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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슷 May 08. 2024

[쓰밤발오43] 신나게 북 치고 구슬프게 장구치고

오늘의 진료가 마지막일 줄 알았다. 2주 전에 갔을 때 보조기를 떼라고 하셨고, 걷는 연습 하면서 무릎 어깨까지 올리기, 다리 쭉 펴기 숙제를 내주셨다. 그때 보조기 차지 말라고 하시자마자, 아 이제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관절이 굳지 않도록 조심만 하면 되는군, 기나긴 6주가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다리를 펴고 굽히는 연습을 하면서 통증이 살짝 있을 때마다 상상 통증이라고 생각했다. 난 이미 다 나아서 아플 리가 없는데 겁을 먹어서 몸이 보호하기 위해서 끝까지 못 펴고 접게 하려고 아픔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조금 아프더라도 열심히 숙제를 했다. 


끝이라니 수영할 생각에 너무 신났다. 마지막 진료를 가서 수영을 해도 된다고 하면 바로 15일에 스타트 다이빙 연습하러 다른 수영장에 원정 갈 생각에 설렘으로 가득 찼다. 6주 동안 운동도 못 하고 정말 잘 버텼다며 스스로 칭찬도 많이 했다. 


오늘의 진료는 마지막이 아니었다. 의사 선생님은 숙제 검사하신다고 다리를 폈다 굽혀보고, 아팠던 부위를 눌러보시기도 하셨다. 

"숙제 다 해오셨네요? 운동은 두 달 뒤부터 하는 걸로 합시다."

놀라긴 했지만, 수영은 재활 운동이니 희망을 놓을 수가 없었다. 바로 물어봤다. 

"제가 원래 하던 운동은 수영인데, 수영도 안 되나요?" 

멀쩡한 오른쪽 종아리와 허벅지를 방향이 어긋나게 흔드시더니, 왼쪽도 똑같이 하셨다. 선생님이 마구 흔들어도 그 안에 강한 중심이 비웃듯 꼼짝도 안 하던 오른쪽 다리와 달리 왼쪽 다리는 살짝의 통증과 함께 흔들렸다. 그때부터 알았다. 내 다리가 아직 다 낫지 않았다는 것을. 

"수영은 중력을 받지 않아서 해도 되는데, 평영도 해도 되고. 그런데 아직 고정이 안 되어있는 상태에서 수영장에서 미끄러질까 봐 그래요. 수영은 해도 돼요. 근데 미끄러져서 오면.." 

알겠다고 하고 나왔다. 


'미끄러지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공포가 먼저 찾아왔다. 풋살화를 신었는데도 미끄러져서 다리가 이렇게 됐는데,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이 다리로 수영장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무리 지금까지 미끄러진 적이 없다 해도 미래는 모르는 거니까. 지금의 다리도 다칠 줄 모르고 다친 거니까. 그래도 두 달 뒤라니. 너무 아득하다. 수영이 너무 하고 싶다. 내가 걱정했던 건 걸음이 어색해서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수영장까지 걸어가야 한다는 것뿐이었는데, 같은 방식으로 또 다칠 수도 있다니. 막막해졌다. 


그 공포 속에서도 수영을 하고 싶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수영하고 씻고 나서 무릎 보호대를 차고 내려갔다가 수영할 때만 벗고 또 탈의실에 갈 때 다시 차면 되지 않을까? 오, 꽤 좋은 생각이다. 차분히 강습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월요일은 오리발로 수영하는 날. 아무리 중력을 안 받는다고 해도, 숏핀인 지금의 오리발로도 가끔 무릎이 아팠던 적이 있으니 옆에서 자유 수영을 할 수 있냐고 문의해야겠다. 금요일 스타트 다이빙은 어쩌지? 육지에서 점프해서 들어가야 하는데, 그건 못 하겠다. 금요일도 자유 수영할 수 있냐고 그것도 물어봐야겠다. 수영은 재활 운동이니까 하다 보면 오히려 더 빨리 나아질 수도 있어. 


희망은 쉽게 타올랐다가 쉽게 꺼지고 다시 석연치 않아 졌다. 미끄러진다는 말이, 무엇이 흔들리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무릎 쪽에서 뭔가가 사정없이 흔들렸던 그 느낌이 계속 떠올랐다. 아마 5월도 수영을 못 할 것 같다. 차라리 제대로 걷기라도 하면 무릎 보호대를 차고서라도 물 앞까지 걸어갈 텐데, 지금 절뚝거리는 이 다리로 그럴 순 없다. 


오늘은 그래도 난 운이 좋은 거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엄마가 아무리 진짜 수영 선수가 아닌 게 어디냐, 일상생활은 가능한 게 어디냐 위로를 해주지만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오늘은 그냥 마음껏 슬퍼하련다. 아무리 나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기대하고 실망한 것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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