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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익썬 Nov 02. 2022

차녀이야기 05. 업히기

고부갈등이 3살 아기에게 미치는 영향

'업히기' 누군가의 등에 업히는 것. 누군가를 세력으로 삼는 것. 이런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사람이나 동물의 등에 매달리는 이 동작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어미가 자식을 업는 행위는 포식자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의 어머니들은 바쁜 집안일이나 바깥일을 하기 위해 포대기에 아기를 꽁꽁 싸매고 업었다. 나 역시도 포대기에 업는 것을 좋아했다. 잠이 오는지 칭얼대는 아기를 포대기에 업고 토닥이며 금새 잠이 드는 마법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업히기는 그냥 동작이라기보다는 육아 기술인지도 모른다.

 차녀라고 해서 업히기를 덜 할 수 있느냐고 제목을 보고 미리 짐작하시는 분도 있을 수 있다. 차녀로 태어났다고 해서 돌 이전에 덜 업힐 이유는 없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몸무게가 다른 아기보다 많다는 이유로 덜 업혔다고 하기엔 두돌 지난 아기도 업는 어머니들도 계시니 몸무게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자전거 가게에서 일하던 노총각은 결혼 후 여러 직장을 전전하다 큰 딸이 태어나고 아들이라고 확신되는 둘째의 출산을 기다리며 살림살이 방이 딸린 작은 구멍 가게를 장만했다. 다섯평 남짓한 크기의 점포는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비탈진 골목길로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사거리 모퉁이를 끼고 있어 몫이 좋은 자리였다. 점포 앞 양쪽으로 평상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에는 파, 양파, 상추 같은 각종 채소, 과일 등이 나무 궤짝에 담겨져 진열되어 있었다. 가게 문에 바로 들어서면 왼쪽에는 유리문이 달린 작은 냉장고가 있었고 그 안에는 우유, 요쿠르트, 두부 등이 있었다. 냉장고 바로 앞에는 검은색 천으로 덮힌 빨간 대야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콩나물이 있었다.  냉장고 맞은편으로 3개의 진열대가 줄을 나란히  도열하고 있었다.  바로 앞 진열대에는 과자, 껌이 있었고 두번째 진열대에는 라면, 국수, 양념병, 마지막 진열대에는 마른 오징어, 황태, 김 등이 있었다.  그리고 좁은 가게 양 벽면에는 냄비나 국자, 휴지 같은 일상 용품 등으로 빼곡했다. 요즘으로 치면 편의점이고 당시에는 동네슈퍼, 구멍가게 였다.

 난 슈퍼 집 둘째딸이었고 나의 첫 요람은 가게 앞 평상 위 나무궤짝이었다.  아버지는 매일 새벽 4시에 팔달시장에 가서 콩나물, 두부, 채소 등 신선한 물건들을 떼 왔고 어머니는 아침 6시 이전부터 눈을 뜨자마자 아침 밥보다 먼저 가게 문을 열어야 했다. 아침부터 두부와 콩나물을 사러 오는 손님이 있었다. 그런 바쁜 상황에서 엄마의 말에 따르면 아침에 젖 물리고 기저귀 갈고 바로 나무 궤짝 안에 눕혔다고  한다. 거기서 자다가 울면 젖 물리고 젖 물릴 상황이 아니면 오징어 다리를 물렸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이 장을 보러 와서 신선한 채소들 사이에 잠든 아기를 보고 놀라기도 하면서 구경도 많이 했다고 한다. 나에겐 모빌 따위는 없었구나. 동네 사람들의 무수한 눈동자와 호기심이 어쩌면 내가 바라본 세상의 모빌이었는지도 모른다. 차가 다니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가 평상 위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가게 문이 열려서 닫힐 때까지 거기 있었다고 한다. 아기는 아침에 등교하는 아아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에 잠이 들고 아이들 사이로 비집고 달리는 자전거 경적소리에 신경질적으로 눈을 뜨며 아침을 온 몸으로 느끼며 노숙자와 가까운 상황에서 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난 자라서 텐트에서 자도 잠을 잘 잤다. 생후부터 보낸 길 위의 삶에 꽤 단련이 되어 있었나 보다.  전쟁같은 출근과 등교가 끝나고 거리는 소강상태로 잠시 한산해져도 점점 따가워지는 햇볕에 짜증이 나 우는지, 배가 고파 우는지, 심심해서 우는지 아기가 아무리 칭얼대어도 늦은 아침 식사 후  천기저귀를 빨고 설거지를 하는 엄마의 등은 아기에게 내 줄 여유가 없었다. 

