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가공 공장에는 크게 소를 다루는 방과 양을 다루는 방이 있었다. 조금 잔인하지만 과정을 설명하자면 소와 양들이 들어오면 숨통을 끊고 껍질을 벗긴다. 머리, 꼬리, 발굽 등을 잘라내고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하면 레일에 걸려 냉동창고로 들어간다. 내가 일하게 된 방은 이렇게 이미 전처리 되어 냉동된 양고기를 부위별로 쓰임에 맞게 잘라 포장하는 방이어서 앞의 과정들을 직접 볼 일은 없었다.
방은 온도가 2~4도 정도로 유지되는 냉장창고로 벽에 온도계가 붙어있었다. 들어가려면 매일 소독, 세탁된 하얀 작업복을 입고 헤어캡과 마스크를 쓰고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손과 장화, 칼 등을 깨끗이 세척한 후에야 들어갈 수 있다. 2시간마다 휴게시간이 있는데 이때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건 꽤나 귀찮은 일이었다.
방에서 남자들은 대개 냉동창고에서 양고기를 꺼내오는 앞쪽 라인에서 몸통을 톱날로 자르는 일을 맡았다. 레일에 걸린 하나에 30킬로쯤 되는 양을 번쩍번쩍 들어내리는데 여러 대의 톱날들이 나란히 서서 어깨, 뒷다리, 옆구리를 잘라내고 각각을 반으로 갈랐다. 그러면 또 몇몇은 예리한 칼을 들고 뒷다리와 갈비를 먹기 좋은 모양으로 발라내곤 했다. 그러면 레일 옆에 선 여자들과 파트타임 워홀러들이 고기부위에 따라 각각의 비닐에 담고 기계에 넣어 밀폐압착포장을 했다. 그리고 제일 뒤쪽에서 표장용 박스를 접어 포장된 고기들을 종류별, 개수별로 담으면 차곡차곡 적재를 한 후 외부로 배송됐다.
이 방에서 일하는 사람의 절반정도는 워킹비자로 온 정규직 필리핀 아저씨, 아줌마들이었다. 또 자메이카 쪽에서 온 흑인 남자가 대여섯, 바로 옆 뉴질랜드에서 온 사람들과 오지사람들도 너댓 명에 영주권자인 아시안도 있었다. 그리고 후에 파트타임으로 홍콩, 대만, 한국출신의 2~30대 청년 워홀들이 대여섯 명 들어왔는데 내가 처음 갈 때만 해도 아직 다른 워홀들이 없을 때였다.
출근 첫날. 신기하게 주위를 살피며 슈퍼바이저를 따라갔더니 구불구불 방을 굽이도는 레일 주변으로 50여 명이 일하는 하얗고 커다란 방이 나왔다. 서늘한 온도에 톱날이 윙윙 돌아가고 레일이 움직이는 소리가 울려 퍼져서 자못 긴장되었다.
처음 온 신입을 본 사람들은 꽤나 흥미로운 눈치였다. 작은 갈비(프랜치랙)를 포장지에 담는 일을 처음 맡아 어리바리한 나에게 맞은편에서 톱날을 다루는 덩치 큰 흑인 아저씨가 쉼 없이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뭐야?
-유니스
-아하, 유니스. 반가워. 난 아이작이야.
-안녕.
-유니스, 빨리해. 저기 고기가 지나가잖아.
-알았어.
-유니스 이렇게 하면 빨리 담을 수 있어. 이것 봐봐.
-유니스. 이것 봐. 제대로 안 담겼어. 오.. 유니스.... 유니스....
-아 제발 조용히 좀 해! 입 좀 다물어! 나 바빠.
