고 외로운 의연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