 등을 내 줄 수 없는 게 엄마만의 문제였을까?  사실 엄마는 나를 낳고 삼칠일도 가지지 못했다. 친정은 하루가 꼬박 걸려야 도착하는 곳이었고 슈퍼 장사는 오픈 한지 얼마 안되어 장사가 꽤 잘 되었을 때라 엄마는 나를 낳고 쉴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바라던 고추를 달고 태어났다면 엄마가 쉴 수 있었을지 모른다. 실패라고 하는 나를 낳은 엄마는 스스로에게 반성을 하듯 바로 장사를 시작했다. 손목이 시큰 거리고 엉덩이가 아직 짝이 맞지 않은 상태에서 슈퍼의 잡다한 물건들을 팔아야 했다. 살림살이 방 옆으로 아버지가 지은 가정집에는 시골에서  올라온 시동생과 나이 어린 시누이들이 있었고 그들을 교육하고 시집, 장가를 보내기 위해서는 아버지에게는 돈이 절실했다. 

 돈 때문에 엄마는 쉬지 못했고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천형으로 쉴 권리까지 스스로 버렸다. 둘째 출산에 맞춰 시골에서 올라온 시어머니가 찬바람 쌩하게 불며 다시 시골로 내려갔지만 엄마는 쉬지 못했다. 또 딸을 낳았다는 마음의 짐을 벗기 위해 스스로 고행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 엄마가 드디어 아들을 낳았고 2년동안 묵혀 두었던 마음의 짐을 내려 놓을 기회였다. 엄마는 당연히 삼칠일을 쉴 권리가 있었고 그 권리를 온전히 누리고 싶었다. 하지만 7살의 국민학교 입학을 앞둔 첫재딸, 앞뒤를 모르고 뛰어다니는 천방지축 노숙자 수준의 만23개월 둘째, 갓 태어나서 젖 달라고 울어대는 아기, 미혼의 직업까지 일정치 않던 시동생과 학교를 다니는 시누이, 그리고 아침 6시부터 두부를 사려는 사람들까지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렇게 바쁜 엄마를 더 더 힘들게 한 것은 손자를 키워주겠다고 덥석 눌러 앉은 시어머니였다.  내가 태어났을 때 농한기인 겨울임에도  기저귀 하나 빨아주시지 않고 그렇게 빨리 시골로 돌아 가시던 분이 이번에는 기어코 손자, 내 남동생이 눈에 밟혀서 시골로 가시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따뜻한 봄이 다가오는데도 시골에 땅들이 자신들을 갈아주고 거름도 주고 씨앗도 줄 사람을 기다리는데도 가시지 않겠다는 것이다.  시어머니와 산다는 것. 결혼 후 6년만에 시어미니와의 기약없는 동거의 시작은 애 셋과 무직 시동생과 나이어린 철부지 시누이보다 더 힘들고 감당할 수 없는 거였다고 한다. 가끔 듣던 구박을 하루 종일 들어야 한다니!! 엄마 입장에서는 정말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내린 묘안은 하나였다. 고부갈등에 맞서는 것은 역시 정치질이다. 누군가를 모함하고 그 죄를 묻고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승기를 잡는 것. 정치에는 희생양이 필요하다. 천지를 모르는 23개월짜리가  갓 태어난 아주 귀한 손자에게 해꼬지를 한다는 것. 

모함. 

 나는 이 집안의 귀한 장손을 괴롭힌다는 누명 아닌 누명을 쓰고 유배를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유배지를 함께 갈 이는 나의 할머니, 엄마의 시어머니였다. 23개월 아기가 갓 태어난 아기를 어떻게 했을까? 신기해서 몇 번 만져는 봤을까? 어쩌면 엄마의 말대로 고추 달린 녀석에 대한 시기 아니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환대에 시기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23개월짜리가 정말 나쁜 의도를 갖고 아기에게 접근할 수 있을까?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이게 먹혔다. 분명 며느리인 엄마가 말하지 않았을 거다. 사랑하는 아들, 즉 할머니가 눈에 넣어도 안 아까운 아들인 나의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엄마의 변은 이렇다. 아버지가 결정했다고. 아버지가 애도 키우고 장사도 하려면 둘째를 누가 봐줘야 한다고. 할머니는 힘들게 돈을 벌어서 본인의 자식, 아버지의 동생들을 건사하는 장남의 노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시골에서 농사만 지을 줄 아시는 촌부였고 급변하는 도시화와 산업화의 1970년대는 1940년대생 장남이 헤쳐나가야 하는 세상이었다. 경제적으로도 의존하고 있는 장남의 의견에 전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었고 갓 태어난 손자가 너무 이뻤지만 시골로 농사를 지어야한다는 이유로 돌아가셨다. 돌아가는 할머니의 등에는 내가 매달려 있었다.


 난 그렇게 24개월을 도시 어느 주택가 길거리에서 보내다 할머니 등에 업혀 시골로 떠났다. 봄이 오고 있었고 할머니는 농사를 위해, 아버지는 장사를 위해, 어머니는 남동생을 키우기 위해, 나를 버리기..아니 보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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