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향
중학교시절부터 라디오와 CCM음악을 열심히 들었던 내게 소향은 친숙한 이름이었다. 기독교인이다 보니 여름, 겨울 수련회에서 종종 초청인사로 거론되는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었고 그저 방송으로만 듣는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탄탄한 목소리와 고음이 그를 CCM 최고의 가수로 손꼽게 만들었다.
CCM장르의 특성상 고백적인 내용을 잔잔한 분위기로 표현하는 게 대다수라 고음을 유려하게 보이는 곡이 많지 않았다. (지금은 장르가 다양하게 세분화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전형적인 특징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곡을 부르는 가수 역시 없었기에 소향이 부르는 <반석 위에 Upon this rock>은 파워풀하고 강력하게 기억에 남았다.
어느 순간 대중매체에서 소향을 발견하는 게 조금 어색하고 낯설긴 했지만 그래도 나만 알던 재야의 실력자가 공공에게 인정받는 상황이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종종 뜨는 노래 리액션 영상을 보면 세계에서 알아주는 가수란 생각에 괜히 내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사실 소향은 알아온 세월에 비해 그다지 아는 게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본명이 김소향이란 거나 98년도에 결혼해서 벌써 결혼 26년 차?라는 소소한 내용들도 잘 몰랐으니 말이다. 통역관이나 만화가가 꿈이었던 소향은 19살에 나간 CCM대회에서부터 우연히 노래를 하기 시작했고 그전엔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온 같은 당대 디바들의 팝을 자주 듣고 따라 부르는 학생이었다.
그녀가 다니던 교회에서 밴드 POS의 보컬을 맡게 되었고 98년 21살에 리더 김희준과 결혼하게 되었다. POS 멤버가 모두 김경동목사의 자녀들로 구성된 팀이라 밴드동료에서 이제 남편과 시누이 가족이 된 것이다.
새벽 기도 중에 "결혼을 행하지 않으면 유익이 없으리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었다고 하는데 결혼 후 얼마 안돼서 자궁암 진단을 받고 한쪽 난소 제거 수술을 받았다. 일찍 결혼했기에 산부인과를 조기 방문하여 자궁암을 빨리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후 자연 임신이 불가능해져서 결혼 이후 현재까지 자녀가 없다.
<나는 가수다2>에서 가수가 임의로 곡을 선정할 수 있어서 출연을 결심했는데 (거의) 첫 방송 출연에 경연프로그램이라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고 회고한다. 테크닉만 있다고 악플이 많아서 다른 가수들의 감성을 배우려 노력했다고 한다. 이후 <불후의 명곡>에도 종종 출연했다.
3년간 7~8번 동안 쉼 없이 낫고 재발하기를 반복한 폐렴으로 평소 기량을 보일 수 없게 되자 노래하지 않겠다며 무작정 미국으로 도피성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곳에서 '두려움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가장 큰 두려움이다.'라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명언을 보고 자신의 두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항상 100점 받는 자리에 있던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악평을 받게 될까 두려워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두려움으로 도망치면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두렵더라도 두려움에 맞서서 무엇이든 해보자.' 다짐했을 때 <복면가왕> 출연 제의를 받게 된다. 복면가왕 출연모음
그리고 2020년 코로나시기 비긴어게인 코리아를 통해서 경연의 파워풀한 모습과는 다른 섬세함과 감성을 담은 공연을 보여준다. 이때 소향의 컨디션은 평소의 30%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가장 힘겨울 때라 힘든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었다고 한다. 폐렴으로 엄청난 호흡조절, 고음과 테크닉들을 쓸 수 없어서 내려놓는 마음으로 노래를 했더니 더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때 그 공연에 많은 사람들이 위로받고 삶의 희망을 다시금 붙잡을 수 있게 되었다는 많은 댓글들이 달렸다.
성공만 하던 사람은 성공에 취해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꼴등을 해본 사람만이 상대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다. 고난과 역경들이 재산이라 말하는 그녀는 고난과 아픔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욕심쟁이인지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전력질주하는 레이싱카 대신 덜덜거리며 천천히 가도 더 많은 사람들을 태울 수 있는 대형버스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고통과 아픔의 시간을 통해 깨달은 것이 사람들에게 더 많은 위로를 주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성공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었다.
그래서 소향이 노래를 부르며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가?라고 한다. 무대에 오르면 긴장하기 때문에 툭치면 노래가 나올 정도로 수백 번씩 연습하지만 테크닉은 부차적인 문제라 여기는 그녀는 자신의 발성음역대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다. 오로지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부른다.
가장 포기하고 싶은 때 포기하지 않아(I won't give up)를 외치는 마음으로 선물 같은 노래, 위로와 안식이 되는 노래를 선물하는 그녀는 맑고 깨끗한 음색으로 포근하게 안아준다. 작사, 작곡능력에 여러 책을 출간할 정도로 글재주까지 가진 다재다능한 그녀가 마냥 부럽다가도 사랑 가득 담은 먹먹한 노래에 나 역시 마음이 녹는다. 그녀의 노래를 듣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 많은데 어쩌면 그녀의 진심이 깊이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