자신들은 이미 익숙해져서 여유로운 일인데 자그마한 여자애가 레일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이 얼마나 웃겼을지 짐작은 간다. 그래도 처음 하는 일에 정신 못 차리다 보니 앞에서 장난치는 그들이 어찌나 얄미운지 버럭 쏘아붙였다. 잠시 조용해졌을까, 옆에 서 있던 필리핀 아줌마들이 이번엔 또 다른 자리로 날 데려갔다. 여기선 숄더랙을 포장해야 한다. 어깨 부분을 반갈라 얼굴보다 좀 더 큰 사각 반듯한 크기. 커다란 비닐에 얼른 담지 않으면 레일을 따라 그대로 지나가 버린다. 예리하게 잘린 뼈 단면은 종종 비닐에 걸려서 잘 들어가지 않았고 레일을 따라 저 멀리 고기들이 내려가길 수차례. 지나간 고기를 다시 가져다주며 얼른 포장하라 면박을 주기도 하고 너무 많이 밀리면 한 번씩 레일을 세우고 몇 명이 붙어 도와주기도 했다. 우리 오늘 할 수량이 많은데 자꾸 이렇게 밀리면 안 된다고 타박을 하면서 말이다. 손에 낀 하얀 라텍스장갑은 자꾸만 날카로운 뼈 단면에 긁히고 걸려 찢어지곤 했다.
두세 번 더 자리를 바꿔 세우곤 제일 마지막에 있는 박스포장으로 옮겨갔다. 모든 포장 자리는 선착순으로 서곤 해서 어떤 자리에 서든 다 할 수 있도록 알려준 거였는데 뭐 하나 제대로 익숙해질 틈도 없이 옮겨 다니다 보니 하루 만에 정신이 쏙 나가버렸다. 나름 편하고 쉬운 자리와 바쁜 자리가 있는데 아줌마들은 자기들이 쉬운 자리에 서고 그 외의 자리에 나를 세워 일을 시킨 거였다. 한국의 공장에서 방학 동안 일하기도 해서 단순노동은 괜찮을 줄 알았는데 허덕이는 하루를 겨우 마쳤다.
다음날부터 모든 고기들이 밀려 나오는 제일 뒤 박스포장 자리에 줄곧 서게 됐다. 박스를 접어 고기들을 종류별로 담고, 다 담은 박스들은 뚜껑을 덮어 외부창고행 레일로 올렸다. 분명 방안은 2도 내외인데 나는 온몸과 얼굴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온몸을 쓰다 보니 그 방의 냉기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더웠다. 필리핀 아줌마들은 작업복 안에 몇 겹의 옷을 입고도 오들오들 추워하는데 말이다. 홀로 박스와 싸우는 와중에 종종 살가운 동료들이 하나둘 와서 말을 걸며 힘들진 않은지 묻고는 박스를 접어주고 가곤 했다.
그렇게 이틀여를 보냈나. 번쩍번쩍 상자를 들며 무리가 갔는지 물건을 잡을 때마다 손목이 찌릿찌릿한 게 입에서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제품 나오는 속도에 맞춰 담으려면 빨리 움직여야 해서 입술을 꾹 깨물고 참으며 일하는데 눈물이 절로 나왔다. 마침 옆을 지나던 동료가 괜찮냐 묻는 말에 서러움이 북받쳐 "손목이 너무 아파"라며 펑펑 울었더니 동료가 전체 레일을 세우고 슈퍼바이저에게 설명을 해서 보건실로 데려갔다. 보건실 직원이 퉁퉁 부은 손목에 파스를 뿌리고 아이스팩을 붕대로 칭칭 감아줬다. 그래도 집으로 갈 순 없다. 세컨 비자를 받으려면 일수를 맞춰야 하니까. 손목에 붕대를 칭칭 감고 방으로 돌아오니 동료들이 보고 다들 놀라고 걱정하는 모습이다. 제일 바쁜 자리에 자진해서 하루 종일, 며칠간 혼자 끙끙대고 일한 걸 아는지라 조금 안쓰러웠나 보다. 그간 해보지 않은-가장 쉬운 일-고기 밀봉기계 앞 자리에 세워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