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새끼들이니, 내 맘대로 욕 좀 할게요.
반에서 달리기가 빠른 학생을 2명씩을 선발 후 점심시간을 활용해서 학년별로 누가 가장 빠른지 50m 경기를 한다고 한다. 이런 체육 관련 행사가 있을 때마다 우리 반 내 새끼들을 응원하러 꼭 참석하여 사진을 찍어주고 활약한 모습들을 영상으로 담아 학생들에게 보내준다.
점심시간이 되면 급식실에서의 선생님들의 수다 주제는 단연코 학생들 이야기다. 반에서 있었던 이야기, 도대체 어머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해지는 착하고 괜찮은 학생 이야기, 수업을 방해해서 힘들게 한 학생 이야기 등 며느리들이 서로 시월드 이야기를 하듯 때론 누가 누가 더 힘든가 배틀을 벌이기도 한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우리 반 아이들에 대한 새로운 정보(여자친구가 생겼다던가)를 입수하기도 하고 내가 들어가는 반 아이들의 몰랐던 점이나 조심해야 할 점 등의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는데 이것이 학생들 지도하는데 매우 유익한 정보가 된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미대를 준비 중이라고 하면, 수업 시간에 "역시 미대오빠는 다르구나!!" 하며 칭찬과 함께 관심을 표현하면 놀라면서도 좋아하는 것이 느껴진다. 만약 우리 반 학생에 대해서 오해하고 계시는 선생님들이 계시면 적극적으로 변호를 한다. 그러면 또 그 선생님께서는 이야기를 들은 후에 그 학생을 다시 보니 괜찮은 학생이었다는 말을 하실 때가 종종 있다. 이런 내 노력을 녀석들은 알랑까몰라. 절대 모르겠지. 속을 썩이지만 어찌 됐건 올 한 해는 내 새끼가 됐으니 품어주려고 노력한다.
학기 초, 교감선생님께서 교문 앞에서 등교지도를 하고 계셨고, 우리 반 민준(가명)이가 자전거를 타고 들어와서 교감선생님께서 교내에서는 내려서 자전거 거치대까지 끌고 이동하라고 하니, 마음에 안 들었던 민준이는 그 앞에서 자전거를 내던져 버렸단다. 교감선생님께서는 그날 아침 다급하게 담임인 나를 찾으셨다. 얘기를 듣고 '맙소사..!' 너무 놀라고 막막했지만, 사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친구이기도 했기에 당황하신 교감선생님을 오히려 안심시켜 드렸다.
"네, 그 학생 좀 문제가 있는 학생이어서 안 그래도 어제 어머님도 학교에 왔다가 상담하고 가셨어요"
며칠 전에 치러졌던 모의고사에서 시험을 안 보고 교내를 배회하고 있었던 민준이를 마침 상담 선생님이 발견하셔서 곧바로 상담을 진행하셨고, 민준이 어머니까지 호출하여 학부모 상담까지 했던 그 바로 다음 날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반 아이들 관리 잘하고 있습니다. 안심하고 맡겨만 주십시오'라는 태도를 취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솔직히 저도 이 학교 온 지 한 달도 안 되었고요, 학교에서 제 의사도 안 물어보시고 그 아이 담임 시키셨잖아요. ㅠㅠ 제가 무슨 죄인가요??' 싶었지만. 이 녀석은 학기 시작 전에 받은 자기소개 설문지에 화가 나면 주체할 수 없으니 자기가 화를 내면 말려달라고 썼던 아이였기에 내 안에서 이미 막강한 요주의 인물이었는데, 교감선생님 앞에서도 그 난리를 쳤다니. 미쳤네. 역시 보통 아이가 아니었어, 나더러 어찌 지도하라는 것인가 매우 슬프고 난감했지만, 민준이 어머님을 만나고 나서는 '아 우리 민준이 나라도 잘해줘야겠네'라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민준이가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이미 그 가정에서는 많은 일이 있어왔고, 부모님 두 분 다 민준이에 대해 포기하신 상태였으며, 제발 졸업만 해서 빨리 독립시킬 생각밖에 없으신 상태였기 때문이다,
