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이슈는 개발비 과대 계상이다. 증권선물위원회는 씨젠이 “자산 인식요건(기술적 실현가능성)을 충족하지 못한 진단시약 등 연구개발 관련 지출금액을 개발비로 계상”한 것을 지적했다. 즉 본래 경상연구개발비로 처리해야 할 금액을 2011년부터 2017년까지 7년 동안 무형의 이연자산인 개발비로 계상한 것이다. 해당 기간 동안 씨젠은 총 772억 원의 비용을 인식해야 했지만 이를 무형자산으로 인식함으로써 실적을 부풀린 것이다.
<개발비 인식 요건 및 주요 점검사항>
(출처: 증권선물위원회)
개발비를 자산으로 처리하려면 국제회계기준상 총 6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개발비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실현가능성, 상업화 의도, 상업화 능력, 미래 경제적 효익 창출방법, 재정적 자원 입수가능성, 원가 측정의 신뢰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기준이 매우 까다롭고 회계는 기본적으로 보수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자산이 아니라면 비용 처리하는 것이 옳다. 금융위원회도 “회사가 연구개발을 위해 지출한 금액은 기업회계기준서 제1038호 문단 57의 요건을 모두 제시할 수 있는 경우에만 자산화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씨젠은 이중 ‘기술적 실현가능성’을 인정받지 못해 감리 지적을 받았다. 인식요건의 표현을 들여다보면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다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많은 바이오 기업들이 이를 악용해 개발비를 임의 계상하는 오랜 관행이 지속되었다. 이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2018년 9월 '제약바이오 기업 연구개발비 회계처리 감독지침'을 발표했다. 2018년 4월에는 제약바이오 기업의 개발비 자산화 현황에 대해 테마감리에 착수했다. 당시 씨젠을 비롯해 20곳 이상의 기업이 감리 대상에 포함되었으며, 이번 씨젠의 회계 부정 역시 이 과정에서 증선위가 발견한 것이다.
<약품유형별 연구개발비의 자산화가 가능한 단계>
이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씨젠이 생산하는 진단시약의 개발비 인식 시점을 신약이나 제네릭 등과 비교할 때 가장 보수적으로 잡았다. 신약은 임상 3상 개시 승인, 바이오시밀러는 임상 1상 개시 승인, 제네릭은 생동성시험 계획 승인, 진단시약은 제품 검증 등으로 각각의 바이오 제품군들을 개발 과정에서 무형자산으로 인식할 수 있는 시점을 명확하게 설정했다. 제네릭의 경우 기존에 출시된 신약의 화학식만 알면 쉽게 복제가 가능하고, 바이오 시밀러는 복제 난이도가 비교적 높지만 참고할 수 있는 객관적인 분자식이 존재한다. 신약의 경우 참조사항이 없으므로 임상 3상 개시 시점을 자산화 시점으로 본다.
여담으로 우리나라 제약사는 해외 제약사에 비해 전체 자산 중 개발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지적을 종종 받는다. 실제로 2018년 초 도이치증권은 셀트리온의 개발비 과다 계상을 지적하면서 ‘매도’ 의견을 낸 적이 있다. 우리나라 제약사의 개발비는 자산 대비 약 20%로, 1% 안팎인 해외 제약사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우리나라 제약사의 신약 개발비 자산화 시점이 임상 3상 돌입 시점인 반면 해외업체는 3상 통과 시점을 자산화 시점으로 잡기 때문이다. 해외 제약사가 회계처리를 좀 더 보수적으로 하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씨젠은 바이오기기의 경우 1상을 통과하면 출시 성공 확률을 90% 이상으로 보고 1상 마무리 시점에서 제품과 관련된 비용을 무형자산으로 인식했다. 그렇다면 씨젠의 개발비 회계 부정으로 재무제표상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재무상태표상 중요한 오류의 수정>
(단위: 천 원)
우선 위 수치가 누적 수치임에 유의해야 한다. 즉 2017년 말 기준으로 170억 원은 자산이 아니라 그동안 비용으로 처리했어야 하는 수치인 것이다. 개발비 회계 부정의 고의성 여부를 판단할 때는 해당 개발비를 자산화함으로써 주요 성과지표가 얼마나 변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만일 자산화를 통해 비용을 줄여 당기손익이 급격하게 변했다면 고의성이 있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된다. 금융당국의 개발비 인식 가이드라인은 당시 제약업계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였기 때문에 이를 알지 못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포괄손익계산서상 중요한 오류의 수정>
(단위: 천 원)
각 연도마다 경상연구개발비가 과소계상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개발비가 임의로 자산화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비용이 과소 계상되면서 당기순손익이 부풀려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개발비의 자산화는 재무상태표에 어떤 변화를 주었을까?
<전기 재무제표의 재작성이 이전 보고기간말 재무상태표에 미치는 영향>
(단위: 천 원)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발비 회계 부정의 경우 씨젠의 고의성을 확단하기 어려워 보인다. 당시 씨젠의 부채비율은 날로 개선되는 추세였다. 자본총계 대비 부채총계의 절대적인 수치도 높지 않아 매우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지녔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수정전과 수정후 비유동자산의 변동폭이 크지만 전체 자산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해 보인다. 이번에는 포괄손익계산서를 들여다보자.
<전기 재무제표의 재작성이 이전 보고기간 포괄손익계산서에 미치는 영향>
(단위: 천 원)
위 표를 보면 개발비를 자산화함으로써 수정전 판매관리비가 수정후보다 과소하게 책정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당기순손익이 과대계상 되었는데, 이는 심각한 문제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당기손실로 전환될 수치가 당기이익으로 전환된 경우는 살펴볼 수 없다. 실적도 꽤나 좋은 편이어서 개발비를 조정함으로써 영업이익이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개발비의 경우 워낙 기준이 모호하기도 하고 위에서 살펴본 대로 씨젠이 분식 회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리스크 대비 적기 때문에 의도가 있었다고 속단하기 어렵다.
연구개발비는 기업이 성장을 위해 지출해야 할 필수적인 비용이다. 연구개발에 투자하지 않는 기업에 미래 성장동력이 있을 리 없다. 회사 입장에서는 연구개발비용이 미래에 현금을 창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기업 외부에 있는 투자자나 채권자들을 위해서는 명확한 구분이 필요하다. 재무제표를 이용하는 입장에서도 개발비는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편이 좋다. 주식투자를 위해 재무제표를 분석할 때 개발비는 제외하고 각종 재무비율을 산출하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다. 실제로 재무제표 감사가 아니라 인수합병을 위한 기업실사(DD) 시 개발비는 없는 것으로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매수자 측에서 개발비를 자산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재무제표에 개발비가 계상되어 있다면 재무제표 주석을 확인하여 회사가 무엇을 개발하고 있는지 살펴본 후 그 기술로 현금을 창출할 수 있을지 판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