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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카리 Jan 05. 2024

제 글을 상사에게 걸리고 말았습니다

작가 생활 이대로 끝인가요?

 개학을 맞이한 3월 첫 주는 마치 한 달을 보낸 것과 같은 피로감이 있다. 물론 학생들도 새로운 환경에 긴장도 되고 방학을 보내다가 나오니 체력적으로 힘들겠지만, 사실 그건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다. 선생님들도 방학이 좋고 개학하기 전날은 그렇게도 학교 가기가 싫다는 사실은 학생 때는 몰랐던 일이다. 안 그래도 바쁜 3월, 새 학교에서 급식실이 어딘지 강당이 어딘지 심지어 우리 반 교실이 어딘지도 몰랐던 상황에서 모든 것이 낯설고 긴장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담임 업무는 기본이고, 교육청 신규 사업으로 이 낯선 업무를 아무도 맡고 싶지 않아 남겨져 있던 것이 나에게로 와 암흑 속에서 지내던 3월 어느 날, 어떻게 진행을 하면 좋을지 막막하여 협조를 구하고자 다른 교무실에 계시는 아직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어느 선생님의 교무실 전화번호를 확인 후 두근거리며 전화를 걸어 간단한 자기소개 후 '맡은 업무 때문에 선생님의 협조가 필요하여 잠시 찾아뵙고 싶은데, 언제가 괜찮으신지' 여쭤보니, 돌아온 답은 "전, 그 아이들은 잘 모르고요, 담임선생님들께 쪽지 보내세요". 외로웠다.  




 조회를 마치고 자리로 내려와 교내 메신저를 확인했다.  

 "선생님, 차 한잔 하실래요? 초코파이도 있어요."

 부장선생님 중 한 분께서 보내온 쪽지. 마침 따뜻한 차 한잔의 여유가 절실했기에 바로 달려갔다.

 부르시니 바로 간다고는 했지만, 도대체 왜 부르셨을지 전혀 감이 안 왔다. 내년도 업무 때문에 그러시는 걸까? 난 이미 맡을 업무가 따로 있는데 어떻게 말씀드려야 되나. 이상하네, 그 부서도 이미 부서원들이 내정되어 있을 텐데,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나?


 내 교과와 상관없는 수업을 교육과정 상 얼떨결에 맡게 되면서 학기 초에 관련 교과를 담당하시는 이 부장선생님을 찾아뵙고 자문을 구하러 간 적이 있었다. 신기할 만큼 새로 들어온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 같은 것이 전혀 없으셨고, 오히려 활짝 열려있었다. 이 신입이 자기를 왜 찾아왔는지 파악을 하시곤 곧바로 교무부 쪽으로 전화하여 알아봐 주시고 다정히 설명해 주셨다. 너무나도 감사했고, 편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낯가림이 있는 나도 첫 만남에 주저리주저리 편하게 이야기를 풀어놓았었다. 그 이후로도 교내에서 마주치면 항상 아는 척을 해주시고 언제든 커피 마시러 놀러 오라고 이야기를 해주시던 선생님.

 반갑게 인사를 드리고, 선생님께서 차를 타주시더니 이내 곧,


 "사실, 선생님 브런치를 봤어요."

 "네? 네??!!!!! 으악~~~~!!! 네?!!!!! 캬~~~~~~"

오 마이갓! 짧았던 내 작가 인생 끝이로구나.

 '학교 욕이라도 썼었나? 뭔가 언짢게 느끼실 만한 부분이 있었을까?'

 별의별 생각이 들고 예상치 못한 전개에 너무나도 충격을 받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마구마구 소리를 지르며 당황했음을 표현했다.


 "캬~~~~~~말도 안 돼요!!!!! 어떡해요!!!!! 캬~~~~~~"


 안 그래도 전날 발행한 글이 어딘가에 노출이 되어서 조회수가 쭉쭉 올라갔더랬다. 올라가는 조회수에 기쁘면서도 동시에 불안감도 찾아왔던 게 사실이다. 혹시라도 우리 학교 관계자가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대문 사진으로 올려놨던 학교 사진을 급히 다른 이미지로 교체하고 또 다른 사진에는 모자이크를 입혔다. 이제 안심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내 글을 보셨다는 것이다. 맙소사!!

 핸드폰으로 구글에 들어가면 기사가 이것저것 뜨는데, 그중 학교 이야기가 있어서 제목을 보고 클릭해 보셨고, 내용이 매우 공감이 되셔서 쭉 읽게 되셨단다. '참 희한하네. 대한민국에 있는 학교들이 이렇게 다 비슷하구나'라고 생각하시다가 군데군데 숨어 있는 우리 학교 이야기임을 말해주고 있는 단서들을 포착하시고 나서 잠을 못 이루실 정도로 재밌게 읽어보셨다고 한다.   

 아무튼 내 글을 다 읽어보셨다는 말씀이시다.

 으아악악악

 필명을 바꿔야 되나????? 이제야 '히카리'가 되어 살아가기로 결심했는데, 감사하게도 구독까지 하셨다고 하니, 필명을 바꿔봤자 소용없다. 언젠가는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설마 하는 마음이 컸는데 귀한 구독자님 중 한 명이 상사라니.. 말이 됩니까?


 부장님께서는 글을 보시고, 공감이 많이 되셨다고 한다. 가족분 중 한 분이 나의 상황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더욱 몰입하여 읽으셨고, 흥미로웠다고 하셨다. 올라오는 글들을 몰래 지켜볼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커밍아웃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셨다고. 커밍아웃을 해주셔서 그나마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기가 막혔다. 근무한 지 1년차.. 아직 대화를 나눠보지 못한 선생님들도 많이 계시는데, 교내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많아봤자 같이 점심을 먹는 샘들 5명 정도? 하필... 그나마 대화를 나눠본 부장선생님께서 제 글을 읽게 되시다니요. 학기 초에 찾아가 대화만 안 나눠봤어도 학년도 다르고 교과도 달라서 교류가 없기에 절대로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더니.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 일어났다.


 작가로서의 삶을 끝을 맺어야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이렇게 비정규직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해를 해주시고 다정할 수 있구나라고 느꼈다.

 그래! 열심히 사는 비정규직으로서의 삶을 덤덤히 적어나가다 보면 내 글을 통해 누군가는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됨으로써 보다 너그러운 시선으로 갖게 되고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담아 계속 작가 생활을 해나가고자 결심하게 되었다.

 그래도 앞으로 백 퍼센트 솔직하게는 못 쓸 듯하다. ㅋㅋ




 또 다른 어느 날, 조회를 하러 교실로 올라가고 있는데, 곧 퇴직을 앞두고 계신 옆반 담임 선생님께서 내 거취에 대해서 물어보신다. 내년도에도 이 학교에서 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같이 기뻐해주시면서, "나도 강사를 해본 적이 있어서 그 마음 잘 알아요. 이때쯤 너무 싫잖아. 이 찬바람 부는 날씨"라며 공감을 해 주셨다. 따뜻한 공감에 힘을 얻었고 역시 알아야 더욱 이해할 수 있음을 느꼈다.


 모든 일은 글감이라고 생각했었기에 이 사건도 남긴다.

 이 글도 읽고 계신가요, 선생님?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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