우리 반에 들어오시는 과학 선생님께서 어느 날 교내 메신저로 쪽지를 보내오셨다. 민준이 때문에 너무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니 위탁교육이나 자퇴를 권유해 보라고 하신다. 자꾸 수업에 안 들어오고 들어와도 딴짓하고 태도가 매우 불성실하기에 그 아이 때문에 우리 반 수업에 아예 들어오기 싫다고까지 하신다. 이해할 수 있다, 백 프로 이해할 수 있다. 정말 교실에 나와 맞지 않은 학생이 딱 한 명만 있어도 그 반 교실에도 들어가기 싫은 법이다. 나도 겪어본 적이 있었기에 너무나도 이해가 되었다. 어느 날은 민준이가 배가 아파서 종이치고 조금 늦게 교실에 들어왔는데, 지각자 명단에 자기 이름이 쓰여 있다고 다짜고짜 칠판을 주먹으로 치는 모습을 지켜보며 언젠가 쟤한테 한 대 얻어맞는 건 아니겠지라는 공포심을 느낄 정도였으니 충분히 과학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담임만 아니었어도 그냥 같이 욕하고 끝낼 수 있었을 텐데 담임으로서는 우리 아이 좀 잘 봐주십사 상황을 설명드릴 수밖에 없었다, 민준이가 부담스럽고 다루기 힘든 아이인 것은 맞지만 알고 보면 다 이유가 있고 불쌍한 아이니 사랑으로 보듬어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우리 애가 잘못했지만 그러는 이유가 다 있답니다."
어 이거, 진상 부모 체크리스트 중 하나였던 거 같은데..
어느 날 단톡방에서 밀린 대화를 쭉 읽고 있는데, 선착순으로 '선물 받기'가 있길래 이미 늦었겠지만 그래도 뭔지 궁금하기도 하여 버튼을 클릭해 보았다. 7번째로 당첨이 되었단다. 생각지 못한 서프라이즈 커피 쿠폰을 받게 되었다. 처음 겪어 본 카톡 선물하기 기능을 접하고 너무나 기분이 좋아진 나는 누군가에게 이런 기쁨을 똑같이 느끼게 해주고 싶어졌다. 곧바로 우리 반 단톡방에 이 선물하기 기능을 써보기로 하고, '선착순으로 선물 받기'를 하면 혹시라도 앞으로 또 담임샘이 선물 줄까 싶어 애들이 핸드폰만 보고 있을까 봐(별 걸 다 걱정한다) '랜덤으로 선물하기'로 소소하게 내가 맛있게 먹었던 닥터유 에너지바를 5명에게 선물하였다. 누가 당첨될지 너무 궁금했었는데, 5명 중에 3명이 지각 상습법으로 매일같이 남아서 청소하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악!! 마음에 안 들어.. 이럴 거면 아예 처음부터 지정해서 예쁜 친구들만 줄 걸 싶었지만, 미운 놈 떡 하나 준다는 마음으로 그냥 인심 쓰는 척했다.
종종 퇴근 후에 동아리 신청에 늦었거나 위탁교육 추가 모집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묻는 문자가 학생들에게서 날아온다. 우이씨. 학교에 있을 때 제대로 하지 뭐 하다가 지금 연락하는 것이야 생각하면서도 내 새끼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에, 퇴근 후에 연락드리는 것을 싫어하실 수도 있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담당 선생님들께 전화를 드릴 때가 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퇴근하셨는데 죄송합니다...."
아 이거 진상 부모 단골 멘트에 있었는데.
이제 좀 있으면 종업식이다. 이때쯤 되면 이제 제발 아무 사고 없이 윗 학년으로 빨리 곱게 포장하여 올려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얘들아, 나 진상 부모 안되게 좀 도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