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가방을 들고 가야 하냐며 맘카페에 올라온 글에 달린 답변이란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아이들의 어색함과 설렘이 익숙함으로 바뀔 때쯤 날아온 통지문 한 장이 일으킨 파장이다. 학부모총회 안내문이다. 뉴스에 나올 만큼 엄마들 사이에 학부모총회 옷차림은 고민거리다. 10명 중 8명이 7~800만 원씩 두르고 온다며, 백화점보다 명품이 많은 곳이 학부모총회라는 유머도 있다. 학부모총회가 있기 전부터 피부과를 가고, 머리를 하며 준비하느라 바쁘다 한다. 그나마 올해는 작년보다 명품이 덜했다던가?
변두리 작은 동네는 뭘 입고 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과시할 재력도 없지만 말이다. 무명 패딩 하나 걸치고 가방도 없이 털레털레 다녀왔다.
아이가 2학년이 되어 학부모총회도 두번째다. 사실 옷차림보다 더 원초적인 질문은 학부모총회에 가느냐? 마느냐? 다. 교사들은 학부모들의 참석을 독려하는데 가봤자 시간 낭비라는 학부모도 많다. 학부모회와 학교운영위원회를 선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보니 괜스레 눈 마주치지 않으려 민망하게 앉아 있게 되기 때문이다.
1학년 때야 학부모도 처음이니 모든 학교모임이 궁금하지만 점점 관심이 줄어든다. 나도 다른 학부모들과 별다를 게 없는 입장이지만 추레한 몰골이나마 굳이 참여하는 것은 다른 것이 있다는 기대다. 이름하여 '보물찾기' 시간. 이곳, 이 시간의 보물을 주의 깊게 찾아보는 것이다.
학부모총회는 크게 학교설명회와 학급설명회로 나뉜다.
학교설명회는 학교의 전반적인 행사, 사업과 주요 교육목표와 계획들을 설명하고 청렴교육, 아동학대 예방교육도 진행된다. (교육을 들어야 할 사람보다 듣는 사람들만 듣고 또 듣는 것 같아 아쉽지만.)
여기서 각 내용을 설명하시는 선생님들은 어떤 것을 중요하게 이야기하시는지, 올해 달라진 것이 있는지, 다른 학부모님들은 어떤 것을 유심히 보고 들으시는지 등을 본다. 작년 학부모회는 무슨 일을 했는지 올해 운영진은 어떤 분위기인지 등을 보다 보면 한 해의 분위기가 조금 짐작이 된다.
그리고 아이의 교실에서 담임 선생님의 학급설명회가 이어진다. 어떤 선생님이신가, 어떻게 말씀하시나, 무엇을 중요하게 말씀하시는가를 꼼꼼히 살펴본다. 1년을 어떻게 운영하실지, 아이가 느끼는 선생님은 어떤 분이실지 생각하다 보면 시간이 짧다. 사실 학부모의 입장에선 학급설명회가 더 중요해 보이는데 주어진 시간은 상대적으로 더 짧아 아쉽기도 하다.
아이가 학교를 간지 고작 2년째인데 아직 1년을 채운 담임선생님이 없다. 작년 입학식 전날 강당 장식을 하던 담임선생님이 떨어지셔서 크게 다치시는 바람에 세 달간 다른 선생님이 임시담임을 맡으셨던 탓이다. 그나마도 학부모총회에 와서 내부사정을 듣고 선생님이 다시 교체될 거란 사실을 미리 알게 되었다. (적응할 만하면 바뀌는 선생님이 낯설기도 할텐데 아이는 금세 익숙해지고 친근해했다.)
이번 학부모총회에 가기 며칠 전에도 선생님께 조금 마음 불편한 일이 있었다. 준비물로 '손에 묻지 않는' 크레파스를 보내달라는 말이었다. 유아들이 주로 사용하는 묻지 않는 크레파스가 집에 없기도 하고 어린이집, 유치원에서도 일반 크레파스를 사용했는데 어느 정도 스스로 앞가림하는 2학년에게 이런 걸 요청하시나 싶어 조금 의아했다. 집에 일반 크레파스도 많은데 또 크레파스를 사기 아까워서 집에 있던 돌리는 형식의 크레용을 보냈더니 이건 안 된다며 콕 집어 어디서 얼마짜리 크레파스를 사라고 이야기하셨단다. 아무 설명 없이 콕 집어 요청하시는 게 조금 고압적이게 느껴졌다. 업무가 많으실 테지만 아이들이 손을 닦는다며 부산스럽고 챙겨야 하는 상황을 싫어하시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선생님을 만나 학급운영계획을 들어보니 일이 많기도 하시지만 환경교육을 중요히 여기시는 분이라 아이들이 1회용 물티슈를 함부로 쓰는 상황을 줄이고 싶으셨다는 걸 알게 됐다. 직접 교육관을 들어보지 않고는 몰랐을 일이다.
상담은 개인적인 관심사나 사안을 이야기하게 되는데 반해 총회에서는 조금 더 전반적인 학급 운영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총회날 아이 교실에서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있다. 아이 자리 서랍과 사물함 살펴 얼마나 잘 정돈된 모습으로 수업을 받는지 확인하고 나면 이제는 아이와의 보물 찾기가 시작된다. 미리 챙겨간 포스트잇에 아이에게 남기는 메시지를 적어 여기저기 숨긴 듯 드러내어 붙인다. 사물함 문 안에도 하나, 교과서 앞에도 하나, 필기구들을 모아둔 바구니 위에도 하나, 방과후수업에 챙겨갈 준비물 가방에도 하나. 'ㅇㅇ아, 엄마야. 좋은 하루 보내.' '사랑해. 수업 잘 들어' 여기저기 남긴 메시지를 보고 즐거워할 아이를 기대하며 덩달아 즐거워진다.
작년에 본 어느 유튜브에서 한 선생님이 제안한 방법이었다.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즐거워지기 위해 총회때 교실을 방문하면 메시지를 남겨보라는 흥미로운 제안이 마음에 쏙 들었다. 아이에게 엄마가 메시지를 남겨놓고 왔댔더니 그날부터 교실을 뒤졌나 보다.(제 자리는 쏙 빼놓고ㅎ) 어디선가 하트그림이 그려진 동그란 종이를 두 개 찾아 들고와서 이게 엄마가 남긴 거냐며 묻기도 했다. 등잔 밑이 어두운 아이는 힌트를 듣고도 며칠이 지나서야 숨긴 듯 드러나있는 메시지를 다 발견했지만 무척이나 행복해했다.
그리고 올해는 소소하게 두 개만 적어서 올려두고(?) 왔다.
-엄마가 남긴 메시지 봤어?
-그래? 못 봤는데?
-책상 서랍 안 바구니에.
-어? 아~ 봤어.
이미 경험해 본 일이라 예년보다 미지근한 반응이지만 좋아하는 거 맞지? 아이의 학교생활에 엄마가 마음으로 함께 한다는 사실을 아이는 온몸으로 기억하게 되겠지.
학부모총회에서 다른 누군가의 명품을 찾기보다 아이와 나의 1년에 도움이 될 보물찾기. 시간이 허락하는 한 꾸준히 하고 싶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